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 이탈리아의 팽창과 파멸
여기 콧수염의 로망이 된 기원이 있다.
그는 옛 고대 제국의 부활을 외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쿠데타는 성공했고 그는 왕좌에 앉았다.
이후 콧수염이 두 번째 폭발을 일으켰을 때
그는 숨죽이듯 기다렸다.
20세기의 40번째 해,
혁명이 콧수염에 의해 무너지는 걸 목도한 그는
결국 콧수염과 함께 올리브와 민주주의의 고장을 침공했고
혼자서 동부의 사막을 휩쓸었다.
자신감이 오른 그는
그다음 해인 41번째 해까지 콧수염과 함께 북부 사막을 폭풍과 같이 휘저었다.
하지만 그의 욕심이 과도해서였을까?
자기도 모르는 순간 동부 사막은 빼앗겨 버렸고
민주주의와 올리브의 고장에서는 여기저기서 폭발이 일어났다.
북부 사막에서는 아이스크림 녹듯 병력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후 장화의 아랫부분과 무릎 바로 밑 부분까지 허용해 준 그는
주유소에서 니리솔무가 되는 최후를 맞이한다.
해설: 위 에세이는 1922년 로마 진군으로 권력을 잡고 파시스트 정권을 수립한 무솔리니와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그의 이러한 쿠데타는 나중에히틀러에게 큰 감명을 주어 그가 나치당을 창당해 총통의 자리까지 가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무솔리니는 고대 로마 제국의 영광과 부활을 주장하며 1940년 그리스, 동아프리카에서는 영국령 케냐와 소말리아, 북아프리카에서는 자국의 식민지였던 리비아를 발판 삼아 영국령 이집트를 향한 침공을 개시합니다. 초반에는 파죽지세로 점령지를 확대하고 지중해 함대를 통해 지중해에 대한 재해권 역시 들고 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얼마 안 가 1940-1941년 사이 이탈리아는 영국에 의해 동아프리카에서 점차 밀리기 시작하자 항복해 버리고 비슷한 시기 북아프리카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막의 여우’라고 불리는 나치의 명장 에르빈 롬멜의 도움으로 다시 한번 북아프리카에서 공세 주도권을 쥐는 듯했지만 토브룩 공방전(1941년),엘 알라메인 전투(1942년), 카세린 협곡 전투(1943년)를 끝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완전히 밀려나 연합군의 시칠리아 섬 상륙을 허용, 그 해 9월 무솔리니는 실각하고 이탈리아 남부에는 연합군 군정 체제가 들어서며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막을 내립니다. 한편 무솔리니는 히틀러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해 이탈리아 반도 북쪽에 살로 공화국을 건국하나 나치의 패전이 확실시되며 결국 1945년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반파시스트 파르티잔들에게 붙잡혀 사살당하고 그의 시체는 주유소에서 거꾸로 매달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