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게으름뱅이의 삶이란

#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by 서점원

3월

04


오늘 하루를 매우 알차게 보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게으름뱅이에게 그것은 정말 멋진 일로, 마치 부지런쟁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으나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어딘가에 기록해 두고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을 정도의 뿌듯함 하나를 쌓을 소중한 기회다.


3월의 서점은 매주 목요일 아침마다 글쓰기 클럽 [무엇이든 쓰는 아침]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두 분이 신청해 주셔서 고요한 아침에 글 쓰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대화를 나누다가 알게 된 사실 하나. M 님은 엄청난 갓생을 살고 계셨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저녁 여덟 시 반에 잠드는 하루. 깨어있는 동안도 굉장히 바삐 움직이셨는데 집안일과 육아는 기본이고, 매주 마감하는 동화 모임이 있고, 논술 교사 자격증 공부를 하며, 동화 관련 논문도 쓰고 계셨다. 그 와중에 이번 주부터는 발레까지 등록했다는 것. 서점원은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온 마음을 담아 리스펙트하고 연신 와, 하며 손뼉 치는 리액션이 서점원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 삶은 이번 생에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삶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오늘의 목요일은 무언가 각성상태가 되었다.

글쓰기 클럽을 끝마치고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오픈 준비를 마친 후 그날의 할 일을 적어본다.


To Do List

4월에 진행할 독서 모임 기획안 마무리하기

브런치 수정 후 발행 예약하기

무밤과 무아 후기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업로드하기

3월 먼슬리클래식 <햄릿> 입고 소식 알리기

밀린 입고와 재입고를 위한 신간 소설 읽기 등


언제나 계획만 가득하고 지키지 못한 일들이 더 많지만, 오늘만큼은 다르다. M 님의 갓생 기운을 받아 의욕적으로 미션을 완수해 나간다. 중간중간 손님맞이도 하고, 간식도 먹고, 스트레칭도 하며 마지막 미션을 완료한 순간, 시간을 확인하니 퇴근 시간이 임박했다. 밀물처럼 몰려오는 뿌듯함. 이건 게으름뱅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모든 시간을 한 톨도 허투루 쓰지 않았을 때 느껴지는 이 감정을.


오늘 서점원은 나름의 갓생을 경험했다. 물론 알고 있다. 매일 이런 하루를 보낸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렇기에 더더욱 부지런쟁이가 된 오늘을 기억하고 자신을 칭찬한다. 하루쯤 갓생을 사는 것은 게으름뱅이에게 도움이 된다.



2026년 3월 12일 목요일

게으름뱅이는 이런 것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서점원의 문장과 책

이른바 게으름이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 계층의 독단적 규정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일을 하는 것이다.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이미애 옮김, 민음사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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