…이 길이 아닌개벼
출발지: 블랙폴드
도착지: 인버네스(Inverness)
숙소: 인버네스, 파인 게스트 하우스(Pine Guest House)
걸은 거리: 11km + a
드디어 마지막날!!! 웬일로 아침부터 하늘이 새파랗게 개어 있었다. 마지막 날 비를 처 맞으면서 인버네스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이 동네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다 아는 조지 심슨 할아버지가 아침 아홉 시 반에 데리러 와서 어제 나를 만난 자리에 떨궈 주었다. 오늘 코스는 약 11km 정도로, 숲 속을 하염없이 걷다가 인버네스 외곽을 통과해서 칼레도니아 운하 옆길을 잠시 걷다가 네스 강을 끼고 도심으로 들어가, 언덕 위에 지어진 인버네스 성에서 만세를 부르는 코스이다.
숲길은 길었다. 어젯밤부터 날이 개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길은 군데군데 진창이 있는 것 빼고는 아주 쾌적했다. 벌목한 통나무들을 쌓아놓고 나무껍질을 슥슥슥 벗겨내는 작업 중인 아저씨들을 지나 또 다른 숲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옛날부터 목동들이 가축을 몰고 오가던 숲길을 살려 트레일로 만든 것이다. 야생거위 서식지대이기도 하니 개를 데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목줄 착용시키라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었다.
길이 끝나자, 아주 아담하고 귀여운 호수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호수 너머로,
"도시"가 나타났다!!!!!!!!!!!!
나는 마치 한 달 동안 산에서 헤매다가 겨우 내려가는 길을 발견한 사람처럼 감동으로 산자락에 대고 마음속으로 야호를 외쳤다(야생동물들이 놀라지 않도록 속으로만 외침). 마지막으로 도시를 본 게 언제였던가? 아마도 포트 윌리엄을 출발했을 때겠지. 이곳은 다름 아닌 그레이트 글렌 웨이의 끝, 인버네스였다. 북위 57도, 인구 47,000명(2016년 기준)의 거대 도시(참고로 같은 해 기준 인천광역시 인구가 300만 명임). 출발지였던 포트 윌리엄 인구가 약 만 명이니까 인버네스는 엄청나게 큰 도시다.
네스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입구에 자리한 인버네스. 인버(Inver)는 스코티시 게일 어로 ‘강의 입구, 합류 지점’을 뜻한다. 즉 ‘네스 강의 하구’라는 의미이다. 잉글랜드에서는 같은 의미로 ’-mouth(고대 영어 mūþ(강의 입구)에서 변형된 어미)‘가 쓰인다. 플리머스(Plymouth - 플림 강의 입구), 포츠머스(Portsmouth - 항구의 입구) 등 우리가 많이 들어본 지명들이 여기 속한다.
어쨌든, 인버네스! 하이랜드의 행정 중심지이자 에딘버러, 글라스고와 더불어 스코틀랜드의 주요 도시들 중 하나인 크고도(?) 아름다운 인버네스. 2000년 에딘버러에 있을 때 오크니 섬으로 2박 3일짜리 여행 가면서 탔던 버스가 인버네스에서 잠깐 쉬어 가는 바람에 내려서 간단히 점심 먹은 기억뿐이지만, 그곳을 이렇게 내 발로 '걸어서'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대서양에서 출발해서 125km를 걸어 북해에 도착한 것이다. 물론 아직 도착은 안 했지만!
벅찬 감동으로 한국이 늦은 시간이라는 것도 잊은 채 아는 사람들에게 내 눈앞에 도시가 보인다고 미친 듯이 자랑질을 한 다음(얼마나 시골만 돌아다니길래 도시 봤다고 저래 좋아할까 싶었을 것이다) 신이 나서 산을 내려갔다. 길은 곧 인버네스 외곽의 조용한 주택가로 이어졌다. 맑고 따뜻한 날씨라 동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잔디 위에서 놀고 있었다. 내가 만약 스코틀랜드에 살게 된다면 이 정도의 조용하고 한적한, 옆에 산 있고 운하 있어 경치 좋고, 시내도 가깝고 교통도 나쁘지 않은 이런 동네에 살고 싶다. 산골 경치는 진짜 멋있지만 매일 그런 풍경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좀 무서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경치 좋은 곳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라면 딱 좋을 것이다.
운하 옆길을 지나, 네스 강가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공사 구간이 나타났다. 어제 조지 심슨 할아버지가 공사구간이 있다고 뭐라뭐라 얘기하는 걸 뭔 말인지 못 알아듣고 그냥 오케이오케이 했는데 잘 들어둘 걸 그랬다. 공사 구간 옆에는 그레이트 글렌 웨이의 우회로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던 나는 그레이트 글렌 웨이 표지가 갑자기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갈림길마다 엉겅퀴 문양의 그레이트 글렌 웨이 표시가 붙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쯤 되면 어디로 가라는 표시가 나타날 만 한데 아무리 가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길은 걷기 좋은 산책로가 아니라 그냥 도로변의 길이었다. 이것은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뜻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확인하니 나는 공사 구간을 지나 인버네스 성으로 가는 가장 빠른 도로를 통과 중이었다. 그냥 도심의 길, 재미없는 길. 아까는 마을 길을 지나더라도 예쁜 집들과 정원과 풀밭이 있는 길이었는데, 지금 걷는 길은 그냥 차들이 다니는 도로변이었다.
그렇게 시끄러운 동네를 지나 다리를 건너 인버네스 성 밑에 도착했다. 그런데 기분이 영 찝찝했다. 포트 윌리엄에서 여기까지 내 발로 걸어온 것은 맞지만, 마지막 구간을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그것도 안 이쁜 길)로 왔다는 것은 마치 시험문제 잘 풀고 마킹하다 보니 맨 마지막에 한 칸이 모자라는 것 같은 찝찝함이었다.
어디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까? 아마도 공사구간 지난 다음이었을 것이다. 표지판을 놓친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나고 우회로를 잘 보이게 제대로 써붙여놓지도 않은(아마도) 그레이트 글렌 웨이 관리자들에게도 화가 났다. 이대로 골인 장소인 인버네스 성으로 가는 것은 영 개운치가 않았다. 이대로는 그레이트 글렌 웨이를 완주했다고 할 수가 없었다.
10km 남짓한 짧은 코스라 인버네스 도착한 다음에 거하게 셀프 축하의 점심을 먹으려고 먹을 것도 싸 오지 않은 탓에 가방은 가벼웠고, 배는 고팠다. 게다가 어제도 꽤 긴 거리(19km)를 걸은 탓에 발도 아파 거의 절름거리며 걷고 있었다. 어차피 인버네스에 며칠 머물 거니까 내일 와서 오늘 건너뛴 코스를 걸을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마치 마라톤 뛰다가 말고 집에 갔다가 내일 마저 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길을 걸어야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오늘이어야만 했다.
예전에 사주를 보러 갔을 때 도사님이 "넌 백점이 아니면 그냥 하다 말고 갈아엎거나 아예 안 해버리는 성질이 있다."라고 했는데 사실 내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안 한 것은 어차피 백점을 못 맞을 거라서 그런 것이었다. 아무튼 이런 타고난 성격으로 인하여(...) 나는 인버네스 성 아래까지 다 도착해 놓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아픈 발을 끌고 느릿느릿, 어차피 시간도 많으니 천천히 걸어서 인버네스 성 앞길에서 거꾸로 길을 타고 갔다. 즉 인버네스에서 포트 윌리엄 방향으로 가는 표지판을 따라갔다. 가다 보면 어차피 공사구간을 만나게 될 테니 내가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네스 강은 유속이 매우 빠른 강이었다. 수영 못 하는 나 같은 사람이 한번 빠지면 순식간에 인버네스 앞바다를 거쳐 북해까지 흘러갈 것 같다, 라고 생각한 순간 개와 산책 중이던 아저씨가 공을 강물에 던졌다. 개는 강물에 뛰어들어 공을 물고 개헤엄을 쳐서 기슭으로 올라왔다.
개만도 못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절뚝거리며 강가를 걸었다. 다리를 다시 건넜다. 캠핑장과 아이스링크 등 시민들을 위한 체육시설을 지나자, 대체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 것인지 완전 애매하게 달아 놓은 그레이트 글렌 웨이 화살표가 나타났다.
이곳이 바로 내가 '직진 표시겠지' 하고 직진해 버린, 그러나 사실은 1시나 2시 방향으로 갔었어야 하는 그 갈림길이었다.
이제 여기부터 다시 왔던 길 그대~로 다시 걸어 인버네스 성으로 돌아가면 된다. 아이스링크 옆의 카페에 들어가 너무나 딱딱해서 이빨이 다 나갈 것만 같은 스테이크 파이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두툼한 흰 살 생선의 피시 앤 칩스나 사슴고기 스테이크 등 괜찮은 음식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맛이 없다는 것이 영국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음식 노인네들 먹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영국 노인네들 이 파이 먹으면 이빨 한두 개는 바로 나간다에 1파운드 건다.
밥도 먹었으니 다시 길을 나섰다. 왔던 길 반복. 드디어 인버네스 성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아까 이 밑에서 다시 빽스텝했다)을 한 점 부끄럼 없는 당당한 마음으로 올라갔다.
별로 멋있는 성은 아니었다. 일부 탑이 공사 중이라 더더욱 별로였다. 그래도 이 성은 인버네스의 상징이며, 성 앞에는 겨우 24세의 나이로 보니 프린스 찰리(Bonnie Prince Charlie)의 탈출을 도왔다가 체포되어 런던탑에 투옥된 플로라 맥도널드(Flora MacDonald)의 동상이 있다. 우리나라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이나 동해바다를 바라보는 문무왕처럼 플로라 맥도널드도 높은 곳에서 스코틀랜드를 내려다보며 브렉시트 이후의 스코틀랜드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Charles Edward Stuart, 일명 보니 프린스 찰리)는 스튜어트 왕가의 후계자이자 명예혁명으로 퇴위해서 프랑스로 튄 제임스 2세의 손자였다(이전 글 '글렌코' 참고). 보니 프린스 찰리의 아버지는 제임스 2세의 아들인 자기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영국 의회가 딸과 사위(메리 2세와 윌리엄 3세, 보니 프린스 찰리의 고모랑 고모부)를 네덜란드에서 불러들이자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일련의 왕위 복귀 시도들이 자코바이트 반란(Jacobite Rising)으로 이어졌다. 자코바이트는 라틴어 Jacobus, 즉 제임스 왕(=스튜어트 왕가)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보니 프린스 찰리는 겨우 25세의 나이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하이랜드 클랜들을 싹 모아 이끌고 잉글랜드까지 밀고 내려갔다. 초반에 꽤 승승장구하던 그는 지원 부족(프랑스의 지원을 기대했는데 안 왔다), 보급 문제, 군 내부 의견 분열 등의 이유로 런던 근처까지 다 내려가 놓고 결국 후퇴하고 말았다. 그리고 컬로든 전투(Battle of Culloden)에서 영국군(잉글랜드 군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나라가 된 영국 군대)에게 아주 제대로 참패하고 말았다.
보니 프린스 찰리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는 현상금이 걸린 채 산, 동굴, 늪으로 굶고 비를 맞으며 도망 다녔다. 그러던 그를 플로라 맥도널드가 자기 하녀로 변장시켜 스카이 섬으로 탈출시켰다. 그는 키도 크고 체격도 커서 여장해서 먹힐 외모도 아니었는데 플로라 맥도널드의 배짱과 섬 지역의 허술한 검문 덕분에 탈출에 성공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옛 노래인 '스카이의 뱃노래(Skye Boat Song - 아웃랜더(Outlander) 오프닝 곡으로도 쓰임)'는 이 탈출 이야기를 노래한 것이다.
Bonnie = (형용사, 방언, 특히 스코틀랜드 영어) 어여쁜, 아리따운(출처: 네이버 영어사전)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남잔데, 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보니 프린스 찰리'라고 불린 것일까?
초상화를 보면 보니 프린스 찰리는 선이 곱고 부드러운 귀족형 얼굴에, 눈도 크고 또렷해서 순한 인상이었으며 피부도 밝고 곱게 묘사된다. 즉 카리스마 넘치는 냉미남 외모가 아닌 순하고 부드러운 호감형 귀공자 타입이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그를 '보니 프린스 찰리'라고 부르며 따른 이유는 단순히 외모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는 군복을 입고 직접 병사들 앞에 섰으며, 하이랜드의 족장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러 다녔는데 웅변가도 아닌데 말빨이 좋아 사람들의 감정을 흔들었다고 전해진다. 이제는 본명보다 유명한 ‘보니 프린스 찰리’라는 닉네임은 그가 이끄는 반란군이 에딘버러에 무혈 입성했을 때 에딘버러 여자들이 죄다 튀어나와 잘생긴 왕자님을 향해 환호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운동 좀 한 귀족형 체형(어깨 넓고 허리는 슬림한 전체적으로 잘 빠진 몸)에 당시 남자 키 치고는 상당히 큰 편인 5피트 10인치(178cm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플로라 맥도널드의 하녀(덩치 좀 크고 말 없는 하녀 포지션)로 변장하여 무사히 스카이 섬을 거쳐 프랑스까지 탈출에 성공했다. 보니 프린스 찰리는 왕가 혈통 + 젊음(25살에 반란) + 군복 입고 전선 등장 + 26살에 개같이 패배하여 도망자 신세 + 여장하고 기적적인 탈출에 성공한, 이미 인생 자체가 비극의 왕자 드라마 주인공 풀 버프 장착인 그런 인물이다.
잘생김 + 왕자 + 반란 + 실패 + 비극 = 보니 프린스 찰리
그러나 플로라 맥도널드는 왕자의 탈출을 도운 죄로 체포되어 런던탑(정치범이나 반역자급 인물만 가두는 상징적인 장소)에 투옥되었다. 이 사건은 나라를 뒤엎으려던 반란 세력의 수장을 도운 젊은 여인의 이야기로 세간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으나, 다행히 여자라 반란 세력의 중심으로 취급되지 않고, 처형했을 때의 반감을 고려하여 1년 후인 1747년에 풀려났다.
보니 프린스 찰리와 플로라 맥도널드 이야기는 각자 사연도 많다 보니 별도의 글을 파서 다시 얘기하도록 하겠다(그냥 인생이 드라마임).
인버네스 성 앞뜰에는 그레이트 글렌 웨이 완주(혹은 시작) 기념비(?)가 서 있었다. 여기 도착하면 크고 화려한 축하 표지판과 마치 마라톤 완주자들을 보고 환호하듯 사람들과 하이파이브하는 세리머니가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엄청난 완주자 방명록에 김마봉 프롬 싸우쓰 코리아! 라고 내 이름을 멋지게 써놓고 역시 사람들의 환호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소래포구 꽃게동상보다 더 소박하고 썰렁한 저 기념비 같은 거만 딸랑 있었다. 그나마도 아무것도 없어서 여기저기 성 앞뜰을 돌아다니다가 겨우 찾은 게 저거였다. 기념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Welcome to where it all ends (or begins)...
Fàilte chun na crìche (no chun an toisich)...
성 앞 잔디밭에는 서너 명의 젊은이들이 배낭에 들어있던 물건들을 죄다 펼쳐놓고 정리 중이었다. 관광버스에서 줄줄이 내린 우리 옆나라의 시끄러운 사람들이 짜장 짬뽕 난자완쓰! 하고 지껄이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설마 뭐라도 더 있겠지! 하고 다시 한번 구석구석을 도는 내 앞에 어제 산길 입구에서 만났던 부부(남편이 인도계인데 샤룩칸처럼 잘생김 - 인도 사람들은 다 라제쉬(빅뱅이론에 나오는 찐따 너드 인도남)처럼 생긴 줄 알았는데 이때 편견이 깨졌다)가 나타났다. 이들도 오늘 도착해서 설마 이게 다야? 하면서 성 안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이게 다야? 난 엄청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남편이 말했다. "뒤쪽에 뭐라도 하나 더 있을 줄 알고 다녀왔는데 거기도 아무것도 없었어."
"내 말이요."
"어쨌든 완주를 했으니 우리 서로 사진이나 찍어줍시다." 부인이 말했다. 그래서 나와 그들은 셀카 대신 전신이 나온 인증샷을 한 장씩 찍어주고 헤어졌다.
부부는 이제 버스로 포트 윌리엄에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 주차해 놓은 자기네 차를 타고 버밍엄으로 돌아간다고 했다(7-8일이나 걸려서 온 길을 몇 시간 만에 버스로 돌아가면 왠지 허무할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나의 길고 긴, 8월 4일 아침에 출발해서 12일 오후까지 125km의 그레이트 글렌 웨이를 걸은 이야기도 끝이다. 나는 포트 윌리엄에서 인버네스까지, 대서양에서 북해까지, 스코틀랜드 서부에서 동부로 걸어서 도착한 사람이다. 나는 어찌 보면 이 트레일을 걷기 위해 스코틀랜드 여행을 결심한 거니까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이제 끝난 셈이다.
그리고, 이제 나의 스코틀랜드 동부 여행이 시작되었다.
Welcome to where it all begins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