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험

by 마른틈

삶이란 것을 살아가는 내내 누구에게나 첫 경험이라는 것은 마냥 생소하고 얼마쯤은 허둥대며, 그렇기에 사랑해 마지않을 기억으로 남는다. 물론 모든 첫 경험이 즐겁고 행복할 수만은 없겠지만, 바라건대 그 기억은 칭찬받고 사랑받아야 마땅하다. 예컨대 첫 돌, 첫 뒤집기, 첫걸음마, 첫 여행, 첫사랑, 첫 키스, 그리고….


나는 원래 날것을 못 먹었다. 홍도가 고향인 그녀와 진해가 고향인 그의 자식인 나는, 어릴 적 그들이 사랑하는 횟집에 따라가면 그저 딸려오는 새우튀김과 완두콩, 콘샐러드 같은 쯔끼다시류만 좀 좀 따리 집어먹던 아이였다.

머리가 조금 큰 학생 때부터는 연어 초밥 정도는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사회초년생 시절 회식 메뉴를 선정할 때마다 듣는 “아 마른틈씨는 회를 못 먹어? 그럼 고기 먹지 뭐.”라는 그 말이, 마냥 배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쯤부터는 먹는 시늉이라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먹을 수 있게 된 거라곤 고작 초장에 듬뿍 찍은 광어 정도였으나 그 정도면 꽤 고무적인 성과였다.

먹을 수 있게 된 것이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굳이 돈과 시간을 써가며 새로 도전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해산물의 세계는 너무 방대한 데다가 비쌌다. 참치가 그렇게 좋고 맛있다던데, 솔직히 18만 원짜리 고급 호텔 뷔페에서 맛보았던 참치도 내 입맛엔 영 별로였다. 그러니 선뜻 수많은 것 중 무엇 하나 골라 먹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조금 우스운 얘기를 하나 하자면, 나는 얼마 전 생일에 일식 코스를 먹으러 갔다. 요즘의 나는 도전정신이 부쩍 올라, 광어 말곤 구분조차 못 하는 해산물에 대해 조금은 공부하고 싶어진 것이다. 지인들이 입이 닳도록 말하던 “네가 맛있는 부위를 못 먹어봐서 그런 거야”라던 그 참치 배꼽살도 먹어봤다. 소고기를 처음 먹을 때 느꼈던 기름진 것이 살살 녹아내리는 게 사람들이 왜 이거에 환장하는지,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알 것 같기는 했다. 한데 그뿐이었다. 어느 정도의 코스가 진행되고, 주방장이 나와 직전에 드셨던 스시와 회 중 마음에 드시는 것으로 한 개의 마무리 초밥을 만들어드리겠다고 했을 때, 나는 그의 눈치를 보며 슬며시 웃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죄송한데, 혹시 계란초밥도 가능할까요?”


고급 일식 코스를 먹으러 와서 계란 초밥이나 만들어달라고 하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겠지. 그저 나의 요청이 그들의 품격에 무례만 되지 않았길 빈다. 서비스와 맛은 모두 훌륭했다. 그저 한 번쯤 전부 먹어보았으니, 이제는 됐다 싶었을 뿐이다.




우리는 그 유명한 바다, 부산의 여행객이었다. 보통은 내 취향과 식습관 위주로 돌아가던 그와의 여행이었겠으나, 이번엔 통통 튀는 그녀와의 첫 여행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눈을 반짝이며 16만 원짜리 랍스터 코스 링크를 보내주었는데, 그것을 받아 든 솔직한 나의 심정은 ‘여행에서 돈 아끼는 건 별로긴 하지만, 별로 즐기지도 않는 해산물에 쓰기엔 좀 아까운데…’였다.

나의 떨떠름한 반응을 기민하게 눈치챈 그녀는 “역시 한 끼에 16만 원은 좀 그렇지? 랍스터 한 번도 안 먹어봐서 좀 궁금했어”라며 물러섰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 오히려 마음속 어떤 버튼이 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한 번도 안 먹어봤어? 근데 그걸 나랑 해보고 싶어? 그럼 무조건 해야지.


나는 내가 기억하는 랍스터의 맛을 가능한 한 상세하게 그녀에게 설명해 주며(“맛 자체는 새우랑 비슷하긴 한데, 좀 더 뭉텅하게 와앙ㅡ 하고 먹는 느낌이 있어. 따뜻할 때 입에 가득 차는 느낌이 꽤 괜찮아”) 한 발짝 물러나려는 그녀를 살랑살랑 꾀었다. 나랑 먹으러 가자, 응?


그렇게 도착한 그곳에서 본격적인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 근사하게 깔아주는 한판이 바다를 통째로 옮겨온 것만 같아서 우리는 연신 우와ㅡ 거리며 구경하느라 정신이 쏙 나가고 말았다.


대부분 먹을 줄은 아는 것들이었으나, 보기만 해도 흉측한 저 삼인방ㅡ멍게, 개불, 해삼ㅡ이 문제였다. 그 못생긴 몰골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으니 그녀가 슬쩍 묻는다. “너도 이거 못 먹지 않아? 빼달라고 할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무슨 용기였을까. 이미 최애집에서 달큰하게 오른 취기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종일 내내 맡아온 푸른 바닷내음 때문이었을까. 나는 어쩐지 이 흉측한 삼인방에 처음으로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결심이 무색하게도 정말, 정말 젓가락의 끝부분에도 닿기 싫은 비주얼이겠으나, 나는 굳건히 마음을 다잡고 소주 한잔을 털어 넣었다.

아… 그래도 진짜, 이 지렁이 같은 비주얼은ㅡ 정말… 하.


갸웃거리던 미묘한 표정은 멍게가 예고도 없이 왈칵 뱉어낸 바다 즙에 그만 폭싹 무너졌다. 급히 휴지를 찾아 뱉으며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억지로 먹지 마. 안 먹어도 괜찮아”


화들짝 놀란 그녀가 만류했으나, 콜라로 입을 헹궈낸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다음 타자는 저 지렁이… 지렁이를…. 어쩐지, 찾지도 않을 엄마를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음… 꼬독꼬독해. 나 이런 식감 좋아하는 거 같아”


기대도 안 했으나 의외의 성과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곧바로 마지막 타자인 해삼에게 향했지만 그 시도는 이번에도 처참히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 빼달라고 하자. 한 번씩 다 먹어봤으니까 됐어.”

“푸하하 너 괜찮아?”

“응 괜찮아. 개불은 생각보다 먹을만했어. 그리고 지금 먹어보지 않았으면 나는 앞으로 평생을 저게 무슨 맛인지 궁금해만 하면서 살았을걸.”


나의 첫 경험은 제법 실험적이었다. 비록 1승 2패의 전적으로 남았으나, 평생 잊지 못할 맛으로 기억될 것은 분명했다.




기다렸던 랍스터회와 사시미가 나왔다. 나 또한 이를 회로 먹어본 적은 없기에, 그저 딱새우회 정도의 식감을 예상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그 식감이 참으로 특이했던 것이다.


“우와 이거 식감이 왜 이래? 되게 특이하다.”

“그렇지? 너무 맛있다 이거!”

“나 이거 식감을 표현하고 싶은데… 생각지도 못한 느낌이라 너무 어려워”


나는 이 생경한 식감을 말로 표현하기가 자못 어려워 그녀에게 요청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탄성 있는 얇은 실이 겹겹이, 아주 많이 돌돌 쌓여있는데 이빨이 그 실들을 ‘쑥’ 뚫고 들어갈 때마다 전해지는 쫄깃함과 서걱거림이 아주 유쾌하다나. 굉장히 새롭고 만족스러운 랍스터 회와의 조우를 마친 뒤, 우리는 마침내 주인공을 영접했다.



“헉… 미쳤다. 랍스터가 이런 맛이었어? 진짜 최고다”

종일 내내 물가에 내놓은 애를 챙기듯, 나의 보호자처럼 굴던 그녀였다. 그런데 그 단단한 얼굴이 처음 보는 맛에 무척이나 허물어져, 행복감에 흠뻑 취한 모습을 보니 어쩐지 흡족한 기분에 솜털이 쭈뼛 서는 듯했다.


‘아, 이런 기분이라면 16만 원이 아니라 20만 원도 가치가 있겠는걸.’


게 눈 감추듯 사라진 랍스터를 보며 재밌어할 무렵 나온 라면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32만 원짜리 랍스터 대장정이 끝났다. 비록 지갑은 가벼워지겠으나 그녀의 역사적인 첫 경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음에 뿌듯한 마음으로, 나 또한 영영 잊지 못할 이 밤이 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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