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는 신호 #비정기산문집 #서점의기쁨과슬픔
3월
05
서점원의 마음이란 간사하기 그지없다. 2월의 마지막 날까지 겨울의 혹독함을 원망하며 신세 한탄을 했는데 3월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해진다. 이건 날씨 탓일까, 서점의 매출 탓일까. 인간이란 그렇게 사사로운 이유에 휩쓸리는 존재인 거다. 하나의 변명을 하자면 2월까지는 월세를 내지 못한다는 공포가 코앞까지 찾아왔으니, 이것은 자연스레 울렁이는 소상공인의 마음속 파도인 셈이다. 덕분에 가계부의 중요성을 인지했다. 신간이 쏟아져 나오지만, 매번 책을 살 수는 없다는 자각. 한 달에 몇 권 이상은 입고할 수 없다는 절제가 필요함을 깨달은 것(이걸 이제서야!).
3월부터 다시 영업시간을 오후 7시까지로 변경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오후 6시가 넘어서도 손님이 종종 온다. 조금 너그러워진 서점원의 마음으로 산뜻한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밸런타인데이 따위 챙길 여력이 없던 2월을 뒤로하고, 화이트데이를 맞이한 3월. 달다구리를 챙기자. 작은 이벤트. 사탕, 초콜릿, 젤리 등 스위츠 통을 준비한다. 그 안에 달큼한 향을 풍기는 아이들이 가득. 서점을 찾아준 이들을 위해 하나씩 건네는 마음.
오늘의 첫 방문자는 여자 친구를 위한 책 선물을 구입하러 온 남성분. 맞다, 화이트데이에 꼭 사탕을 줘야 하는 법은 없으니까(이런 멋진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도 연애할 수 있습니다). 엄청 신중하게 고르고 고르다가 서점원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디자이너인 여자 친구를 위해 몇 가지 책을 선별한다.
최종 후보에 오른 두 권. 첫 번째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 열린책들의 양장본 시리즈 중 하나인데 잔디색의 단정한 표지와 장자크 상페의 삽화가 잘 어우러져 책도 읽고, 그림도 함께 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인 책이다.
두 번째는 장자크 상페의 <여름의 빛>. 이 책은 그림 에세이로 사이즈부터 그림을 위한 책이고, 삽화가 스프레드로 펼쳐져 보송한 색감의 향연을 원 없이 감상할 수 있다.
그는 고민 끝에 <여름의 빛>을 선택했다. 여자 친구의 집에서 이런 느낌의 그림을 본 것 같다며. 열심히 쌓아둔 데이터는 어디서든 쓸모가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가운 손님이 방문했다. 근처 학교 졸업생인데 단골 미용실을 방문할 때마다 서점도 같이 들러주는 고마운 분. 오늘은 인사와 함께 종이봉투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최근 일본 여행을 다녀왔는데 생각이 나서 사 왔다고. 그 안에는 일본 초콜릿이 잔뜩이었다.
마음이 통했다는 반가움에 오늘 화이트데이인 거 아셨어요? 라고 물었는데 깜짝 놀라며 전혀 몰랐다는 반응. 이것마저 담백하고 멋지다.
여행 선물은 진짜 찐 마음이다. 캐리어의 공간은 한정적이고, 사 오고 싶은 것들은 많으니까. 무게와 부피를 맞추기 위해 엄선해서 선택된 것들만 캐리어에 실려 함께 올 수 있는 법이다. 근데 그중 하나가 서점원을 위한 초콜릿이라면 이건 사랑이 맞다.
언제나 그렇듯 창가 옆 테이블에 그녀를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해 준다. 그분은 서점에 오면 책을 구입하고 창가 옆 원형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작은 간식을 챙겨줬는데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워 나의 초콜릿을 챙겨왔다고. 마음을 주고받다가 서로의 마음을 알아버리면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직 찾지 못했다. 정확하게 이거라고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일단은 뭉뚱그려서 기쁜 마음이라 하겠다.
오늘은 유독 선물을 위한 책 손님이 많았다. 이 책을 보면 그 사람이 떠오른다며 구입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도,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의 맛을 알려주고 싶다며 고른 <국수의 맛>도 각자의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로 건네질 예정이다. 서점원 역시 그들에게 달다구리로 작은 마음을 전한다. 작지만 기분 좋아지는 달콤함.
오후 여섯 시가 넘었다. 아직 해가 짧아서 금세 어둑해지지만 그래도 손님이 온다는 건 봄이 왔다는 신호다. 마지막 손님은 동네 주민인데 서점에 오기 전 구입했다며 두쫀쿠 다음으로 유행한다는 버터떡을 선물해 주셨다. 뭐랄까, 화이트데이가 사탕 회사의 상술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을지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그냥 내보이긴 쑥스러우니까, 명분을 내세워서 보여주는 마음.
아, 달달해.
2026년 3월 14일 토요일
봄은 이래저래 좋다
서점원의 문장과 책
계절에 신경을 쓴다는 건 매일의 다름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날을 살며 늘 같은 길로만 다니고 결국 같은 자리에 고여 있다가 어제와 똑같이 어둠 속에서 사라지며 끝나는 하루라 할지라도.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임진아 지음, 휴머니스트출판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