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넉살 참 맛깔나더라.

by 마른틈

우리는 여자 단둘이었다. 연차가 좀 쌓여 적당히 방목해 주는 나의 남편과 달리, 그녀는 이제 막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은 새댁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불타게 사랑했으니, 무릇 신혼이란 그런 것이다. 그는 “네가 내 근처에서 놀면 돌발상황이 생겨도 내가 대처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 부산은 너무 멀다.”며 이 여행을 극구 만류했다고 한다.

이 안전한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무거운 짐을 들어주고 편안하게 운전해 주며 얼마쯤의 위험에 든든히 맞서주는 그들의 존재가 늘 기껍기는 했다. 허나 그렇기에 그와 함께하는 여행은 나와 그, 오롯이 우리의 관계만을 위한 시간이었음을. 어쩌면 우리는 여태껏 그 본질에 맞지 않는 여행을 해왔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ㅡ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 감동하는 것 말이다.


우리는 무거운 짐을 각자 이고 부산의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하며 어느 거리쯤은 천천히 거닐기도 했다. 작고 소담한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으면 예쁘다며 감탄했고, 어느 골목을 지날 때는 식욕을 자극하는 갓 구운 빵 냄새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시장 거리를 걷다 목이 마르면 시원한 음료수에 빨대 두 개만 동동 꽂아 비 오는 해운대 거리를 함께 걸었다. 비를 맞으면서도 바닷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이를 우리는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그러다 예쁜 소품샵을 발견하면 동시에 눈이 마주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후다닥 들어가 아기자기한 사기 숟가락과 손수건을 샀다.


짐이 많은데다 예약 시간이 살짝 아슬할 것 같아 택시를 타고 도착지에 내리는데 연세가 꽤 지긋한 기사님께서 사탕 두 개를 건네시며 말씀하셨다.


“좋은 하루 되시고, 즐거운 여행되세요~


의례적인 감사 인사쯤이야 익숙하겠다만은, 나는 손에 쥔 작고 사랑스러운 사탕과 그 다정한 목소리가 영 잊히지 않았다.


길을 걷다 발견한 깔끔한 인상의 음식집 옆에는 A4 크기의 전단이 붙어있었다. 통통 튀는 글씨로 “여기서 담배 피우면 바 보(ㅋㅋㅋㅋ)”라고 쓰여있었는데, 빨간색 궁서체로 조금의 악의가 묻은 “CCTV 녹화 중”이라는 문구가 익숙하던 나에게, 이 도시의 귀여움은 마음을 잔잔히 흔들었다.


절제 없는 식욕에 버티기 힘든 위장을 달래려 편의점에 들어가니, 핸드폰 화면이 어두워 안 보인다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별것 아닌 손짓 몇 번으로 도왔을 뿐인 우리는 “역시 젊은이들이 최고데이같은 칭찬에 괜히 목 언저리가 간질거렸다.

소화제를 구매한 우리는 다 마신 병은 버려주겠다는 친절과 “왜 소화가 힘드는 점원 아주머니의 다정에 미주알고주알 오늘의 수많은 일들을 친근하게 늘어놓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랍스터 집 사장님께서 인증 사진을 찍으라며 살아있는 바닷가재를 쥐어 주는데, 그 크기와 싱싱함에 지레 겁을 집어먹은 나를 보던 옆 테이블 손님은 벌떡 일어섰다.

“아~ 봐라, 언니야. 내가 찍어줄게요. 이쁘게 서봐요. 아니 엉덩이 좀 더 빼고… 그렇지.”라며 살갑게 구는 그녀와 우리는, 나이도 사는 곳도 모른 채로 친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이 도시의 다정한 넉살에 취하고 말았으니 자리를 마칠 즈음, 사장님의 “소주 한 병 빼줄게.”라며 스윽 내미는 영수증에, “리뷰가 둘이면 소주 두 병 빼주셔야죠~”라며 너스레를 떨어버린 것이다. 상냥한 윗동네 여자들의 애교에 무장 해제된 사장님께서는 소주 두 병에 음료수까지 보태주셨다. 아, 이건 절대 비밀이다.

그 밤은 아주 길었기에, 숙소로 돌아가기 전 안주를 사러 시장을 서성이던 우리는 동시에 외쳤다.


“땡초 해물파전!”


사장님은 “너무 매우면 어떡하지?”라는 우리의 걱정에 웃으며 답했다.


“다~ 내가 알아가 조절했다. 걱정 말아라.”


꺄르륵 웃음이 터진 우리는 잔뜩 기대어린 표정으로 도착해서도 따뜻하게 유지되던 그 포장을 열었다. ‘알아서’ 조절된 그 땡초 파전은 정말 딱 알맞게 맵고도 맛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늘 함께하던 그와의 여행이었다면, 이곳에서 보고 느낀 이 소중한 감정들을 똑같이 느낄 수 있었을까. 아마도 나의 대답은 ‘아니’였다.

그와의 여행은 늘 안전하고, 익숙했고, 그래서 예측할 수 있었다. 든든한 방패 같던 그 등에 기대는 대신, 스스럼없이 다가올 인연은 스러졌을 것이다. 푸근한 그 넉살에 웃음이 터져 나오기보단, 깍듯한 예의 속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와 함께하는 이 예측 불가하고 변덕스러운 여행 또한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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