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이겼지만

다른 감정도 이겼을까?

by 김서하

"기분 나쁠 정도로 이성적이야"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나도 없어. 대신, "인간미가 없다", "지나치게 이성적이다", "매정할 정도로 이성적이다" 같은 말은 들어봤지. 오늘은 내 속내를 좀 풀어보려고 해.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별로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때그때 바로 표현하는 편인데 왜 다들 나보고 이성적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범생이 같은 나를 향한 편견일지도. 그래도 나와 오래 지낸 친구도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편견만은 아니고, 진짜로 내가 그런 면이 있긴 한가 봐.




"야, 야, 이거 인스타에서 본 건데, 어떻게 생각해?"

"어... 그니까 연인이 대학 팀플 때문에 바빠서 못 만나는 거에 화를 냈고, 그래서 엄청 크게 싸웠다?"

"응, 너라면 어떻게 할 거 같아?"

"뭐, 나도 저렇게 화를 내면 싸울 거 같은데. 사실 논리적으로 보면 대학 팀플 때문에 못 만나서 슬픈 건 이쪽도 마찬가지고, 그런 어쩔 수 없는 외부 사정 때문에 같은 피해자인 이쪽한테 화를 내면, 나도 이런저런 사정을 다 설명하고 '어쩔 수 없는 걸 어떡하냐', 이렇게 말할 거 같은데. 물론 이러면 크게 싸우겠지."

"잘 아네."

"근데, 솔직히 이런 걸로 화내는 쪽이 잘못한 거 아냐?"

"아니, 너라도 이런 상황이면 연인한테 조금 화가 나지 않겠어? 자꾸 안 만나준다는데?"

"뭐, 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감정은 버려야지. 화를 낼 대상이 잘못됐잖아? 자꾸 안 만나줘서 순간적으로 화는 날 수 있겠지. 그치만 역지사지로 이것저것 다 재보면 이 상황에서는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게 보이니까, '이 감정은 느끼면 안 되는 감정이야', 하고 스스로 생각해서 화를 내면 안 되지."

"... 넌 연애 못하겠다."




뭐, 연애랑은 연이 없다는 친구의 말은 백 번 옳으니 넘어가더라도, 감정을 이렇게 이성적으로 조절한다는 게 평범하지 않다는 걸 넘어서 오히려 꺼려진다는 건 그때 알았어.


사실, 난 이중잣대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나부터 이중잣대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거든. 그래서 항상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남에게 표출하기 전에 역지사지를 먼저 해보려고 해. 순간을 참지 못해 당장은 못하더라도 뒤늦게라도 꼭 하려고 하지.


근데, 다들 이 정도로 신중하게 분노를 표하지는 않나 봐. 당장 팀플을 봐도 그렇지. 꽤 큰 그룹 프로젝트였어서 친구가 조장, 내가 부조장을 맡아서 각자 완전히 다른 분야를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걸더니 다짜고짜 화를 내더라고. 일 안 하고 뭐 하는 거냐고.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여유 있는 스케줄이어서, 우리 스케줄에 맞게 하고 있는데 초기 결과물이 안 나온다고 뭐라 하는 거야. 아니, 우리 스케줄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화를 내냐 하고 나도 따지려 들었다가, 그랬다간 너무나 비생산적으로 내 감정과 시간을 소모할 거 같아서 진정시킨 후 돌려보냈지.


'이게 사회생활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 일단 뱉고 보는 분노에 뭐가 있길래 그렇게 좋아하는 건지. 분노 같이 다른 사람에게 큰 아픔을 줄 수 있는 감정은 때와 상황을 가려서 표출해야 하는데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만 보면 '와 쟤는 자기 감정을 이성적으로 조절할 줄 아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나는 절대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야.




"나는 너무 감정적으로 굴어서 문제인 거 같아. 다른 사람도 다 이런 걸까?"

"나도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항상 감정과 이성을 분리하려고 노력해. 나 자신이 돛단배라면, 돛은 감정이고 닻은 이성이지. 감정이 하고자 하는 열정을 쏟아부을 때, 이성으로 그 열정을 사용할지 안 할지 결정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잘난 듯이 설명했지만, 이건 오직 분노나 기쁨 같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감정만을 다루는 방법 같아. 나는 이런 식의 감정은 다뤄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조절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찾고, 또 노력했지만, 다른 방향의 감정은 도저히 다룰 수가 없더라고.


어떤 감정이냐고? 바로 우울과 불안이야. 분노나 기쁨은 순간적인 감정이라 나의 행동을 한 순간만 제어하면 되지만, 우울과 불안은 지속적인 감정이라 그런 걸로는 턱도 없더라고.


우울과 불안은 나를 행동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가만히 있게 만들어. 우울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가만히 누워 핸드폰만 보게 되고, 불안하면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힌 채 미래의 일만 걱정하면서 시간을 버리게 돼.


그래서 이 두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이미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에서 뭘 하는 게 참 힘들잖아. 특히 불안함이 더 문제인 것 같아. 우울할 때는 그냥 누운 채로 시간을 보낼 뿐인데, 불안할 때는 아무것도 못하는 모습을 보며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단 말이야.


이런 상황이니, 불안을 어떻게 해소하면 좋을지가 요즘 내 고민거리야. 아무리 이성적으로 걱정해 봤자 아무것도 못 바꾸고 안 바뀐다는 생각을 해도, 먹히지가 않더라고. 참 이상하지? 이성은 행동을 멈출 수는 있지만 행동을 하게는 못한다니.


그래서 이성을 가지고 내 불안의 원인을 파헤쳐 보기로 했어. 그랬더니 아주 간단한 해답이 나오더라고. 미래의 불확실성. 엄밀히 따지면 미래에 나빠질 게 보이는데, 얼마나 어떻게 나빠질지가 예측되지 않는 게 엄청난 불안을 초래하더라고.


나는 계획을 안 짜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해결하는 때가 은근 있거든? 예를 들어 발표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대본 안 짜. 어차피 대본을 써 봤자 발표할 때는 긴장되니 글자가 안 보이니 그냥 발표할 내용을 통째로 머리에 담은 채 임기응변으로 발표하는 게 내 스타일이거든.


여행을 할 때도, 게임을 할 때도 사소한 것들은 임기응변으로 해나가는 게 내 스타일이라 나는 어느 정도는 무계회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더라.


나는 미래에 나쁜 일, 예를 들면 업무량이 늘어날 거라는 게 보이면 그걸 미리 대처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더라고. 그런데 미리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로 업무량이 늘어나는지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잖아? 이게 안 돼서 대책을 세울 수도 없고 어떤 행동도 할 수 없게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었던 거야.


업무량이 늘어나는 미래가 보여서 내가 그 일을 미리 해서 업무량을 서서히 줄여나간다거나, 그러지 못한다면 얼마나 내 여가시간이 사라질지 계산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지만, 업무량은 늘어난다는 것만 알고 자세한 사항을 몰라서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 미칠 정도로 불안하더라고.


특히 밤과 새벽에 이런 게 심해져서 잠도 잘 자지 못하는 게 너무 힘들더라. 그나마 낮에는 다른 걸 하면서 신경을 끌 수 있는데 말이지.


원래는 여기까지 말하고 이젠 내 나름의 해법을 말하는 게 이 브런치북의 흐름이지만, 나도 이겨내질 못했는데 어떻게 잘난 듯이 해법을 제시할 수 있겠어. 이 브런치북의 주제, "누구든 영원히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어딘가에는 게워내야 하기 때문에"에 걸맞게 일단 게워냈을 뿐이야.


그러니까, 음, 나는 이런 힘듦이 있는데 너는 어때? 너는 요즘 삶의 어떤 점이 힘들어? 이겨낼 수 있는 길이 보이니? 아니면 너도 그저 어딘가에 게워내고 싶니? 그러면 게워내 봐. 어디에든지 말이야. 그러면 지금 나처럼 조금이나마 살 만해질 수도 있잖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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