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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생명은 어디서 왔을까?

생명의 기원을 향한 과학의 도전

by 플루토씨
“지구에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이 질문은 우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품어온 가장 근원적이고도 신비로운 물음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우리는 언제나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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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서 왔을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신화와 종교, 철학은 오래도록 이 질문에 답하려 애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는 ‘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 거대한 미스터리에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의 기원을 묻다 ― 신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고대의 사람들은 생명을 ‘신의 선물’로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썩은 고기에서 구더기가 저절로 생겨난다고 믿었고, 진흙에서 벌레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죠. 이것이 바로 자연발생설입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프란체스코 레디의 구더기 실험, 19세기 루이 파스퇴르의 백조 목 플라스크 실험은 이 믿음을 무너뜨렸습니다.


“생명은 생명에서만 나온다(Omne vivum ex vivo).” 과학은 이렇게 ‘생명의 기원’ 문제를 다시,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밀러–유리 실험 ― 원시 지구에서 생명의 재료가


1953년, 젊은 대학원생 스탠리 밀러와 교수 해럴드 유리는 대담한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메탄, 암모니아, 수소, 수증기를 유리 플라스크에 넣고, 번개를 흉내 낸 전기 스파크를 반복적으로 방전시켰습니다.


며칠 후, 맑던 액체는 붉게 변했고, 그 속에서 무려 20가지 이상의 유기 분자가 검출되었습니다. 그중에는 단백질의 기본 단위인 아미노산도 있었죠.


“생명의 재료가 무기물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결과는 당시 과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생명의 씨앗은 어디서 왔을까?


밀러–유리 실험은 ‘재료’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을 뿐,

그것이 어떻게 최초의 ‘세포’로 이어졌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이후 다양한 가설이 제안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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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해 열수구 기원설: 태양 빛조차 닿지 않는 심해 열수구. 뜨거운 물과 광물이 분출되는 이곳에서 화학에너지를 이용한 원시 생명체가 탄생했을 가능성.

▶ 우주 기원설(판스페르미아): 생명의 재료가 운석·혜성을 타고 지구로 들어왔을 가능성. 실제로 운석에서 아미노산, 핵염기 등이 발견됨.

▶ RNA 세계 가설: DNA보다 먼저, 자기 복제와 화학반응 촉매가 모두 가능한 RNA 분자가 ‘최초의 생명 활동’을 시작했을 것이라는 주장.



생명의 기원은 ‘현재진행형’인 과학


생명의 시작에 관한 탐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심해를 탐사하고, 운석을 분석하며, 우주 망원경으로 외계 행성을 관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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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 답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과학은 정답을 찾기보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과정 속에서 배운다는 것.

생명의 기원을 향한 도전은 우주 속 ‘우리의 자리’를 묻는 또 하나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우리가 매일 가까이 사용하는 전기의 비밀은
어떻게 현대 문명의 심장으로 이어졌을까요?


고대 그리스의 호박 실험부터
벤저민 프랭클린과 패러데이의 도전,
그리고 전류의 시대를 연 과학자들의 여정까지—


전기의 발견과 탐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 놀라운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 봅시다.


다음 이야기는 제11화: 전기는 누가 먼저 다뤘을까?

매주 월요일, 플루토씨의 과학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과학은 정답이 아니라 여정입니다.

함께 걸어가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처럼.


끝,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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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자료 - 생명의 기원, 그 위대한 탐구의 여정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생명이 저절로 생겨날 수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지만, 불과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썩은 고기에서 구더기가, 흙탕물에서 벌레가 ‘자연적으로’ 태어난다고 믿었습니다. 생명의 탄생은 신비로운 현상이었고, 자연발생설(Spontaneous Generation) 은 오랫동안 그럴듯한 설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과학의 빛은 이 오래된 믿음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위대한 탐구의 여정은 세 가지 결정적인 실험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 프란체스코 레디 – “구더기는 파리의 자식이다”

17세기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과학자 프란체스코 레디(Francesco Redi)는 고대부터 이어져 온 자연발생설에 처음으로 실험적 반기를 든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실험은 단순했지만 논리적이었죠.
레디는 두 개의 병에 고기를 넣고, 하나는 열어둔 병(A), 다른 하나는 천으로 막은 병(B)으로 구분했습니다. 며칠 후, A병의 고기에서는 구더기가 들끓었지만 파리가 접근할 수 없었던 B병의 고기에서는 구더기가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파리들이 천 주위를 맴돌 뿐이었죠.
이로써 레디는 “구더기는 썩은 고기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파리가 낳은 알에서 부화한 것”임을 밝혔습니다. 비로소 ‘보이는 생명’의 자연발생설은 무너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은 저절로 생겨날 것이라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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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 파스퇴르 – 미생물의 문을 닫다

200년 후, 프랑스의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이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는 ‘백조 목 플라스크 실험’으로 유명하죠. 파스퇴르는 공기가 드나들 수 있지만, 먼지나 미생물은 들어올 수 없는 S자형 목의 플라스크를 만들었습니다. 플라스크 안의 영양액을 끓여 멸균한 뒤 두었습니다. 놀랍게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액체는 전혀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목을 부러뜨려 외부 미생물이 들어오게 하자 금세 액체는 뿌옇게 흐려지고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파스퇴르는 “모든 생명은 생명으로부터만 온다(Omne vivum ex vivo)”, 즉 생물속생설(Biogenesis)을 완벽히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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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러의 실험

하지만 새로운 질문이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생명’은 어디에서 왔을까?
1953년, 젊은 과학도 스탠리 밀러(Stanley Miller)와 그의 스승 해럴드 유리(Harold Urey)가 이 수수께끼에 도전했습니다. 그들은 실험실 안에 원시 지구의 대기와 바다를 재현했습니다. 플라스크 안에는 메탄(CH₄), 암모니아(NH₃), 수소(H₂), 수증기(H₂O)를 넣고 산소는 배제했습니다. 그리고 원시 지구의 번개를 모방해 지속적으로 전기 스파크를 가했습니다.
며칠 후, 투명했던 용액은 붉은 갈색으로 변했고, 그 속에는 놀랍게도 아미노산이 생성되어 있었습니다. 아미노산은 바로 생명체의 기본 단위인 단백질의 재료입니다. 이 발견은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비록 생명을 직접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생명의 재료가 무생물에서 스스로 형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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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와 파스퇴르의 실험이 생명은 무생물에서 저절로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면, 밀러-유리의 실험은 역설적으로 생명이 없는 무기물로부터 생명의 ‘재료’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읽을 때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 레디, 파스퇴르, 밀러-유리의 실험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요?

▶ ‘생명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지금 다시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떤 실험을 설계해 보고 싶나요?


호기심과 궁금증 그리고 질문은 과학과 우리, 인류를 성장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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