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 밤. 하늘엔 달이 떠 있고, 반쪽만 열려있다.
주위로 옅은 구름이 장식처럼 군데군데 걸려있다.
난 미루나무 아래에서 장작개비를 던져놓은 화톳불을 앞에 두고 식은 커피를 마신다. 왜 꼭 미루나무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말자.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초입 미루나무는 가지가 앙상하다. 아니 별로 없다. 아니 많은데도 기둥에 달라붙어 시야를 가리지 않는 겸손한 나무다. 나무 아래에서 올려 보는 달은 환해도 좋고, 어둑해도 좋다. 달빛 자체를 즐길 수 있고, 방해받지 않도록 해주는 배려 깊은 나무가 미루나무다. 불 앞에 앉아 있으면 따뜻한 커피도 괜찮다. 하지만 차갑게 식은 커피잔을 두 손에 감싸 안고, 눈은 장작불에 두고, 귀는 나무가 타며 내는 소리에 두어보자.
주위는 어둠에 싸여 있고 탁자도 없이, 우연히 마주친 길가 미루나무 아래 한갓진 데 앉아서, 키 낮은 의자를 펼친다. 가지고 다니던 구멍 숭숭 뚫린 깡통에 나무 몇 개 넣어서 불을 피우고 커피를 마신다. 첫 잔은 따뜻하게 마시고, 두 번째 잔은 식을 때까지, 공기에 그 더운 기운을 다 내어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가워진 잔을 입에 대고 마신다. 쓴맛이 더해진, 차가운 커피 맛은 일상적으론 표현하기 어렵다. 목으로 넘어가 위에 닿을 때까지 맛과 향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전달되어 퍼져옴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불에 던져진 시선을 거두어 어둠이 펼쳐진 어두움 속으로 옮겨보라. 검은색은 모든 색이 모아져야 만들 수 있는 색이라고 한다. 어둠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질서 정연하다. 바투 다가선 어둠과 그다음 켜켜이 쌓인 어둠이 차곡차곡 놓아져 파노라마를 보는 듯하다. 마치 한 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진. 그러나 농담을 가진 색으로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어둠과 같다. 멀리 보다가 가깝게 시선을 두어도 어디든지 부담스럽지 않다. 편안하다. 몇 번인가 눈을 꿈쩍여도 짙은 어둠이 표정을 감추어 준다.
귀도 열어두면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미루나무 등걸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나뭇가지가 내는 소리와 굵은 기둥이 내는 소리가 서로 다르다. 기둥은 육중하고, 무겁고, 둔탁한 소리를 전해 준다. 그런데 가지는 작고, 가늘고, 새된 소리로 내게 육성을 전달한다. 한 나무에서도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은 두 가지 모두 자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계절에 따라 음색도 달라진다. 지금 계절이 밤이 내는 소리를 듣기에 가장 좋다. 조금 두꺼운 옷을 걸쳐 입고 밤의 한기를 막으며 세상 가운데 서 있으면, 어떤 말을 전하려 하는 지를 귀담아들을 수 있다.
밤이 주는 향은 이미 커피가 다 주었다.
눈과 귀와 냄새로 느낀 밤은 이제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드는 일만 남았다.
어떤 생각이 되었던 하늘은 제 변화를 멈추지 않고, 바람도 제 갈 길 가고 있다. 어둠을 품고 있는 대지도 차갑게 기온을 낮추며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나만 자리에 남아 공간의 주인인 듯 붙박이로 멈추어있다. 나도 변화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가야지 집으로. 가서 오늘 못 이룬 꿈을 채워 넣어야지.
자동차 불빛도 끄고, 깡통의 불도 사그라진다. 하늘엔 달과 무수한 별만 떠 있고, 미루나무는 검은 실루엣으로 제 그림자를 남기고 있다. 옷 속으로 한기가 밀려 들어오고 있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을 채우고, 비울 것인지 생각해 두어야 한다. 무위의 자연에서 잡념을 갖고 살고 있는 난, 비움을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한지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현재를 사는 나는 다음을 위해 저축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오늘을 준비만 하는 시간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내게 오늘은 단 하루니까. 오늘이 맛있고 행복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