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동네 사랑방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비정기산문집 #서점의기쁨과슬픔

by 서점원

3월

03


서점이지만, 책을 구입하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은 하루. 그럼에도 오늘의 글은 서점의 슬픔보다는 기쁨에 가깝다. 서점을 다녀간 사람들 덕분에 서점의 기쁨이 맞다.


첫 방문자는 외국인이었다. 휴대폰을 꺼내 책 사진 두 장을 보여주며 이 책이 있는지 물었는데 아마도 대학에서 사용하는 교재로 보였다. 제목부터 <대학 강의 수강을 위한 한국어 읽기: 중급 1>과 <대학 강의 수강을 위한 한국어 쓰기: 중급 1>이었으니까. 근처 대학에 한국어를 배우러 온 러시아 학생이었다. 그녀는 한국어를 적당히 이해하고, 적당히 말했다.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온 것이겠지. 그래서 나도 한국어와 영어를 적당히 섞어서 말했다(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녀에게는 한국어도 영어도 모국어가 아니니 의미가 있었을까 싶다).

안타깝지만, 이곳엔 교재가 없다고 했는데 간절한 표정이 역력해 언제 교재가 필요한지 물었다. 다음 주 금요일 그러니까 일주일 후에 수업이 있어 그때 필요하다고 답한 그녀. 원하면 주문을 해줄 수 있다고 했더니 밝은 표정으로 그러겠다고 했다.

메모지에 이름과 연락처를 남겨달라 했는데 한글을 또박또박 잘도 썼다. 교재가 초급이 아니라 중급인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를 매우 잘한다고 말해줬는데 겸손까지 장착하며 아니라고 했다. 그때만큼은 완전 한국인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책이 입고되면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전하며 인사했다.


두 번째 방문자는 ‘짭문집’을 탄생시킨 S 님이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채 끝마치기도 전에 휘리릭 들어와 작은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두쫀쿠!

유행이 지나서 흔해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소중하고 귀한 두쫀쿠다. 혼자 먹기보단 가족들과 오손도손 모여 칼로 조각을 내어 나눠 먹어야 비로소 그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두쫀쿠가 아닌가. 그렇게 ‘오다 주웠다’ 느낌으로 두쫀쿠만 놓고 서점에 들어올 때처럼 휘리릭 사라진 S 님. 커피와 먹기 좋은 달다구리 간식 득템.


그 후로 몇 명의 방문자가 책을 둘러보다 나갔고, 어둑해진 후에 여성 한 분이 책방을 방문해 글쓰기 클럽인 [무엇이든 쓰는 밤]과 [무엇이든 쓰는 아침]에 관심을 보이셨다. 예전부터 지켜보셨는데 타이밍을 놓쳐 매번 신청을 못 했다고. 이것저것 궁금한 걸 물어보셔서 이것저것 답변해 드렸다.


독서 모임인 [산문집 북클럽]의 존재를 알고 계셨다. 서점원의 아픈 손가락. 야심 차게 준비했던 독서 모임이다. 한 가지 키워드를 정하고 책 두 권을 선정해, 한 달에 두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글쓰기 클럽과 달리 모객이 쉽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책을 다 읽고 와야 한다는 것, 책을 읽은 후 자기 생각과 의견을 나눠야 한다는 것 등이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 역시 책을 읽은 후 발제를 준비하며 품을 많이 들이고 공을 들인 시간인데 성과가 좋지 않아 조금 쭈구리가 된 상태였다. 근데 그분께서 북클럽 책 선정이 너무 좋았다며 이야기해 주시는 게 아닌가. 이걸 알아보시다니! 그 말 한마디에 쭈구리 모드가 해제되고 조금 어깨를 폈다.

4월부터는 조금 부담이 덜한 독서 모임을 계획 중이라고 말씀드리고 그분은 응원해 주시고, 서점원은 잘 버티는 중이라고 훈훈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서점을 방문한 이들과 나누는 대화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서점의 기쁨이지만, 여전히 서점의 기본인 책을 판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서점원은 조금 시무룩한 기분이었는데 마지막 방문자의 등장으로 온전한 서점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위한 선물로 스도쿠와 책 한 권을 구입하신 것. 덕분에 책을 판매하는 서점의 역할도, 동네 사랑방 같은 서점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오늘은 책을 한 권 팔았다. 그러나 동네 사랑방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더해진다면 서점의 기쁨으로 버텨낼 수도 있지 않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시간.



2026년 3월 6일 금요일

인간은 인간에게 온기를 나눠줄 수 있다




서점원의 문장과 책

출발점이 좋으면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지고, 모든 것이 확실해지고 풍부해집니다.

우리는 운명에 이끌려 눈가리개를 한 채 그곳으로 가는데 대개 성공하지요.

선택하지 않아도 돼요…… 멈출 수 없이 그렇게 돼요.

당신이 한번 끌리는 길을 택했다면 뒤돌아보지 마세요.

- 작가 유르기스 발트루샤이티스(1988년 파리에서의 대화 중)


『좋아서 그래』 이병률 글, 최산호 그림, 달 출판사

토요일 연재
이전 15화45 함께 쓰고 함께 마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