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은 그 자체로 과학이다
“선생님, 명왕성은 왜 행성이 아니에요?”
아이의 질문에 멈칫했던 어느 날,
나는 과학이 틀릴 수도 있단 걸 이야기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어떤 별이 좋아요?”
교실에서 아이들이 가끔 묻는 질문이에요.
저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하곤 하죠.
“난… 명왕성이 좋아.”
그러면 아이들은 꼭 이렇게 말해요.
“근데, 명왕성은 행성 아니잖아요!” "그리고, 태양계가 아니라고 하던데요?"
맞아요.
명왕성은 지금 ‘공식 행성’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명왕성이 무언가 잘못해서가 아니에요.
명왕성은 늘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자신의 궤도를 따라 태양 주위를 돌고 있었을 뿐이에요.
변한 건 명왕성이 아니라, 우리가 ‘행성’이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방식이었죠.
명왕성의 '퇴출'은 명왕성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이 '행성'이라는 개념을 바라보는 방식이
과학적 발전에 따라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오늘은 이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서 과학의 정의가 어떻게 변하고,
왜 변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함께 알아볼까요?
1930년, 미국의 젊은 천문학도 클라이드 톰보는 밤마다 ‘미지의 행성 X’를 찾아 별 사진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러다 결국, 매일 수천 장의 별 사진을 관찰하다 그 속에서 '움직이는 점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여러 장의 유리 건판을 일일이 손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다른 별들은 모두 제자리인데 유독 하나의 작은 점이 살짝씩 이동한 것을 알아낸 것이죠.
여러분이라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정체도 모를 점 하나를 기다리고, 끝까지 찾아낼 수 있었을까요?
맞아요 그것은 바로 명왕성(Pluto)이었습니다.
이 발견은 당대 천문학의 큰 성취였고, 명왕성은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으로 환영받았죠.
이미 천문학계에서는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의 영향으로
발견되지 않은 '행성 X'에 대한 예측과 기대가 굉장히 컸다고 합니다.
톰보의 발견은 그의 예언을 실현시킨 듯이 보였고,
명왕성은 곧바로 아홉 번째 행성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아! 당시에는 '행성X'의 질량이나 크기를 정확히 측정할 기술이 없었어요.
대강 '해왕성이랑 비슷하겠지'라고 여긴 듯합니다.
게다가 명왕성은 나름의 궤도가 있고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바로 태양계의 식구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행성’이란 정확한 정의가 없었습니다.
그저 “태양 주위를 도는, 크고 둥근 천체”쯤으로 여겼던 거예요.
그래서 명왕성은 당연히 행성이라고 생각했죠.
너무 멀리 있어서 작게 보일 뿐,
분명 뭔가 크고 중요한 존재일 거라고 여겼어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복잡해졌습니다.
관측 기술이 좋아지면서 명왕성 너머의 ‘카이퍼 벨트’에서
비슷한 천체들이 무더기로 발견되기 시작한 거예요.
하나, 둘, ... 태양계의 식구들이 늘어나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2005년, 마이클 E. 브라운 박사는 에리스(Eris)라는 천체를 발견합니다.
명왕성보다 더 크고, 더 멀리 있는 천체.
그가 그토록 찾아내고 싶었던 태양계의 새로운 식구입니다.
바로 태양계의 10번째 행성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발견은 '행성의 기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행성’을 부르고 있었던가?”
그는 말했죠. "I discovered a planet – and lost one."
(나는 행성을 발견했지만, 하나를 잃었다.)
나중에 새로운 별명도 생깁니다.
‘플루토 킬러(Pluto Killer)’라고요.
2006년 8월, 국제천문연맹(IAU)은 체코 프라하 총회에서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만 ‘행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정했어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할 것
스스로 둥근 형태를 유지할 질량을 가질 것(중력으로 인해 스스로 둥글게 형성될 수 있는 능력)
자신의 공전 궤도 주변을 깨끗이 청소했을 것(자기 궤도 근처의 모든 천체를 위성으로 만들거나 밀어낼 수 있는 능력)
명왕성은 3번 조건에서 탈락했어요.
그래서 ‘왜소 행성(Dwarf Planet)’이라는 새로운 분류로 내려왔죠.
그런데 사실 명왕성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인류가 발견했을 때,
태양계의 한 식구로 이름이 생겼을 때,
그리고 다시 행성의 자격을 상실했을 때에도
그 모든 시간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어요.
변한 건 우리(사회와 과학자들의 합의)의 기준이었죠.
많은 사람들이 명왕성의 퇴출을 안타까워했어요.
심지어 항의 편지도 많았다고 해요.
하지만 이 일은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과학의 정의는 변합니다.
그건 실수나 후퇴가 아니라, 성장의 증거예요.
과학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여정입니다.
명왕성 이야기처럼요.
명왕성은 지금도 조용히 자신의 궤도를 따라 돌고 있어요.
언젠가 또 다른 발견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행성’이라는 정의를 다시 고칠지도 모릅니다.
왜 귀찮게 자꾸 바꾸고, 또 고치냐고요? 좋은 질문입니다.
자꾸 고치면 사람들이 헷갈리거나 다시 공부해야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게 과학입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용기,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
그래서 저는 명왕성이 좋아요.
과학이란 이름으로 쫓겨났지만, 자기 궤도를 묵묵히 도는 그 별.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우리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게 해 주니까요.
명왕성은 여전해요. 오늘도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답니다.
단지 인간이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행성'이라는 개념과
그 정의의 '경계'를 새롭게 설정한 것뿐이죠.
이러한 변화는 과학이 '정답'이라기보다는,
현재까지 얻은 가장 타당한 관찰과 증거를 바탕으로 세워진
'최선의 설명'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 관련 성취기준
□ [9과07-01] 태양계를 구성하는 천체의 특징을 알고, 행성을 목성형 행성과 지구형 행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 [10과탐1-01-02] 과학사의 다양한 사례들로부터 과학의 본성을 추론할 수 있다.
□ [12행우01-04] 행성과 소천체의 정의를 구분하여 이해하고, 소천체 탐사 자료를 통해 이들의 특징을 추론할 수 있다.
■ 반영 과목
□ 중학교 과학 > 태양계
□ 고등학교 선택과목 '과학탐구실험Ⅰ'
□ 고등학교 선택과목 '행성우주과학'
■ 교육과정 반영 여부
□ 명왕성이 태양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 '왜소 행성'이라는 용어와 특징 고등학교 선택 중심 교육과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 행성 정의의 '변화 과정', 과학자들의 '논쟁과 합의', 그리고 '과학 지식의 잠정성'과 같은 과학의 본성(Nature of Science, NOS)에 대한 자세한 배경과 심층적인 이해는 교과서에서 간략하게 다루거나 생략(IAU의 행성 정의 변경 과정, 왜소 행성의 기준, 명왕성 논쟁 등)되는 경우가 많아 보충학습이 요구됩니다.
■ 활용 팁
□ 과학 지식은 단순한 발견의 결과물이 아니라, 관찰과 실험, 치열한 논쟁과 합의를 거쳐 끊임없이 변화해 왔습니다. 이러한 '과학의 본성'은 학생들과의 토론 수업으로 확장해 보기에 더없이 좋은 주제입니다.
□ 명왕성 사례처럼 ‘정의’ 자체가 바뀌는 실제 과학사 이야기를 통해, 학생들은 과학 지식이 고정불변한 진리가 아니라 잠정적이며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 국제천문연맹(IAU) 총회 영상이나 명왕성 관련 다큐멘터리, 소행성 탐사 자료 등을 수업에 함께 활용하면, 학습의 몰입도와 과학적 사고력을 더욱 높일 수 있습니다.
1. 주변을 '청소' 했다는 의미
‘궤도를 청소했다’는 말은, 어떤 천체가 자기 궤도에서 가장 힘이 센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주변에 같이 도는 작은 천체들을 자기 중력으로 끌어당기거나, 밀어내서 궤도 근처를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쉽게 말하면, 자기 길을 단독으로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명왕성은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어요. 세 가지 ‘행성’ 조건 중 마지막 조건, 즉 주변을 정리할 만큼의 중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명왕성은 탈락한 셈이죠.
명왕성 주변에는 ‘카이퍼 벨트(Kuiper Belt)’라고 불리는 수많은 작은 얼음 천체들이 같이 돌고 있어요. 명왕성은 이 천체들을 자기 힘으로 없애거나 밀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 궤도를 지배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었고, 결국 ‘행성’이 아니라 ‘왜소 행성(dwarf planet)’으로 다시 분류되었답니다.
2. (읽기 자료) 저승에서 온 행성: 왜 명왕성은 Pluto가 되었을까
1930년, 24세의 젊은 아마추어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는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로웰 천문대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맡은 임무는 매우 고되었죠. 하루에 수천 장의 별 사진을 비교하며, 움직이는 점 하나를 찾아내야 했습니다. 그 점이 바로 ‘새로운 행성’ 일수도 있었거든요. 이 임무는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그는 해왕성 너머 어딘가에 태양계 아홉 번째 행성, 이른바 행성 X(Planet X)가 있을 거라 믿고 그 존재를 추적해 왔죠. 하지만 로웰은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그 바통을 톰보가 이어받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참고로 Pluto는 로마 신화에서 저승의 신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Hades)에 해당하는 존재죠. 지하세계(Underworld)를 다스리는 신으로, 어둠과 죽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징해요. 재밌는 사실인데, 1930년 클라이드 톰보는 새로운 천체를 발견한 후 전 세계에 이름 공모를 했어요. 그때 영국의 11살 소녀 '베네티아 버니(Venetia Burney)'가 "Pluto"라는 이름을 제안했죠.
그 이유는 다음 2가지예요.
1) 새로 발견된 천체가 어둡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지하세계의 신 이름과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2) 또 당시 명왕성을 예측했던 천문학자 Percival Lowell의 이니셜이 "PL"인데, Pluto도 P.L.로 시작하니까 의미가 겹친다고 여겼어요.
결과적으로 로웰 천문대도 이 이름에 만족했고, 1930년 3월 24일, 로웰 천문대는 새로 발견한 천체의 이름으로 'Pluto'를 선택했고, 이후 5월 1일 국제천문연맹에 의해 이 이름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어요.
3. 카이퍼 벨트 부근 행성들의 정보
오늘 보았던 플루토를 포함해서 많은 행성들이 둥글게 생겼어요.
태양도 둥글고, 달도 둥글고. 밤하늘을 보면 그렇지요.
하지만 '지구는 정말 둥글까요, 고대 학자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다음 시간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에라토스테네스 그리고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증거들!
보이는 것 너머를 상상한 고대인들의 과학을 만나봅니다.
매주 월요일, 플루토씨의 과학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과학은 정답이 아니라 여정입니다.
함께 걸어가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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