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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3. "프랑스" 대륙과 바다의 시작!

by 김장렬
프랑스 지리

프랑스 지리를 바라보면 유럽 대륙의 서쪽 끝자락 해가 바다로 떨어지는 지점에서 오랜 시간 유럽의 관문이자 마지막 성벽이었음을 느낀다. 바다와 산, 강과 평야가 겹겹이 쌓인 그 땅은 단순한 경계가 아니었다. 마치 유럽의 상처와 회복이 그려진 한 장의 피부 같았다. 여기는 침략을 막기 위한 요새였고, 때로는 정복을 향한 발판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지리는 유럽에서 가장 균형 잡힌 구조를 지녔다. 북서쪽으로는 영국 해협과 대서양이 열려 있고, 남쪽으로는 지중해의 따뜻한 바람이 닿는다. 동쪽에는 알프스와 쥐라 산맥이 장벽처럼 솟아 있으며, 남서쪽으로는 피레네 산맥이 에스파냐(스페인)와의 국경선을 이루고 있다. 중심부는 부드러운 고원과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농업과 산업의 뿌리가 동시에 자리 잡았다. 이렇게 해안과 내륙, 산악과 평야가 조화를 이루는 지형은 프랑스를 오래도록 유럽의 자립적 군사국가로 성장시켜 왔다.


프랑스의 해안은 두 개의 전략적 바다, 대서양과 지중해에 걸쳐 있다. 대서양 쪽은 보르도, 브르타뉴, 노르망디, 칼레까지 이어지는 복잡한 해안선이며, 해군 기지와 군수항으로 활용되어 왔다. 특히 노르망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독일군에 점령당한 프랑스를 해방시키기 위해 1944년 6월 6일 D-Day에 영국 해협을 건너 실행한 상륙작전의 현장이었다. 이 작전은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침공이었다. 복잡한 조수와 해안선, 독일의 방어 진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연합군의 공중 및 해상 연계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후 군사 전략서마다 언급되는 교과서적 사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계획

프랑스 해군은 대서양의 브레스트, 지중해는 툴롱에 함대사령부를 설치하고 대서양과 지중해 양방향에 강력한 존재감을 유지해 왔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핵잠수함 전력과 항공모함 '샤를 드골'이 핵심전력이다. 전략적 상황에 따른 불규칙적 배치를 활용하면서, 잠수함의 은밀성과 항모의 기동력을 결합하여 양방향으로 나누어진 해안선의 전략적 단점을 극복하고 있다.

프랑스 해군 작전사령부

내륙으로 들어가면, 프랑스는 지형적으로 방어에 유리한 자연의 성곽을 지닌다. 동부의 알자스~로렌 지역은 독일과의 충돌 지점이며, 쥐라와 보주 산맥은 국경 방어의 요충지였다. 이러한 지형적 조건은 역사적으로 '마지노선'(프랑스 전쟁부 장관 앙드레 마지노 이름에서 유래, 1930년 독일의 침공에 대비 프랑스-독일 국경에 설치한 대규모 요새 지대)이라는 개념을 낳았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독일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구축된 고정 방어선이었다. 콘크리트 요새, 철도, 벙커를 포함한 강력한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이 마지노선을 우회하면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벨기에를 통해 우회 침공한 독일은 빠른 기동과 기습, 기계화된 부대를 활용하는 현대전의 '전격전(Blitzkrieg)'이라는 전술을 만들어냈다. 이는 고정된 방어 개념에서 유동적 전장의 개념으로 바뀌는 전환점을 의미했다.

프랑스의 요새화된 마지노선

피레네 산맥은 에스파냐(스페인)와의 자연 경계이자 남서방향의 침입을 막는 천연 요새였다. 1808년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는 대륙 봉쇄령을 발동하여 영국과의 교역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이를 어기고 교역하는 포르투갈을 공격하기 위해 이 산맥을 넘어 에스파냐(스페인)를 진격의 통로로 삼았다. 이 작전은 초기엔 성공적이었으나, 에스파냐(스페인) 민중의 저항과 영국군의 지상군 파견이 더해지면서, 프랑스군은 지리적으로 완전히 제어하지 못했던 공간의 한계와 장기적 소모전으로 전력을 잃어 갔다. 이후 1814년 나폴레옹의 패배와 함께 에스파냐(스페인)의 독립으로 끝났다. 이 전쟁은 나폴레옹의 몰락을 앞당기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베리아 전쟁(1808~1814년 나폴레용의 에스파냐(스페인) 침공)

한편, 1936년 에스파냐(스페인)는 파시즘, 공산주의, 민주주의, 아나키즘, 공화주의 등 당대 주류 이념들의 격전으로 내전이 시작되었다. 에스파냐(스페인) 내전은 프랑스 접경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프랑스는 중립을 표방했지만, 피레네 산맥으로 50만 명이나 되는 난민들이 넘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결국 피레네는 군사적, 인도적 경계선으로 작용했다. 프랑스는 이 사건을 통해 국경지역의 분쟁은 안보 불안이 발생하고, 국내 정치에서는 난민 문제로 좌우 대립이 격화되었으며, 국제 사회에서는 에스파냐(스페인) 내전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외교적 고립을 겪는 등 직간접 영향을 받는다는 현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프랑스를 관통하는 강과 운하는 나라의 군사적 역량을 구성하는 뼈대였다. 루아르강, 센강, 론강, 가론강은 단지 물길이 아니라, 시대마다 병참선이자 전략 축선이었다. 특히 센강은 파리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며 정치와 군사의 요충이 되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연합군은 센강을 따라 내륙으로 진격하며 파리를 해방시켰다. 이는 강을 따라 군대가 진격하거나 방어선을 세우는 전형적인 사례가 되었고, 유럽 전쟁사에서 도시와 수로의 관계를 대표하는 전사로 남았다. 론강은 남프랑스와 지중해 사이의 군수로였고, 가론강은 스페인 접경과 대서양으로 연결되는 후방 통로였다. 이 강들 사이에는 운하가 구축되어 유사시 빠른 기동과 보급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으며, 프랑스 군은 이런 지형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외세의 침입을 방어했다.

프랑스 강

프랑스는 단지 지리로만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들의 지리는 언제나 정신적 자립성과 전략적 독립의 사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1960년 핵무기 보유 이후, 프랑스는 자국의 해안선과 산악 국경, 내륙 교통망을 스스로 방어할 수 있다는 공간적 자신감을 가졌다. 그리고 자주적 억지 전략인 '포스 드 프라프(force de frappe)', 즉 독자 핵전력을 구축했다. 이것은 단지 무기의 보유를 넘어선, 국방의 자율성과 외교적 독립성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1966년, 드골 대통령은 미국 중심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냉전시대 북미와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의 집단 방위 조약 기구) 통합군에서 탈퇴하며 프랑스의 독립적 전략 방위를 선언했다. 하지만 2009년, 사르코지 대통령은 변화한 안보환경에(냉전 종식, 테러, 사이버 공격 등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응할 동맹 필요) 맞춰 프랑스의 NATO 통합군 복귀를 선언했다.

프랑스 43년 만에 나토군 복귀

그러나 프랑스는 복귀 이후에도 핵억지력과 핵전략 지휘체계만큼은 독자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여전히 프랑스의 지리적 기반과 연결되어 있다. 대륙과 바다의 시작이라는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프랑스는 지형의 이점을 활용해 자국 중심의 방위개념을 실현하고자 했다. '평화를 위한 억지력'이라는 개념은 지금까지도 프랑스 국방전략의 핵심 축으로 남아 있다.


이제 프랑스는 유럽연합의 정신적 중심으로, 경제적·정치적 통합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이 산업의 엔진이라면, 프랑스는 가치를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그러나 이 역할은 쉽지 않다. 지중해 연안에서의 난민(아프리카, 중동 지역에서 전쟁, 경제, 박해 등으로 발생) 유입, 아프리카 사헬 지대(사하라 사막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북부 사바나 사이의 경계)의 불안정(기후, 분쟁, 인구증가, 식량 문제 등),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동방정책 변화는 프랑스에게 복합적 과제를 안기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북아프리카와 식민지 배경을 가진 지역들(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과 해상, 문화, 군사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중해를 단순한 바다가 아니라 '군사적 심장'으로 간주하고 있다.


미래의 프랑스는 어떻게 변화할까? 기후 변화로 인한 지중해 연안의 해수면 상승으로 항만 시설, 부두 등이 잠겨 해군기지 재배치를 요구할 수 있다. 대서양 연안은 NATO의 해상 작전의 중심으로서 러시아의 해양 활동에 대한 감시 및 대응 전력으로 재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알프스 산맥은 빙하 융해로 인해 산맥이 변하면서 국경선 위치가 불확실해지고 있고 기존의 국경 방어 개념을 다시 설계해야 할지도 모른다. 더불어 사이버 안보와 우주 전략이 중요한 시대에는 프랑스가 보유한 남아메리카의 프랑스령 기아나의 우주센터(수단 동북쪽) 같은 '지리 외의 전략 거점'이 새로운 국방의 첨병이 된다. 프랑스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다시 그 땅의 지형과 바람, 강의 흐름을 듣고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갈 것이다.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기아나 우주센터

나는 프랑스가 여전히 자신만의 길을 걸을 것이라 믿는다. 알프스의 장벽과 해협의 바람 사이에서, 프랑스는 늘 자신이 서 있는 땅의 소리를 듣고 방향을 정해왔다. 그 땅은 때로는 피로 물들었고, 때로는 자유의 노래를 울려 퍼뜨렸다. 그러나 그 땅이 가진 형체는 여전히 강인하고도 고유하다. 프랑스는 지리에서 나고, 역사에서 자랐고, 평화의 가능성을 향해 걷는, 유럽의 가장 오래된 전사이자 철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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