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왔다. OO사무소 대표이고 귀하가 보내신 이력서를 보고 전화드렸습니다.
아! 아! 예. 예. 귀하의 조건과 회사의 조건이 맞아 같이 일하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요. 그러면 지방 근무가 가능하시겠습니까? 네.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산으로 면접을 보러 오실 수 있습니까? 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단순히 면접만 보기 위해 부산까지 가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아주 확정적인 것이면 몰라도. 아. 예. 확정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고 서류를 준비하시고 오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언제 방문 가능할까요?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서둘러 부산행 KTX 기차를 예매했다.
집사람이 들어오고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아내가 축하한다고 하며 진한 포옹을 한다. 왜, 아니겠는가. 벌써 반년 가까운 백수 신세를 벗어나는 낭보를 전했는데 어찌 된 것이냐고 상세 내용을 이야기하란다. 다음 순서를 이야기했다. 숙소는 어떻게 되는 것 인지, 교통편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다음 날은 강좌 신청한 것이 있어 강좌를 들으러 갔다. 진동음이 울리고 수신된 내용을 보는 순간 망연자실해졌다. 발주처에 경력증명서를 제시한 결과 조건이 미흡하여 다음으로 미루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내용 확인 후 밀려오는 초조함과 서운함이 섞여 안절부절못하다가 시간을 어찌 보냈는지조차 모르고 강의가 종료되고, 강의장을 빠져나왔다. 순간 목이 마르고 음수대에서 냉수를 연거푸 두 번이나 따라 마셨다. 이미 벌어지고 결정된 일에 대하여 전화하여 따져봤자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와 같다.
수습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막상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 우선 머리를 자르고 다음 순서로 병원 들러 처방전을 받고 약을 타자. 배가 고프다. 집에 도착하여 찌개를 화구에 올려놓고 계란프라이를 만들었다. 허겁지겁 밥을 입으로 넣고 씹는 둥 마는 둥 배를 채웠다. 눈가로 피로가 몰려왔다.
아무 생각 없이 이불속으로 들어가 낮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나니 오후 6시가 다 되었다. 집사람 왈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자고 있더란다. 차마 사실대로 말하기가 뭐 했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저녁을 먹고 나서 다시 컴퓨터를 켜고 구인 사이트에 접속했다. 몇 군데 구인 정보를 취합하고 메일을 열어 이력서와 경력증명서를 첨부하여 송부하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나고 갑자기 나도 모르게 허무가 몰려오고 탈진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나이 먹어서도 이런데, 그렇게 경험이 많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많은 경험을 했고, 경륜이 쌓여있다고 생각했는데도 마음이 공허하다. 그렇다면 이제껏 쌓아온 경험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직도 체화되지 못하고 몸과 마음 언저리에 머물러 손님으로만 남았다는 말인가.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의도치 않게 다가왔다. 방석에 주저앉아 골똘히 생각을 집중하고, 이런 생각을 가진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결과를 듣고 생긴 감정들. 초조함, 서운함, 부족함, 공허함 등이 떠올랐다. 분명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는데 초조함이라니. 이 감정이 떠올랐음은 아직도 생활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결정적 반증일 듯싶었다. 부족함에 대한 감정의 정리도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얼마인데 아직도 채우지 못하여 안달이라니, 놓아 버리자고 얼마나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다짐하였던가? 공염불이 되었다. 초조와 부족에 대한 감정 정리를 마치고, 서운함과 공허함에 대해서도 발생 원인을 나름 분석하였다.
서운한 것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갑작스레 공허함이라니, 이 감정은, 생각은 정리가 더 필요해 보인다.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야 심신의 안돈을 가져올 수 있을까? 아니 이 장르는 나이와 관계없이 자신의 마음공부를 더하고, 깊이 하여 부질없는 것에서 벗어나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이것이 해답인 듯싶다. 잠시 알았다가 잊고 살면서, 또 깨달음이 필요한 순간을 갖고, 깊은 고뇌에 사로잡혀 괴로움을 맞이하는 도돌이표 인생을 살아왔다. 지금도 그렇다. 정말로 내 인생에서 이제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시간을 살고 싶다. 진정한 깨우침까지는 아니더라도 살면서 알아 얻은 것은 잊지 말고 삶 속에 녹여냈으면 싶다. 설령 다시 잊고 사는 삶이 계속되더라도 그것을 짧게 끊고, 잊었던 것들을 떠올려 미소 짓고 다시 시작하는 인생으로 나아가고 싶다. 오늘을 첫날 삼아 다시 시작해 보려 한다. 日新又日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