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탄생과 발전
참 힘든 길이었다. 길고도 긴 압제와 종교 탄압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그곳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여전히 목표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신을 명분 삼은 장기적인 폭력이 벌어진 후 문서 하나만으로 폭력과 압제에서 벗어난 이곳
이후 이곳은 해양의 독수리로서 전 세계를 활보하고 다닌다.
그러면서 전 세계의 판도를 뒤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그만큼 입힌 상처도 많았다.
이후 시간이 지난 지금 저러한 정신을 이어받은 그곳은
지구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곳이 되었다.
해설: 이 작품은 네덜란드에 관한 것입니다. 이 직전 작품인 설원에서 설명드렸듯 네덜란드 역시 30년 전쟁의 결과물이었습니다.
30년 전쟁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가 슈말칼덴 전쟁(1546-1547/개신교 vs 로마 카톨릭)의 결과로 1555년에 체결된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루터파 개신교를 신성로마제국 내에서 인정한다는 내용)를 위반해 일어난 전쟁입니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페르디난트 2세의 전임 황제였던 마티아스가 페르디난트 2세에게 보헤미아 왕위를 물려주었고 이 왕위에 앉은 페르디난트 2세는 보헤미아에서 개신교 집회를 못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그의 대리인들이 집회 금지령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보헤미아 내 개신교 세력과 충돌했고 이에 화가 난 개신교 세력은 페르디난트 2세의 대리인을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이를 프라하 창문 투척 사건이라고 부름/보헤미아=현재 체코) 이에 화가 난 신성로마제국 내 개신교 세력은 반발 결국 페르디난트 2세로 대표되는 카톨릭 세력과 전쟁을 하게 되는 이게 바로 30년 전쟁인 것입니다.
전쟁 초기에는 당연히 개신교 세력이 열세였습니다. 하지만 주변 개신교 국가들이 신성로마제국 내 개신교 세력을 원조하러 왔습니다. 명분은 다양했습니다. 첫 타자는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당시 국왕은 크리스티안 4세로 명분은 신성로마제국 내 개신교 세력을 도와주겠다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종교 내전으로 신성로마제국이 혼란한 틈을 타 신성로마제국의 북부 영토를 장악해 발트해의 제해권을 쥐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은 신성로마제국의 카톨릭 세력에 의해 패배하고 결국 뤼베크 평화 조약을 체결 전선에서 이탈합니다. 이때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이 평화 조약에서 신성로마제국이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에 전쟁 배상금을 물리지도 않았고, 포로 즉시 교환 등의 조건을 내걸며 선처해 주자 이에 감복한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은 신성로마제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위해 전쟁 내도록 중립을 지키거나 혹은 카톨릭 세력 측에 참전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 타자는 스웨덴 제국이었습니다. 당시 국왕은 독실한 루터파 개신교 신자였고 발트해를 차지해 패권을 강화하고 싶었던 북방의 사자라고 불리는 구스타브 2세 아돌프. 그 역시 신성로마제국 내 개신교 세력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참전했습니다. 그 결과 연전연승하며 당시에 승리했던 뤼첸 전투에서 마지막으로 싸우다가 전사합니다. 하지만 개신교 세력의 구심점이자 전략가•명장 역할을 했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죽자 개신교 동맹군은 내우외환에 빠졌고 뇌르틀링겐 전투에서 카톨릭 세력에 패배하면서 사기가 급격히 하락했습니다. 이후 프라하 조약으로 스웨덴 제국 역시 전선에서 이탈합니다.
세 번째 마지막 타자는 프랑스였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카톨릭 국가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프랑스가 개신교 세력을 구제하려고 참전했을까요? 당시 프랑스는 에스파냐(합스부르크 가문 소속) 신성로마제국(합스부르크 가문 소속)에 의해 지정학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양쪽에서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동쪽의 신성로마제국이 페르디난트 2세와 카톨릭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거대한 통일 제국이 되는 것을 막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당시 프랑스의 추기경 리슐리외는 이를 위해 첩보전•외교전&전비 마련을 동시에 진행한(특히나 스웨덴•네덜란드 등을 동맹으로 포섭하고 스웨덴에게는 비밀리에 군자금까지 조달합니다.) 후 30년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듭니다. 프랑스의 참전으로 신성로마제국 내 카톨릭 동맹은 다시 한번 위기를 맞이하고 결국 장기화되는 전쟁을 버티지 못 한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페르디난트 2세와 카톨릭 세력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합니다.
여담으로 30년 전쟁 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카톨릭 국가임에도 30년 전쟁 당시 신성로마제국을 돕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귀족 의회 즉 세임에서 30년 전쟁에 가담하지 않는 것을 가결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북부에서 스웨덴과 전쟁 중이었고(이를 제4차 스웨덴-폴란드 전쟁이라고 부르며 1626년부터 1629년까지 진행됨. 스웨덴이 대승을 거둠.), 옆동네의 루스 차르국(현재 러시아)도 잠재적 적국이었으며, 남쪽에서는 오스만 제국과 국경 충돌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이 과도한 군사원정으로 만성적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왕실과 귀족이 부담할 세금•병력 차출 등이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30년 전쟁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신성로마제국을 도와 가담했더라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주력 기병인 윙드 후사르가 랜스 돌격(3-5m되는 속이 빈 장창을 이용해 말을 타고 적진으로 돌격하는 것) 또는 카라콜 전술(말을 탄 기병이 가벼운 휠락 머스킷을 들고 적진 바로 앞에서 총을 차례로 난사하며 본진으로 돌아가는 것)을 시전했더라면 전황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신성로마제국 내 칼뱅파와 루터파를 전부 인정하고, 스위스는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하며, 스웨덴은 영토를 확보해 발트해의 패권을 확립했으며, 신성로마제국 내 제후국들에게 주권을 보장하며 300여 개의 영방으로 쪼개져 신성로마제국의 분열은 더 심화되었습니다. 이때 네덜란드가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했는데 당시 네덜란드는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때 에스파냐의 지배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네덜란드 독립 전쟁=80년 전쟁(1568-1648)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80년 전쟁 즉 네덜란드 독립전쟁은 당시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2세가 카톨릭 강요 정책을 시행하자 개신교 세력이 많았던 네덜란드가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에스파냐로부터의 독립을 시도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 전쟁의 상당 기간이 30년 전쟁과 겹치며 그 결과 네덜란드는 독립하고 펠리페 2세 시절, 전성기의 정점에 달했던 에스파냐는 30년 전쟁(30년 전쟁 당시 에스파냐는 같은 카톨릭 세력으로서 신성로마제국을 지원했습니다.)과 80년 전쟁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전쟁을 치르면서 막대한 전비 지출로 재정 손실과 해군을 비롯한 군사력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게 서서히 경제적•군사적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여담으로 고이센이라는 단어는 거지라는 의미입니다. 이 명칭은 네덜란드의 에스파냐 총독부에 네덜란드인들이 에스파냐 총독을 자주 찾아와 종교의 자유를 요구했었는데 이때 에스파냐 총독이 장신의 네덜란드인을 보고 겁을 먹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총독에게 구걸하러 온 거지들이며 겁먹을 것 없다고 말한 설화에서 유래한 명칭입니다.)
이렇게 대서양 삼각 무역을 주도하던 에스파냐가 약화되자 이후의 해상 패권은 네덜란드에게로 넘어갑니다. 네덜란드는 잘 훈련된 해군력과 또 우수한 선박 기술로 전 세계 바다 곳곳을 누비며 무역 거점과 식민지들을 확보했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에스파냐 왕인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 왕위도 겸임하고 있었기에 포르투갈의 무역 고점을 공격하는 것은 곧 에스파냐를 공격하는 것이라며 포르투갈의 무역 거점 역시 많이 빼앗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믈라카 해협, 대만(이때 아시아는 명-청 교체기로 명나라의 잔존 세력인 정성공 일족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청의 남하를 피해 대만으로 넘어와 네덜란드를 축출시켜 버립니다.), 수리남, 인도네시아 등 곳곳에서 무역 활동을 해 향신료 무역을 주도하며 많은 이익을 누렸습니다. 오죽하면 당시 전 세계 선박의 3/4이 네덜란드 국적 배였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후 네덜란드 크롬웰의 항해법(영국 물건은 영국 국적의 선박으로만 실어 나른다는 내용의 법 즉 이는 네덜란드의 해양 무역에 큰 걸림돌이 된다는 걸 의미합니다.)과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가 육성한 영국 해군과 4차례의 걸친 해상 전투(제1•2•3•4차 영-란 전쟁)에 의해 많은 해군력과 전비를 소모했으며 특히 미국 독립 전쟁의 끝자락일 때 일어난 마지막 해전인 제4차 영란 전쟁(1781-1784)에서 영국이 결정적으로 승리했고 엎친데덮친 격으로 계속해서 바뀌는 전장의 환경에 따라 필요로 되는 선박 제조 기술을 따라잡지 못 하며 해상 패권과 해양 사업은 영국에게로 넘어가고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네덜란드의 전성기가 극에 달했던 17-18세기 전반을 일컫는 말 이때 네덜란드의 해상 무역으로 금융업•예술•상업 등이 매우 발달했는데 그중 상업 자본주의의 발달을 잘 보여주는 것이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 즉 최초의 주식회사였습니다. 여기서 장거리 무역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니 투자자들이 여러 명 모여 자신이 얼마나 투자했는지를 보여주는 투자 증서를 작성•발급합니다. 이후 투자자가 죽거나 아님 투자한 무역에서 손을 떼고 싶다면 그 투자자는 자신의 투자 증서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서 다른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겁니다. 추가로 네덜란드가 현재 미국 뉴욕에 먼저 당도해 무역 거점을 확보 거기에 벽을 세웠는데 그 벽이 있었던 곳이 현재 금융 중심지 월가=Wall Street며 뉴욕의 명칭은 원래 네덜란드 수도인 암스테르담의 명칭을 따와 뉴 암스테르담이었고 이후 네덜란드의 황금시대가 저물며 영국이 여기를 차지하게 되자 뉴욕으로 바뀐 것입니다.)는 서서히 저물게 됩니다.
이후 19세기 초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빈 조약으로 빈 체제가 탄생하면서 네덜란드는 벨기에를 잠시 지배하기도 합니다. 이는 영국,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주변 영상들이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면 벨기에를 바탕으로 늘어나는 인구와 자원 산업과 경제력을 근간으로 군사력을 증강시켜 위에서 언급한 4국이 오기 전까지 혁명을 억제하라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1830년 프랑스 내 7월 혁명의 여파로 벨기에 독립 혁명이 일어나 벨기에는 네덜란드에게서 독립합니다. 이후 19세기 전반에 걸쳐 네덜란드와 수리남 등지를 지배하며 제국주의 열강을 자처하며 여전히 식민 지배와 가혹한 수탈 등을 일삼았습니다. 이후 1차 대전 시기(1914-1918) 네덜란드는 중립국을 선언 독일 제국의 침공을 면하고 잘 넘어가는 듯했지만 21년 후 터진 2차 대전 시기(1939-1945/경우에 따라서는 중일 전쟁 발발 연도인 1937년으로부터 보기도 함)에도 중립국을 표명했지만 나치는 1940년에 전면 침공해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인 1945년까지 네덜란드를 점령•통치했습니다. 이 시기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는 1942년 일본이 남방 작전을 실행•점령합니다.
2차 대전 종전 후 네덜란드는 프랑스처럼 식민지 관리 특히 인도네시아 지배를 시도하지만 미국의 압력으로 인도네시아를 결국 독립시켜 줍니다. 이에 이어 냉전 시기 전반에 걸쳐 식민지들(수리남 등) 하나둘씩 독립시켜 주며 네덜란드 식민 제국은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같은 냉전 시기 네덜란드는 서유럽의 일원으로서 미국 마셜 플랜의 원조를 받아 재건에 성공했고 나토에 가입해 소련 견제에도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러시아의 서진을 견제하기 위한 나토의 필요성이 다시 재부상했고 이에 더해 트럼프의 방위비 증액 압박도 가해지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트럼프발 관세 전쟁까지 겹치며 네덜란드 역시 현대 국제 사회의 새로운 지정학적 위기를 맞이한 상황입니다. 이외에도 네덜란드는 대단히 도전적인•도발적인 시도를 많이 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세계 최초 동성애자 결혼 합법화, 성매매를 위한 음지인 홍등가 용인, 대마초 흡연을 합법화시킨 후 1990년대 카페숍만 1400 여곳이 등장(대마초를 필 수 있는 전용 공간/커피를 마시려면 카페라고 쓰인 곳을 찾아야 함.)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며 약간의 보수화로 커피숍의 개수가 1/2인 700여 곳으로 감소(비록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추세임.) 또한 네덜란드는 건축 공학(특히나 네덜란드는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은 지대이며 이는 국명인 네덜란드가 낮은 땅이라는 의미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구래서 그런지 네덜란드는 수상 가옥이 발달했고, 홍수와해일에 취약한 나머지 댐, 제방, 배수 시설 등을 건설하며 건축관련 기술을 쌓아왔습니다.), 조선업(현대 네덜란드 조선업은 경쟁 심화, 기술 변화에 대한 적응 실패, 중국, 한국과 같은 아시아권 선박 강국의 등장 등으로 황금시대만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고부가 가치 선박 예를 들자면 크루즈선, 특수선 등 특정 분야에서 특화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생산을 위한 장비를 잘 만들기로도 유명합니다.(그중 대표적인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이 ASML입니다. 이러한 산업적•경제적 특징 때문에 한때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칩4 동맹 구상에서 네덜란드를 포함시키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