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
이번에는 독일이다. 독일은 알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군비 확장이 금지됐었고, 거기다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직후 냉전 체제가 도래하자 미국은 공산화된 동유럽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나토를 창설했으며 이와 동시에 자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서독 재무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냉전 직전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인근 국가를 침공한 독일을 재무장시키기에는 미국과 그 우방국들도 꺼림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 볼 때 서독의 재무장은 불가피했고, 미국과 그 우방국들은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바로 독일의 군대가 나토의 통제 하에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결국 이러한 해결 방안의 실행을 위해 나토 회원국들과 미국은 서독을 나토에 가입시킨다. 이때만 해도 독일은 냉전과 분단이라는 독일 내부와 국제 사회의 상황적 특수성 때문에 군비를 확장할 수 있게 된다. (1960년대 초만 해도 독일은 자국 GDP의 약 5%를 국방에 투자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할슈타인 원칙이 폐지되고 (공산권 국가들과는 수교를 하지 않겠다는 냉전 당시 서독의 외교 정책) 데탕트 시대가 도래해 냉전의 분위기가 완화되며 이로 인해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의 동방 정책이 실시되자 독일 내부에서는 통일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생겨났다. 이후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인 1990년에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하는 방식으로 통일되며 하나의 통일된 독일이 들어서자 약화되게 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3가지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1. 공산권 블록이 무너지면서 더 이상 견제해야 할 상대가 없어지자 무기를 대량으로 구매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2. 통일 당시 경제적 상황이 안 좋았다. 당시 경제적 수준이 동독보다 좋았던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통일되자 독일 내부 특히 서독 국민과 동독 국민 사이에서 경제적 격차가 많이 벌어졌다.
3. 당시에 통일 비용도 많이 들었는데 누적된 액수만 해도 무려 2조 유로 한화로 약 2700조 원이었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독일은 점차 군비 투자 규모를 줄여 나간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독일은 GDP 대비 1.5%를 국방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당시 독일의 GDP 규모(4조 4298억 달러)가 세계 3위 수준임을 감안하면 낮은 수치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의하면 같은 해 미국은 3.4%, 호주는 1.9%, 인도는 2.4%, 중국은 1.7%, 한국은 2.8%, 대만은 2.2%, 폴란드는 3.8%, 러시아는 5.9%, 덴마크는 2.0%, 핀란드는 2.4%, 프랑스는 2.1%, 이탈리아는 1.6%, 노르웨이도 1.6%, 영국은 2.3%, 이스라엘은 5.3%, 우크라이나는 36.7%를 국방비에 투자했다. 물론 독일과 비슷하게 혹은 똑같게 국방비를 지출했던 나라도 있다. 캐나다(1.3%), 일본(1.2%), 벨기에(1.2%), 네덜란드(1.5%), 포르투갈(1.5%), 스페인(1.5%), 스웨덴(1.5%)이 대표적 예다. 하지만 캐나다(2조 1178억 달러), 일본(4조 2300억 달러), 벨기에(6275억 달러), 네덜란드(1조 927억 달러), 포르투갈(2764억 달러), 스페인(1조 5820억 달러), 스웨덴(5971억 달러) 전부 독일(4조 4298억 달러)보다 GDP 규모가 적음을 감안한다면 독일이 GDP 대비 지출하는 국방비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GDP 출처: IMF, 2023년 기준)
이외에 독일의 지정학적 위치도 군비 감소에 한몫했다. 독일은 서쪽으로는 프랑스, 동쪽으로는 약간의 거리가 있지만 러시아도 견제해야 하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아래는 독일의 위치를 보여주은 유럽 지도다.
그렇기에 독일이 매우 강해지면 유럽 국가들에게 위협이 되고, 매우 약해지면 주변 강대국들에게 손쉬운 먹이가 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몇 가지 있다.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이 재무장을 시작하고, 수데텐과 체코 전역,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후 독일은 동쪽으로는 폴란드와 소련을 서쪽으로는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를, 북쪽으로는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전면 침공했다. 그 결과 6년 간의 참혹한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25년 전인 1914년에는 빌헬름 2세 치하의 독일 제2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이 전쟁은 4년간 유럽 대륙을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더 과거인 1866년과 1870년에는 독일 통일을 주도하던 프로이센이 독일 통일을 원치 않았던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랑 전쟁을 했으며(1866년: 보-오 전쟁/1870년: 보-불 전쟁) 독일이 신성로마제국으로 분열되어 있던 시절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는 신성로마제국을 정복-해체한 후 라인 연방을 만들었고 더 이전인 1618년-1648년에는 로마 카톨릭을 중심으로 독일 지역에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탄생할까 두려워했던 프랑스가 카톨릭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신성로마제국 내의 루터파 개신교 세력을 지원해 독일에 로마 카톨릭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탄생하는 걸 막음으로써 30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 결과로 베스트 팔렌 조약이 맺어졌고 신성로마제국의 분열은 더욱 심화됐다.
이렇기에 독일이 강력하면서도 얼마나 평화적으로 있는지가 유럽 안보에 있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냉전 때는 비록 어쩔 수 없이 군비 확장을 했지만 이마저도 독일 군대가 나토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다는 조건 하에 이뤄진 것이었고, 냉전이 종식된 후 통일 독일이 들어서자 독일이 평화주의 노선을 선택해 주변국들을 안심시키고자 자국 안보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군비를 삭감한 것이다. 여기다가 기민당과 사민당 사이에서 국방비 증액과 관련한 의견 차이로 정치적 대립이 빚어지면서 국방비 증액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당시 독일 내부에서도 국방비 증액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지닌 여론이 많았다. 2017년에 실시된 한 독일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방비 증액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31%, 현상 유지가 51%, 국방비 증액 찬성 여론은 13%에 불과했다. 이렇게 안일한 태도 속에서 독일은 지속적으로 국방비를 삭감해 왔다.
그렇다면 저러한 독일이 왜 하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시작된 2022년부터 국방비를 GDP 대비 2% 정도로 증액하겠다고 했을까? 이전에도 국방비를 증액할 수 있었던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독일의 정치적 이유와 관련이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하기 전 독일에서 총선이 있었고, 이 총선에서 숄츠 총리가 당선됐다. 하지만 숄츠 총리가 속해있는 사민당에는 러시아와 친분이 있는 정치인들이 다수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롤프 뮈체니히 사민당 원내대표,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러시아와의 친분을 믿고 있었던 사민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유럽에 안보적 위협을 몰고 왔다. 설상가상으로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가 위태로워지자 독일에게 안보적 위협이 다가올 것이라고 느꼈던 독일 내에서는 국방비를 증액해야 한다는 여론이 국민들과 정계 내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2022년 2월 28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4일 후) 실시된 독일 설문 조사에서는 국민들의 78%가 국방비 증액에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16%만이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는 전쟁 발발 5년 전에 실시된 설문조사의 결과와는 완전히 다름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독일의 에너지원 중 천연가스 비중이 높은 편인데 이러한 천연가스에 있어 독일의 대러시아 의존도는 2021년 기준 59.5%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일의 대표 자동차 기업인 폭스바겐과 벤츠도 존재하고 있었다. 독일은 이러한 경제적 이유 때문에 섣불리 국방비를 증액해 괜히 러시아를 외교적으로 자극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다.
이러한 독일의 국방비 증대는 유럽에서의 안보 구조가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며 나토의 전력 증강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렇게 될 경우 나토를 통해 러시아를 견제하는 미국에게도 좋다. 이러한 독일의 국방비 증액이 어떤 추가적인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