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서방이 둘이다.
첫 서방은 신서방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여동생이 시집을 갔다. 33년 전에 그래서 맞이한 이름 신서방. 매제는 경상남도 거창이 고향인데 시골 사람답게 수더분하다. 부모님과 형제 여럿이 있는데 장남이란다. 부모님 생각을 끔찍이 하는 효자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자세한 내막이야 그것까지 내가 알 필요는 없고, 동생을 통해 듣는 이야기는 사돈어른들에 대한 예의가 지극하단다. 형제간의 우애도 있고, 시 부모님이 자손들에게 잘하셔서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 거창 매제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집은 지리산 자락 아래 위치한 전형적인 촌락이었고 집성촌이라고 했다. 산 중턱쯤 위치한 집은 단층 기와집이었다. 여름이었는데 산 아래여서인지 시원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시골 매미라 그런지 조용하게 울었다는 기억이 있다. 가서 뵌 안사돈 어른의 바지런함에 안절부절 못 했던 기억이 있다. 집안에 먼지 하나가 없었다. 쓸고 닦고 잠시도 쉬지 않으시고 마루에 걸레질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기함하였다. 그때 우리 집 아이들이나 동생네 아이들이 어려서 밖에 나가 놀며 흙 묻히고 들어오면 바로바로 싫은 내색이나 말씀 없이 걸레질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한꺼번에 하시면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매제 아버님은 거의 말씀이 없으셨다. 그저 아이들 노는 보습을 보시면서 입가에 미소만 가득히 담아내시는 모습만 보았다. 그러한 어머니 아래서 자란 아들치고는 좀 털털하다. 내 판단엔 매제의 그런 면이 오히려 매력적이다.
그런데 본인의 아이들과의 관계는 서먹서먹하단다. 동생의 말로는. 나나 매제나 자식이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다. 더군다나 어른들로부터 아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받은 교육조차 없다. 그저 낳았으니 먹이고 가르치고 예뻐라 하는 것이 다다. 문제는 예뻐라 하는 방법에서 시작한다. 첫 아이는 여자아이인데 다루기가 여간 까탈스럽지 않다. 나도 매제도 같다. 오히려 둘째가 사내아이라서 다루기가 쉽다. ( 이것은 순전히 나 자신만의 생각일 뿐 아이들에게 물어보지는 아니하였다. ) 좀 거칠게 다루어도 놀아주면 남자아이는 좋아한다. 그런데 여자아이는 놀아줄 줄을 모른다. 그리고 엄마만 찾는다.
두 번째 서방은 김서방이다.
딸이 10년 전에 시집을 가서 우리 가족이 된 내 하나밖에 없는 사위다. 사위는 집이 제주도다. 결혼 당시 어머니와 형이 있는, 우리 집처럼 단출한 식구만 있다고 하였다. 바깥사돈어른은 사위 고등학생 때 돌아가시고 안 계신단다. 안사돈이 편찮으셔서 우리 부부가 제주도로 상견례를 하러 갔었다. 상견례 장소에는 안사돈 어른과 사위 백부님 부부가 같이 나오셔서 서로 얼굴을 뵙고 인사를 나누었다. 처음 뵈었을 때 인상이 참 선해 보이신다는 기억이 있다. 상견례 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집사람이 감기 몸살이 심하게 와서 꼼짝 못 하고 숙소에 갇혀 지내야 했다. 딸과 사위는 제주도 관광한다고 하는데 나도 따라가고 싶었으나 아픈 집사람을 두고 갈 수는 없어 숙소 주위만 어슬렁거렸었다. 그리곤 수원에 올라와 일정대로 결혼이 진행되었고 김서방은 내 하나밖에 없는 사위가 되었다.
결혼 초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이 친구들도 깨소금을, 부부싸움으로 변질시켜 툭하면 딸내미가 집에 와서 머무르곤 하였었다. 그리고 최고 지선의 생산적 소출은 손자가 태어난 것이었다. 원 세상에 내 자식 키울 때는 몰랐는데 손자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은 온 집안의 관심사요 최대의 빅뉴스였다. 이를 기회로 집사람과 안사돈의 결합이 급속도로 진행되었으며 안 사돈끼리 허물없이 지내는 사태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물론 딸 내외가 사는 곳이 집 근처여서 주로 집사람이 손자의 근황을 카톡으로 안사돈께 전해드리는 연락병 노릇을 했지만. 전혀 일면식도 없던 사람끼리 서로의 자식을 맡기고, 새로운 자식으로 맞으면서 더더욱 서로를 닮은 손자란 확실한 매개체가 생기면서 두 사람의 관계도 돈독해졌다.
우리는 안다. 살아본 만큼 세월이 가야 서로의 기싸움도 잦아든다는 것을. 딸아이 부부는 가끔 투덕거리는 것 같다. 손자 없을 땐 혼자 오더니 언제부터인가 손자까지 덤을 붙여 온다. 나야 반갑지. 보고 싶은 손자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 있으니. 지금은 아이의 키가 웃자라있다.
벌써 열 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어떤 때는 할아버지를 이겨 먹으려 든다.
오늘은 손자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멀리까지 페달을 밟았다. 힘에 부친다. 왜 빨리 따라오지 않느냐고 성화다. 녀석의 빠르기를 따라가려다 보니 종아리에 쥐가 온다. 손자에게 너와 할아버지는 동지라 했더니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네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도 아빠가 사준 것이고, 할아버지가 타고 있는 자전거도 네 아빠가 선물해 준 것이니 너와 난 자전거 동지라고 답해 주었다. 그냥 듣는 눈치다. 이해하기엔 아직 어리다. 오히려 고맙다. 꼬치꼬치 캐 물으면 답이 궁색해질 수도 있으니.
그래서 난 서방이 둘이다. 내 혈육들이 맺어준 서방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