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은 걸음

그 시절, 돌아가고 싶은 기억들

by 유혜빈


“다른 애들은 벌써 걸어요.”
그 말에 괜히 가슴이 철렁했다.
마치 내가 뭘 잘못한 것만 같았다.



“얘는 왜 이렇게 안 나와요?”


진료실 침대에 누워, 나는 걱정 반 투정 반으로 말했다.

의사는 웃으며 말했다.

“조금 느긋한가 봐요. 아기들도 성격이 있거든요.”


예정일보다 겨우 3일.

문제 될 건 없었지만 괜히 불안했다.

주변에선 벌써 아기 낳았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SNS에선 “벌써 눈을 마주쳐요~” 하는

글과 사진이 올라왔다.


나는 밤마다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엄마는 준비됐어. 너도 슬슬 나올 때 되지 않았니?”


그렇게 며칠을 더 기다린 끝에,

아기가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세상에 나온 아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건강한 아이였다.


그렇게 느긋하게 태어난 아이는,

세상에 나와서도 참 느긋했다.


처음 뒤집은 날.

‘이게… 뒤집은 거 맞아?’

너무 천천히 굴려서, 나는 한참을 지켜보다가

결국 핸드폰을 들었다.

영상을 찍고 또 찍고 다시 돌려봤다.


“드디어 했어!!! 진짜 했어!!!”


신이 나서 가족 단톡방에 보냈다.

그날, 우리 집은 작은 축제였다.


처음 걸은 날도 기억난다.

돌을 훌쩍 넘긴 겨울,

여전히 손을 잡고서만 몇 걸음을 떼던 아이가

어느 날, 이모가 과자 봉지를 뜯는 순간,

눈이 반짝였다.


두 손을 들고 까치발을 하다가…

뚜벅뚜벅, 몇 걸음. 그리고 과자!


“걸었어! 지금 걸었어!!!”


나는 숨죽여 박수를 쳤고,

아이는 과자를 입에 물고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지었다.

그날의 과자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했다.


말은 더 늦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거 내 꺼야” 같은 문장도 하는데,

우리 아이는 꺄르르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이 정말 예쁘긴 했지만,

그래도, 한 마디쯤 해주면 안 되겠니?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밥을 하던 중,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엄마…무…물…두때요.“


나는 국자를 든 채 멈춰 섰다.

“지금… 뭐라 했니?”

아이는 깔깔 웃으며 도망갔다.


그 짧은 말 한마디가

어쩐지 눈물 나게 고마웠다.


어린이집 상담 시간

“또래보다 언어가 조금 느리긴 해요”

사실 이미 알고 있었고, 의외로 괜찮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친구들 SNS엔

또박또박 말하는 아이들의 영상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그날 밤, 아이는 욕조 안에서

오리 장난감을 붙잡고 놀고 있었다.


“꿰엑꿰엑”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래, 말은 느려도 오리 소리는 정확하네…”


비교하느라 조급해하던 날들,

SNS 영상을 몰래 끄고 눈을 질끈 감던 밤들,

괜히 엄마들 앞에서

“우리 애도 금방 할거 같아요~”라며

웃음 지었던 순간들.


그 시절의 나는

조금만 늦어도 걱정이 앞섰고,

조금만 빨라도 감동이 밀려오던,

그저 ‘초보 엄마’ 였을 뿐이다.


지금 우리 아이는 하루 종일 말이 많다.

질문도, 농담도 많고 가끔은 끝없는 수다도 길다.


그 모든 말의 시작이,

그토록 기다렸던 “엄마”였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느리면 어때.

그 시간도 다 예뻤어.”


그리고 세상 모든 늦게 피는 아이들아.

느긋하게, 네 속도로 가도 괜찮아.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