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이 아까워서요
연말의 들뜬 분위기가 아직 어제 같은데, 벌써 3월이야. 방학은 어느새 사라지고 당장 내일이 개학이지. 개학을 하게 되면 '학교 가기 싫다'는 생각이 뇌를 채우지만, 다른 고민도 생겨.
나는 늘 새 학교, 새 학년에선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야 할까 고민이었어. 초등학교 때야 어릴 때의 패기로 헤쳐나갔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니까 걱정이 잔뜩 되더라고. 새로운 환경은 언제나 불안을 몰고 오지만, 나는 유독 친구를 잘 못 사귀어서 말이야.
지금까지 이 브런치북을 봐왔다면 (엄청 고마워!) 알겠지만, 나는 조금...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워. 좋아하는 것도, 취미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뿐이지. 다른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서 공통점, 특히 취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면, 나는 친구 사귀는 데에 늘 핸디캡이 있는 거야.
하지만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하는 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야. 내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건 주위의 지인 중에서도 새 학교를 갈 때, 새 학년이 될 때 친구가 없어서 힘들었다는, 아니면 걱정이 많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지. 내가 사람 마음에 좀 둔감하긴 해도, 이 정도는 안다 이 말이야.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어떻게 이런 역경(?)을 헤쳐 나왔는지 얘기해 보려고 해! 앞을 내다보는 새 학기에 뒤를 돌아보는 얘기를 해서 좀 칙칙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기 위해서는 뒤를 보며 배움을 얻어야 하는 법 아니겠어?
나는 좁은 교우관계를 좋아해. 그렇다고 해서 아는 사람이 적은 게 아니라, 항상 같이 다니는 애는 한 명이면 충분하다는 거지. 그래서 나는 누구를 친구로 할지 매우 신중하게 정해야 한단 말이지. 아, 물론 사람마다 친구를 얼마나 사귀는지는 각자 다르니 여기서는 나를 기준으로 얘기해 볼게!
어쨌든, 내게는 두 개의 모래주머니가 있어. 하나는 내 특이한 성격, 하나는 친구의 숫자지. 이것만으로도 힘든데, 다리를 내려다보니 모래주머니가 하나가 더 있네? 바로 내 빈약한 사회성이야.
내 사회성은 마치 구세대 핸드폰과 같아서, 밤 동안 충전해 봤자 하루도 채 안 가고 다 방전되어 버리고 말아. 익숙한, 친한 사람만 만나면 그래도 하루 종일 버틸 수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과 친해져야 한다? 몇 시간도 못 버티지.
그러니 이 처참한 사회성 배터리 성능을 가진 나는 새 학기마다 얼마나 힘들겠어. 친구를 사귀는 데에 외적인 시간제한뿐만 아니라 내재된 시간제한이 있는 거야.
그래서 나는 중학교 때부터 나만의 친구 사귀는 법을 갈고닦기 시작했어.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거였지. 친구냐 죽음이냐! 방학 동안 긴 고민을 했지만, 결론은 딱 하나였어.
자, 일단 내가 가진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자. 먼저 나는 미약한 사회성을 가지고 있어서 나 자신이 지쳐 나가떨어지기 전에 빠르게 친구를 사귀어야 했어. 친구를 많이 두지 않는 건 여기에 도움이 됐지. 새로운 사람 여러 명과 친해지기보다는 한 명하고만 친해지면 됐으니까.
하지만 내 취향이 문제였어. 나는 단순히 특이한 취미와 취향을 가진 것뿐만이 아니라, 사람에 있어서도 아주 명확한 주관이 있었거든. 바로 솔직함과 호기심이야. 어렸을 때는 그냥 '나랑 통하는 사람'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꼴에 어른이 되니까 내 주관을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되더라고.
어쨌든, 내 확고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사람을 친구로 둬야만, 그 사람과 같이 있는 동안 서로 (주로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을 거고, 나중에 떨어지고 나서도 계속 친하게 지낼 수 있겠지?
그러니까 나는 무조건 내 취향에 맞는 사람을 찾아야 했어. 내가 바라는 성격과 나와 똑같진 않더라도 조금이나마 겹치는 취향과 취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지.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라는 생각은 초등학교 때부터 했지만, 애들이 알아서 와주는 환경을 벗어나 내가 직접 나서는 상황에서는 이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오더라고.
특히, 내가 아주 적은 숫자의 친구들만 사귀는 사람이니 더더욱 힘들어지지. 친구가 많다면 거기서 친한 친구를 골라잡을 수 있을 텐데, 쉽게 친구의 수를 늘리려고 하질 않으니 한 번에 딱 맞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두 조건이 충돌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거야. 내 사회성을 생각하면 누구보다 빠르게 친구를 찾아야 하지만, 동시에 내 성격을 생각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아갈 시간이 필요해. 편하자고 아무 친구나 사귀었다가는 내가 고생할 게 뻔하고, 그렇다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건 생리적인 수준에서 불가능해.
그러면 나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원래 이런 양자택일의 순간에는 보통 피눈물을 흘리며 하나를 버리지만, 나는 한 가지 발상의 전환을 했어. 처음 반에 들어가자마자 모든 인원을 보고 나랑 딱 맞을 것 같은 애를 고르면 되는 거잖아? 한 번에 성공하면 굳이 실패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아주 오만한 발상이지만, 잃는 게 없으면 얻는 것도 없는 법, 성공만 한다면 확실히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잖아.
그래서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반의 아이들을 쭉 훑어본 다음에 나랑 딱 맞을 것 같은 아이를 하나 골랐어. 친구란 건 참 좋은 게 하나만 만들면 그 뒤로는 친구가 친구를 알아서 데려온단 말이지. 그래서 덕분에 나는 원만한 교우관계를 가지고 중학교를 졸업했어.
하지만 나 혼자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며 또다시 똑같은 문제를 겪었지. 내 해법은 이번에도 똑같았어. 대신, 이번에는 한 번에 성공하진 못하고 처음 친해진 아이의 친구와 제대로 된 친구가 되었지. 심지어 이번엔 2학년 때 기회가 되어 나랑 딱 맞는 아이와 절친이 되었어!
그래서 난 내 방식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기로 했어! 바로 '한 달 고생법'이야. 3월 한 달만 고생해서 다양한 사람과 친해지고, 그 뒤로는 지친 내 몸과 마음을 3년간 추스르며 내가 고른 친구와, 그 친구가 데려온 친구랑 놀면서 최소한의 사회성만 소모하는 방법이야.
제대로 방법을 정립도 했겠다, 두 번의 성공에 힘을 얻은 난 오만하게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자화자찬하게 되었지. 이 오만함을 가지고 그대로 난 대학교에 갔어.
대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는 건 좀 더 어렵더라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야 매일 꾸준히 만나지만, 대학교에선 아니잖아. 그리고 어른이 되면 깊은 친구보다는 얕은 친구를 만드려고 하는 느낌도 있고 말이야.
그래도 나는 호기롭게 딱 맞을 것 같은 사람을 골랐어. 바로 실패했지. 나랑은 잘 안 맞더라고. 두 번째 시도도, 세 번째 시도도 모두 실패였어. 슬슬 한 달이 다 되어가서 사회성이 바닥나려고 할 때, 다행히도 나랑 맞는 사람을 고르는 데 성공했어!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내가 이 친구가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랑은 조금 다르더라고. 내가 몰랐던, 나랑은 맞지 않는 부분이 조금씩 보이더라. 하, 사람을 잘 보긴 무슨. 뭐,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긴 하지만, 왜 어른이 되면 깊은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지는지 깨닫게 되는 계기였달까.
진짜 문제는 이 친구가 데려온 친구들이었어. 정말 나랑 상극인 사람들이라 힘들단 말이지. 그렇다고 이미 확립된 친구 그룹에서 나갈 수도 없고 말이야.
그래서 이번 글도 저번 글과 마찬가지로 별로 희망차지는 못한 내용으로 끝을 내려고 해. 원래는 이쯤 하고 이젠 내 나름의 해법을 말하는 게 이 브런치북의 흐름이지만, 나도 답을 못 냈는데 어떻게 잘난 듯이 해법을 제시할 수 있겠어.
이 브런치북의 주제, "누구든 영원히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어딘가에는 게워내야 하기 때문에"에 걸맞게 일단 게워냈을 뿐이야.
그래도 내 성공과 실패를 보며 배울 점이 있었으면 좋겠어! 내 삶이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나마 도움이 되면 무척 기쁠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친구를 사귈 때에는 조심해! 네가, 네 낯이 아까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