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나의 초조함에 대하여
아이를 믿는다는 건
세상의 속도를 견디는 일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리 아이는 아직 한글을 떼지 못했다.
“우리 애는 네 살에 다 뗐어.”
“저절로 읽더라.”
주변의 말들은 자랑이 아닌 척하며 날아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날 밤, 나는 아이를 붙잡고 무섭게 가르쳤다.
작은 손에 연필을 쥐여주고 억지로 따라 쓰게 했다.
혼을 내고, 반복하게 시켰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나와 아이,
우리 둘 사이에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입학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아이 스스로 한글을 깨우쳤다.
나는 놀랐고, 동시에 후회했다.
‘이렇게 될 걸… 왜 그렇게 몰아붙였을까.’
믿지 못하고 다그쳤던 그때의 내가 참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 이후, 나는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우리 아이는 결국 해낼 거야.
그 믿음을 붙들었다.
남들이 학원을 달릴 때 우리는 책을 읽고, 산책을 했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믿고 싶었다.
그 느림 속에서 아이는 참 빛났다.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가 ‘조금씩’ 잘하기 시작했다.
상장을 받아오고,
선생님은 “수업 참여도가 높고 잘해요”라며
칭찬해 주셨다.
나는 속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내 마음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이도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표정도 밝았고, 자신감도 눈에 띄게 자라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나는 정말 좋았다.
하지만 기쁨이 욕심으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금 더 잘하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남들보다 앞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잔소리가 늘었고, 기대는 높아졌고,
우리 사이엔 말없는 긴장감이 생겼다.
예전처럼 느긋하게 웃던 시간은 줄어들었고,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 중요한 시기니까.’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니까.’
그 말들로, 나는 내 욕심을 정당화했다.
기다리는 엄마가 아니라,
끌어당기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조금만 더 집중해 봐.”
“이건 충분히 너도 할 수 있잖아.”
“왜 거기서 그만두려고 해?”
아이에게 더 잘해주고 싶었다.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고,
남들보다 더 나아지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나를 위한 욕심이었을까.
나는 다시 초조해졌다.
믿음과 욕심 사이에서 흔들렸고,
기다림과 조급함 사이에서 속이 타들어갔다.
나는 지금도 이 아이가 참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특별함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꽃 피우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 욕심이, 사랑을 덮어버렸던 건 아닐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기다릴 수 있었던 그때의 나로.
조금 늦더라도,
그 모든 걸 사랑해 줄 수 있었던 그때로.
그러니까 지금도….
조금 늦은 걸음이라도 괜찮다고,
다시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엄마는,
다시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