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추스리기
주말 골프 라운딩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가 온다. 친구에게.
아들 결혼 날짜가 잡혔다고. 내년 오월이란다. 축하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잠깐 동안 이 친구가 무얼 이야기하고 싶어 전화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많이 남은 제 아들 결혼이 그렇게 빨리 내게 알려져야 할 만큼 시급한 일이었던가? 다시 한번 축하한다고 하며 청첩장을 보내라고 말했다. 솔직히 말 더 섞으며 이야기를 끌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 친구는 내 사정과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관계없다는 식의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더 큰 문제는 자기 딸아이가 결혼할 생각이 없어 문제라는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고 거북 해졌다. 그건 네 문제라고 통박 놓았다. 속으로 왜 내가 네 딸의 근황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마음이 비비 꼬아지고 옹졸한 자존심이 꽈리를 튼다. 그리고 화제를 전환하기 위하여 사진관은 잘되고 있느냐고 물었다. ( 사실 지금 사진관은 거의 사양산업이다).
그러면 입을 다물 줄 알았는데 실수였다. 70까지만 하려고 했는데 제 누나가 쉬면 안 된다고. 80을 넘어 90까지 하라고, 뒤를 살펴 줄 테니 하라고 했단다. 그래서 난 네 누나가 90까지 유치원을 하냐고 묻고 너희 집안은 장수 집안이네? 다들 90까지 산다고 하니. 이 친구가 발끈한다.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사실이잖아. 90까지 산다고 하니. 장수 집안 맞는 거 아니냐고. 지난번 내 아들 건에 대한 녀석의 표현으로 불편한 심기가 가슴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데 제 불편한 것만 말한다. 제 누나 이야기부터 아들과 딸 그리고 제 동생들 이야기까지 내가 몰라도 상관없는 얘기까지. 피곤하다.
이제껏 다 들어주고 지내왔기에 녀석은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있다. 지금이라도 네가 한 표현 때문에 마음이 상했노라고 말해 주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이 옹졸한 마음을 풀어 용서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내는 것이 맞는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사람은 순간의 감정에 상처 입고 돌아설 수 있다. 하물며 부부 관계도 그럴진대, 친구와의 관계는 더하다. 지금 내 경우처럼. 나이 육십 중반을 넘어 몇 년 뒤면 칠십에 다다른다. 육체의 나이로는 노인인데 정신의 나이는 유아 시절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모든 것이 그런 건 아니다. 선별적으로 그런 것인데 이 선별적인 게 항상 마음을 아프게 하고 마음을 닫아걸게 만든다. 나만 그런가 싶기도 하다. 집사람 말마따나 책을 그렇게 많이 읽으면 뭐 하냐? 생활에 적용하지 못하고, 행동도 바뀌는 것 없는데.
맞는 말이다. 그러나 되려 묻고 싶다. 책을 읽은 사람은 책에서 일러준 대로 살아야만 하는 것이냐고. 성경과 불경을 읽고 사는 성직자들이 다 그 뜻대로 살고 있느냐고? 내가 책 읽었다고 당신에게 유세를 떨었느냐고, 그러면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은 다들 명문대학에 가느냐고? 자기 능력에 따라 읽은 것이 살이 되고 뼈가 되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 되는 사람도 있는 거 아니냐고 아득바득 대꾸한다. 왜? 내 독서 가지고 이것에 결부시키느냐고 되묻곤 한다. 아직은 마음을 풀 여유가, 똬리 튼 응어리가 풀어질 계기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제 느낌대로 살면 좋을 것 같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꼭 그렇게 굴러가지만 않는다.
며칠 전 집사람에게 듣기 불편한 이야기 했다고 눈도 마주치려 하질 않는다. 밥 먹을 때도 데면데면한다. 나로선 구태여 사과할 마음이 없어, 그냥 그대로 지내고 있다.
이럴 때는 무관심도 해결 방법의 하나란 생각이 든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 서로를 찌르지 않는 고슴도치 거리 정도- 서로에 대해 관심 없음을 보이는 것을 실행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마음이 멀어질 정도의 거리는 아니라도, 눈에서 멀어질 정도의 거리는 유지하자고 내게 물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연민, 동정, 긍정, 부정 등 다양한 감정이 오르고 내리지만 그중 하나가 맞다고 하면 이어 나가고 아니면 다시 떠올리고 그러다 보면 추슬러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감정의 객관화가 필요하지만, 내 감정이 순전히 주관적인 것에 기초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몰이해와 지성적이지 않은 파렴치한 생각에 기초한다면 과감히 뱀 탈피하듯 껍질을 벗고 나올 일이지만 사람 살면서 그럴 일이 몇 번이나 일어나겠는가?
옹졸함이 숨 쉬는 근육에 지장을 준다. 그래도 마음 또아리는 풀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시간이 조금 더 가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