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보다, 기다림이 필요할 때
나는 또, 미친 듯이 잔소리를 퍼부었다.
공부는 했는지, 핸드폰은 어디 있는지,
왜 그렇게 생각 없이 행동했는지.
그 순간엔,
그게 옳다고 믿었다.
실수하지 않게 하려면,
이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려면…
지금 내가 잡아줘야 한다고.
하지만 말은 사랑이었어도,
내 말속엔 아이의 마음이 없었다.
점점 굳어가는 아이의 표정을 보면서도
나는 더 큰 목소리로, 더 많은 말로
아이를 몰아세웠다.
“왜 그런 생각을 했어?”가 아니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
나는 묻고 있었다.
그 마음이 어땠는지보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나의 기준으로 판단했고,
아이의 이야기를 묻기도 전에
내 입장을 먼저 쏟아냈다.
그리고는 매번,
아이가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간 후에야
뒤늦게 후회했다.
왜 또 그렇게 몰아붙였을까.
이번엔 조금 다르게 말해볼걸.
아이도,
나처럼
자기 마음을 알아주길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잖아.”
“엄마는 너밖에 없어.”
그 말들이
진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의 사랑’보다는
‘엄마의 불안’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나는 그저
아이가 더 잘되길 바랐을 뿐인데—
그 마음이, 어느 순간
아이를 옭아매는 욕심이 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지금도 두렵다.
이 아이가 나 없이 잘 클 수 있을까.
내가 방향을 잡아주지 않으면
헤매게 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더 불안했고,
더 조급했고,
그래서 아이의 마음보다
내 마음이 더 앞서버렸다.
앞서 끌고 가는 사람보다는
옆에서 조용히 함께 걸어주는 사람.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함께 헤매주는 사람.
다그치는 대신
가만히 기다려주는 사람.
그래서 요즘 나는,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려 애쓴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하고 묻고,
그 말 끝에 숨어 있는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려 한다.
아이는 언젠가
자기 속도로 자라고,
넘어지고,
또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조금 더 조용하게,
조금 더 느긋하게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비로소,
자기 삶을
자기 발걸음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