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는 소주를 좋아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스무 살 무렵에는 뚜껑을 따는 소주가 있었다. 수저로 따고, 이빨로 따고, 병따개로도 따고. 어떤 방법을 쓰던 뚜껑을 따서 코를 들이밀며 맡던 독한 소주 냄새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중의 압권은 당연히 이빨로 따서 주둥이를 팔꿈치로 쳐대던 모습이었다. 약간의 소주가 공중으로 날아가고. 고수래. 도수도 물론 높았다. 25도. 진로, 무학, 경월, 보배 대선 등 전국에서 만들어지던 술들은 애주가의 손과 목을 거쳐 식도로 향했고 술이 술을 부르는 폐해가 반복되었다. 젊다는 이유만으로 취함이 용서되던 시절도 있었다.
소주를 마실 때는 안주가 필요한데 주로 국물이 있는 안주가 좋다. 김치찌개가 그런 안주인데 물론 싸기도 하거니와 독한 소주 한잔 털어 넣고 김치 한 조각 입에 넣어 씹던 아삭한 맛을 잊을 수 없다. 최고의 안주는 뭐니 뭐니 해도 삼겹살 임에 틀림없다. 잘 구워진 삼겹살 한 점에 새우젓을 올리고 쌈장을 묻혀 마늘과 함께 먹는 그 즐거움을 어디에 빗대랴. 내가 젊었을 때는 포장마차에서 잔술도 팔았다. 안주는 홍합국물.
그런 이십 대가 지나고 서른이 되고 마흔을 넘기며 생활의 여유가 생겼을 때 마시던 양주. 그런데 양주는 꼭 소주를 마신 다음 마시던 습관이 있어 제대로 된 술맛을 모른 채 마셨다는 데 있다. 비싸기도 했거니와. 외국으로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 필수품으로 사서 쟁여놓던 애장품이었다. 우리 나이 때 대부분이 그러했으리라 생각되는데. 그중에서도 OOO리갈이 유명했다.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주도를 몰라서 그랬는지, 소주잔에 양주를 따라 입술에 묻히고 혀로 음미하던 기억이 있다. 어차피 마시고 나면 취기만 남는 건 같다. 다음날 복구되기까지 힘이 들고 시간이 필요한 것도 똑같다.
나에게 맥주는 그저 그런 술이었다. 도대체 왜 마시는지 이해할 수 없는 술 아닌 음료였다. 분위기에 따라서 생맥주잔에 마시던 음료. 그런데 독일 출장을 가서 맥주의 참맛을 알게 되고 이 술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었다. 중국의 청도 맥주가 그러했고, 일본에 가서 마셨던 기린 맥주 또한 맥주에 대한 편견을 없애 주었다. 대만에서 마셨던 18일 맥주 또한 맥주 맛의 참다움을 일러 주었다. 가끔 소맥을 하기도 하는데 확실히 목 넘김이 부드럽다.
나이를 먹으면서 마시는 술의 종류가 바뀌게 되는데, 원인은 몸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오십이 넘어 몸의 이곳저곳에 이상 징후가 발생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전립선 비대증이었다. 심한 빈뇨, 잔뇨, 야뇨로 인해 상당 기간 고통을 겪었고 할 수 없이 수술을 결정하고 후속 조치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요로결석까지 와서 또 수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음주와 멀어지게 되었고, 일 년 동안 금주 상태를 가지게 되었다. 예전에는 좋은 안주만 보면 술 생각이 저절로 났는데 몸에서 알코올 성분이 빠져나간 후로는 덤덤해졌다.
술이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말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시간이 허락하면 허락하는 만큼 순응하며 지내는 것이 몸에 익으면서 다시 한번 주종이 바뀌게 되었다. 막걸리다.
젊어서는 쿰쿰한 냄새가 나서, 텁텁한 맛 때문에 즐겨하지 않던 막걸리가 입에 맞는다.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몸이 술을 이겨낼 만큼의 상태가 아닌 걸 알기 때문인데, 밥그릇 가득 막걸리를 따르면 맴돌이가 생기는데 뽀얀 술의 맴돌이를 들여다본다. 잠시 후 술 덩어리가 가라앉아 맑아지면 새끼손가락을 넣어 휘휘 젓고 다시 섞어 입으로 가져간다. 먼저 코로 영접하고, 눈을 맞추고 식도로 넘기는 예의를 갖추는 간소한 의식을 거친다.
막걸리 영접은 나이를 먹고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졌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이행이었다.
더 부연 설명이 필요한 것은 소주와 마찬가지로 막걸리에도 안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주와 달리 막걸리엔 국물 안주가 맞지 않는다. 제일 좋은 건 빈대떡 같은 전 종류고, 깍두기와 열무김치도 훌륭하다. 편의점에서 간편하게 살 수 있는 멸치도 짭짤한 맛이 일품이다. 독일 맥주만큼이나 우리나라의 막걸리도 다양해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더군다나 쌀막걸리가 아닌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편안한 게 좋다. 술도 그렇다. 오늘은 노란 밤 막걸리를 마셔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