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처음 지도로 바라볼 때, 나는 그 중심성이 주는 응집력과 사방으로 나아가는 팽창감을 피할 수 없었다. 땅의 크기는 유럽의 다른 강대국들보다 크지도 작지도 않다. 그러나 지도 위 독일은, 마치 유럽 전체가 숨을 쉬는 심장처럼 맥박을 보내고 있었다. 동서남북을 잇는 고리의 중심, 그곳에 독일이 있다. 독일은 지리적으로 유럽의 정중앙에 위치하며, 총 9개국(덴마크, 폴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는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접경국을 가진 나라로, 독일이 단순한 내륙국이 아니라 '유럽의 교차로'임을 의미한다.
지리적 특징도 다채롭다. 북쪽은 북해와 발트해로 열려 있고, 남쪽은 알프스산맥이 장엄하게 가로막고 있다. 동쪽은 폴란드 평원으로 열려 있으며, 서쪽은 프랑스와의 국경이 라인강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독일은 바로 이 경계의 모자이크 속에서 형성되고, 분열되고, 다시 통일되었다. 독일의 역사는 땅의 역사이며, 독일의 군사력은 이 지리와 끊임없는 대화를 해왔다.
북해와 발트해를 마주한 독일의 해안선은 넓지 않지만, 전략적으로 깊다. 이 짧은 해안선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독일 해군 전략의 출발점이었다. 1898년, 카이저 빌헬름 2세는(독일 제국 3대 황제이자 마지막 군주) 북해에 대함대를 건설하며 대영제국의 해상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의 해상 봉쇄전으로 이어졌다. 당시 영국은 독일 해군의 북해 진출을 막고, 광범위한 해상 봉쇄를 통해 독일 본토에 식량과 원자재의 유입을 차단했다. 독일 해군은 제해권에서 밀렸고, 결국 전략적으로는 잠수함 작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미국의 일반 상선을 격침함으로 미군의 참전을 야기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의 배경이 되었고, 독일의 패전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 무제한 잠수함 작전 : 제1차 세계대전 중 1915년 독일이 영국의 해상 봉쇄를 뚫고 무역난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함선을 경고 없이 격침시키는 일명 U 보트 작전으로 미국의 민간 상선 루시타니아호를 격침 시킴
해안선은 이후에도 꾸준히 전략적 가치로 기능했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침공해 발트해와 북해를 장악하고, 영국 침공을 위한 전략적 항구와 자원을 확보하려 했다. 특히 발트해는 동부전선 보급과 해상 기동의 중요한 창구였다. 짧지만 날카로운 이 해안은 독일에게 있어 바다로 나가는 문이며, 동시에 적이 밀고 들어올 수 있는 틈이었다.
내륙으로 눈을 돌리면 독일은 전형적인 중부 유럽 국가다. 남부의 알프스산맥과 중부의 중안 산지, 북부의 저지대 평야가 하나의 나라 안에 공존한다. 이러한 지형은 독일에게 방어의 유리함과 동시에 분열의 가능성을 안겨주었다. 독일이 수세기 동안 통일되지 못하고 수십 개의 공국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도, 이 산과 계곡의 지리적 다양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분열의 지형은 나중에 독일이 전체 유럽을 뒤흔들 군사력을 갖추는 기반이 되었다. 각 공국들은 독립적인 병력을 보유하고 성곽을 쌓았으며, 이는 지역 군사 전통을 형성하게 했다. 이들 소국의 군사력은 훗날 프로이센 중심의 통일 독일이 강력한 군사 국가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한 라인강 주변 지역은 (일명 '라인 인더스트리얼 벨트') 산업화와 군사력 집중의 중심지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이 지역을 서부전선으로 나아가는 군사 기지화 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는 독일이 프랑스 점령을 위한 *마지노선 돌파의 거점으로 삼았다. 이 전선은 단순한 충돌지대가 아니라 독일이 **전격전을 실현할 수 있는 기동 전장의 시작점이었다. 이 전략은 프랑스를 굴복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유럽 서부의 질서를 재편했다.
* 마지노선 : 프랑스 전쟁부 장관 앙드레 마지노 이름에서 유래, 1930년 독일의 침공에 대비 프랑스-독일 국경에 설치한 대규모 요새 지대
** 전격전 ; 전차 등 기동 전력을 활용하여 번개처럼 빠른 기동으로 적의 전략적 중심을 타격함으로써 마비시키는 전술
강과 운하는 독일이라는 나라를 흐르는 혈관이다. 그러나 내륙 유역으로서의 라인강과, 국가 차원의 수로망인 운하는 구분되어야 한다. 라인강은 군사적 보급로일 뿐 아니라 산업 중심지들을 잇는 생명줄이었다. 독일은 이 강을 따라 철도와 도로, 군수기지를 배치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이 강을 건너며 독일 본토로 진입했다. 엘베강은 동독과 서독을 나눈 상징적인 경계선이자 냉전의 실제적 단면이었으며, 도나우강은 발칸과 동유럽으로 향하는 전략적 수로로 기능했다.
운하 또한 독일의 군사 전략에 깊게 관여했다. 특히 키엘 운하는 북해와 발트해를 연결하며 독일 해군에게 빠른 기동 능력을 제공했다. 이 운하는 단지 선박의 통로가 아니라, 독일이 두 바다를 군사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한 인공의 요새였다. 이런 수로망 덕분에 독일은 내륙국이면서도 해양 전략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는 독일의 군사적 유연성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독일은 유럽연합의 맹주이자 조정자다. 프랑스가 정치적 상징이라면, 독일은 산업과 재정의 중심이다. 유럽 연합의 수도 벨기예 브뤼셀 보다 베를린이 조용히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이 지위는 축복이자 부담이다. 독일은 동쪽의 러시아, 서쪽의 프랑스, 남쪽의 이탈리아, 북쪽의 스칸디나비아 사이에서 언제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에너지 수급, 군사력 확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냉전시대 북미와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의 집단 방위 조약 기구) 의무, EU(유럽 27개국 간의 정치, 경제 통합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연합) 확장 등 모든 사안에서 독일의 위치는 단순한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유럽 전체의 중심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은 새로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평화헌법에 가까운 방위 정책을 고수하던 독일은, 이제 군사비를 증액하고 현대화에 나섰다. 이는 단지 위협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지리적 중심국가로서의 전략적 재조정이다. 유럽의 심장에 위치한 국가는 단순한 수동적 피동의 공간이 될 수 없다. 독일은 앞으로 더욱 전방에서 움직여야 할 것이다.
미래의 독일은 여전히 물과 땅, 경계와 중심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다. 바다는 짧지만 넓은 세계로 향한 창이고, 평원은 기회이자 위협이며, 강과 운하는 연결과 분열을 동시에 안고 있다. 나는 이 나라가 자신이 처한 지리의 무게를 안고, 다시금 유럽의 균형을 지켜주는 조용한 강국이 되리라 믿는다.
그들의 지도는 복잡하지만, 그 땅은 단단하다. 그리고 그 단단한 땅 위에서 독일은 또 한 번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중심을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