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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슈뢰딩거는 왜 생명을 물었을까?

물리학자가 던진 질문이 열어준, 생명의 새로운 문

by 플루토씨
“선생님, 생명이란 도대체 뭐예요?
전기가 들어오듯이 켜졌다 꺼지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운명일까요?”



아이들의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인류가 답하기 가장 어려운 물음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20세기 초 이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 사람은
생물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였습니다.



바로 양자역학의 거장이자,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였죠.





슈뢰딩거, 물리학자에서 생명의 비밀 탐구자로


슈뢰딩거(1887~1961)는 20세기 초 물리학에 혁명을 가져온 양자역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입니다.
원자의 세계를 해명하고,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역설적인 사고실험으로 널리 알려졌죠.


그런데 그는 물리학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생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붙들었습니다.

1944년, 전쟁의 혼란 속에서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어

『생명은 무엇인가(What is Life?)』라는 책을 출간합니다.



이 얇은 책은 생명을 물리학과 화학의 원리로 설명하려 한 혁신적인 시도로,

훗날 분자생물학의 태동을 이끌었습니다.



물리학자가 본 생명: 무질서 속의 질서


자연계의 모든 물질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질서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의 법칙입니다.

무질서 vs 질서 (예시)

깨진 컵이 저절로 붙지 않고, 정돈된 방이 시간이 지나면 흐트러지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생명체는 이 흐름을 거슬러, 놀라운 질서를 유지합니다.


식사는 단순한 섭취 행위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자기 내부의 질서를 지키는 과정인 셈입니다.

슈뢰딩거는 생명체를 “낮은 엔트로피 상태를 유지하는 존재”로 정의했습니다.
즉, 스스로 구조를 만들고 보존하는 자기 조직화 시스템으로 본 것이죠.



암호 같은 물질, 유전자의 실마리


슈뢰딩거의 책에서 가장 놀라운 통찰은 유전 물질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당시 DNA가 유전자의 정체라는 사실조차 확립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생명의 비밀이 “비주기적 결정(Aperiodic Crystal)”이라는

특이한 분자 구조에 담겨 있을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그 속에는 후손에게 전해질 암호 같은 정보가 숨어 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대담한 추측은 이후 젊은 과학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밝혀내는 데 중요한 사상적 단서가 되었습니다.



학문의 경계를 넘다: 융합의 힘


『생명은 무엇인가』는 단순한 철학적 수필이 아니었습니다.
물리학적 사고와 생물학적 문제의 결합이 만들어낸 학제 간 연구의 출발점이었죠.


이 책은 분자생물학의 토대를 닦으며,

오늘날 우리가 생명 현상을 물리·화학·정보학의 언어로 탐구하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슈뢰딩거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과학은 각자의 울타리 안에서가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넘어설 때 더 깊어진다.”



다음 이야기 예고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왜

생명의 설계도는 어디에 있는지 -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요.


이어지는 이야기는

제9화: 유전자는 언제 진짜로 이해되었을까?



다음 화에서는 멘델의 완두콩 실험에서 시작해,

허시–체이스의 실험과 DNA 이중나선 발견에 이르기까지,

유전자 개념이 ‘가설’에서 ‘확신’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탐구해 봅니다.




매주 월요일, 플루토씨의 과학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과학은 정답이 아니라 여정입니다.

함께 걸어가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처럼.


끝, 안녕.


#꼬꼬무과학 #슈뢰딩거 #생명은무엇인가 #분자생물학 #엔트로피 #DNA발견

#과학은질문이다 #양자역학 #유전정보 #과학사의순간 #브런치스토리 #플루토씨

#과학의본성 #꼬꼬무과학 #브런치스토리 #과학은질문이다



{※ 교사·교육자 독자를 위한 부록}


▣ 교육과정 연계 정보 ▣


■ 관련 성취기준

□ [12생과01-01] 생물 및 생명과학의 특성을 이해하고 생명과학의 성과를 협력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 [12유전02-05] 생물의 유전자 발현 조절 및 발생에 대한 연구가 인류 복지에 기여한 사례를 조사하여 협력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 [12과사02-02] 현대 과학의 등장 과정에서 나타난 과학자들의 논쟁이나 토론 사례를 조사하고, 과학적 의사소통에서 지켜야 할 규범과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 반영 과목 및 학년

□ 고등학교 선택과목 '생명과학' > 생명 시스템의 구성
□ 고등학교 선택과목 '생물의 유전' > 유전자의 발현

□ 고등학교 선택과목 '과학의 역사와 문화' > 변화하는 과학과 세계


■ 교육과정 반영 여부

□ 세포, DNA, 단백질 합성 등은 필수 반영되어 있으나,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과학사적 맥락은 교과서에서 간단히 언급되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많음.
□ 엔트로피 개념(물리학)과 생명의 질서(생물학)를 연결하는 학문 간 융합적 시각은 교육과정에서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지만, 확장 학습에 활용 가능.


■ 활용 팁

□ 과학사 속 ‘학문 간 융합’ 사례로 제시: 물리학자가 생명을 질문한 사례를 통해 학제 간 연구의 중요성 강조.
□ 토론 주제로 활용: 엔트로피(무질서도 증가)와 DNA의 구조적 안정성을 연결하여 “생명은 어떻게 질서를 유지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짐.
□ 수업 자료 확장: 슈뢰딩거 원문 발췌, 다큐멘터리 영상, DNA 발견사 자료를 함께 제시하면 학생들의 맥락 이해가 깊어짐.
□ 과학의 본성(NOS) 탐구: “생명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은 특정 학문이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과 협력”이라는 메시지로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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