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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

by 마른틈

물론 요즘의 나는 조금 생각할 게 많고, 고단하고, 어지럽지만, 사실 보통의 나는 나를 꽤 좋아한다. 아니, 아주 멋지다고 생각한다. 음, 그러니까 서른한 살, 곧 서른둘을 앞둔 지금의 시점에서 말이다. 이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길고 지난한 시간을 죽지 않고 버텨온 나에 대한 경외와 찬탄이며, 그 삶을 부끄럼 없이 떳떳이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 하나, 죽었다 깨어나도 고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면 바로 ‘어린 나’에 대한 자기혐오다. 나는 가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깊은 우울감에 빠질 때면 어렸던 나에게서 원인을 찾으려는 습관이 있다. 그렇게 끝없이 깊은 심해로 가라앉고, 또 가라앉는다. 나는 어리고 불쌍했던 나를 도무지 사랑할 수 없다. 그 아이가 너무 싫다. 끔찍하다.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그 아이가 그때 죽었어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심지어 그에게조차. 나조차 내가 이렇게 끔찍한데 어떻게 입 밖에 낼 수 있을까. 누군가 이 이야기들을 듣는다면 나를 아주 끔찍이 여기겠지. 나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러던 어느 날에 나는 홀린 듯 이 이야기를 줄줄이 꺼내놓았다. 이십오 년 만이었다. 처음이었다.


“제 글들은 사실 대부분 엄마를 고발하기 위해 쓰는 글이에요. 그런데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어렸던 저를 칭찬하는 것 같지만요…”

“잘하고 있어요. 속이 후련하겠네요.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타인의 부모를 함부로 말할 수 없으니 사람들의 반응도 그럴 만해요.”

“그렇긴 해요. 엄마를 고발하려고 쓰는 글이지만, 막상 사람들이 엄마를 욕하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음… 나만 욕할 수 있어. 그런 거? 아 그런데 너무 자주 욕하는 거 같아서 자제해야 할 거 같긴 해요. 어느 날 갑자기, 아 아니다. 갑자기도 아니다. 거의 매번인 거 같아요”

“그런데 그게 꼭 욕이라기보단 우리 엄마는 사실 많이 힘들었어요. 라는 안쓰러운 느낌도 있지 않아요?”

“음… 잘 모르겠어요. 불쌍한데, 싫고, 밉고, 짜증 나고, 그치만 불쌍하긴 해요. 그런데 불쌍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불쌍함을 느끼는 게 너무 피로해서 미워하고만 싶어요. 매번 도르마무에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사실 그때 엄마는 지금 저보다 겨우 세 살 많은 서른네 살이었어요. 젊고 아름다운 나이에 인생을 개 박살을 내놓은 그 의사 새끼가 제일 나쁘다는 거, 제가 왜 모르겠어요. 저 그 의사 이름도 알고 병원도 알아요. 지금 버젓이 영업 중인 것도요. 제가 거기에 불 지르는 상상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

“음…”

“그런데 공소시효도 한참이나 지났고 당시에 멋모르고 합의금도 받아버렸으니, 그 의사는 그 일이 있었는지도 잊고 잘살고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은 한 사람의 인생이 박살나고, 한 가정이 박살난 줄도 모를걸요? 이젠 제가 그 일을 공론화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결국 제가 원망할 수 있는 대상은 날 외롭게 하고 학대했던 엄마밖에 없는 거예요. 엄마도 피해자인 걸 뻔히 알면서요. 그러니까 내가 너무 간악해서, 그게 끔찍하게 싫은 거예요.”

“그래도 싫은 마음을 조금 비워내야 다른 마음이 들어올 틈이 생겨요.”


“심지어 저는 그때 여섯 살이었는데, 할머니 따라 엄마 병원에 갔다가 합의금 봉투에서 만원을 몰래 훔쳐서 매점에서 바비인형을 샀어요. 들킬 수밖에 없는 일이었는데 아무도 저를 꾸짖지 않아서 저는 안 들킨 줄 알았어요. 여섯 살 무렵 기억이 정말 손에 꼽히게 몇 개 없는데, 그 봉투에서 돈을 꺼내던 순간은 선명하게 아있어요. 엄청 긴장했던 기억이 나요. 잘못된 거라는 생각은 있었나 봐요. 어린 나이에 그걸 어떻게 빼다 쓸 생각을 했지? 제가 생각해도 저는 너무 쓰레기 같아요. 떡잎부터 쓰레기였나 봐요”

“아이들은 돈의 개념이 부족하고, 옳고 그름의 기준도 확립되지 않았어요. 아이 입장에선 갖고 싶었던 것을 가진 굉장히 단순한 행동일 뿐이에요. 그렇게 자책하지 마세요”

“그렇지만 그 돈은 엄마가 평생을 아프게 된 대가로 받은 돈이었잖아요. 그리고 제가 아주 외롭게 자라게 될 대가이기도 했고요. 저는 엄마가 그렇게 오래 아플 줄은 몰랐어요. 정말로요”


그러니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절도가 여섯 살이었던 거다. 그 기억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탓에 주인 모를 물건이 어떤 경로든 내게 흘러들어 오면 병적으로 기피하곤 했다.


“부모님 이혼하실 때 새벽에 통화하는 걸 제가 들었거든요. 비몽사몽해도 그 목소리는 똑바로 들었어요. ‘그딴 애새끼 너나 키워’라고. 아빠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뿐인 딸한테 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 있었나 커서도 참 이해가 안 됐거든요. 나중에 엄마한테 들은 건데, 아빠는 저를 볼 때마다 ‘영악해서 소름이 끼친다’고 했대요. 여섯 살 때 그 일 때문에요. 그래서 이혼할 때도 그렇게 미련 없이 두고 떠났나 봐요. 그런데 결과를 보세요. 그 아픈 몸으로 고생해서 키워놓은 딸년이 결국 이렇게 절연한 거나 다름없는 꼴이라니, 결과만 놓고 보면 아빠가 현명했던 거죠.”

“그맘때 아이들은 그런 행동 잘해요. 그걸 교정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고요. 그 일이 얼마나 마음의 짐이었으면 아직도 그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을까요…”

이 얘기까지 하려던 건 정말 아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저 이 얘기 진짜 처음 해봐요. 십 년 묵은, 아니 십 년보다 훨씬 더 됐네요. 이십오 년이에요…!! 이십오 년의 체증이 내려갔어요!! 아, 속이 너무 후련해요. 우와… 저 이제 이 이야기를 글로 쓸 자신이 생겼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어쩌면 지금까지 다른 얘기보다 이 얘기를 줄곧 하고 싶으셨던 것 같네요. 후련하시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나는 여전히 어린 날의 내가 싫고, 끔찍하다. 사랑할 수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나를 더 사랑하며 살아보려 한다. 그러려면 더 떳떳하고, 더 부끄럽지 않도록 잘 살아내야만 하겠지.

꼭, 그래야만 한다.


아, 깊고 깊던 고민이 딱 한 꺼풀만큼 해소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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