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이 되면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줄 알았어.

by 마른틈

그 밤은 아주 길어서,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녀의 솔직하고 통통 튀는 매력을 사랑했다. 하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꺼낼 때면, 마음 한구석이 자못 불안했다. 그 말들이 의도와는 다르게 언젠가 비난의 화살이 되어 돌아올까 봐. 그래서 당신이 상처 입을까 봐.

살다 보면 그렇게 친밀하던 사이도 돌아서는 순간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 입장이기에,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상처받아온 나는 그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밤잠을 설치게 하고 힘들게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혹여 주제넘을까 늘 주저하던 그 마음을, 알싸한 술기운을 핑계 삼아 조심스레 꺼냈다.


"나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됐을 그 말 때문에, 혹여 적을 만들거나 빌미를 주지 않았으면 해. 언니가 그로 인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런 얘기들을 부모님께 한다면 네 말대로 정말 상처가 될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내 인생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그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잣대로 나를 판단하고 비난하려 한다면 오히려 환영이야. 그건 내가 그 사람을 가려낼 좋은 기회일 테니까. 그렇지만 네가 이런 말을 해주는 건 정말 고마워. 너의 이런 친절함을 나는 정말 좋아해."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내 생각보다 훨씬 단단한 사람인데 나 또한 그녀가 상처에 쉽게 흔들릴 거라고 멋대로 판단했다는 것을. 나는 굳건한 그녀를 닮고 싶어졌다.


"언니 나는… 나는 서른이 되면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줄 알았어. 내가 그쪽 일을 안 해본 것도 아닌데, 멍청하게 그런 서류에 당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 그들이 말하는 내 무능에 반박하고 싶으면서도, 완벽히 반박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어. 내가 정말 능력 있고 전문적인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그런 취급은 받지 않아도 됐을 텐데. 이 나이쯤이면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내가…"


나는 차마 다 잇지 못한 그 마음을 소주 한 잔에 털어 넣었다.

"야, 나는 네 나이 때 뭐 했는 줄 알아? 화장실 가는 거로 뭐라 해서 진통제 먹고 참아가면서 일했어. 그렇게 미련하게 굴었다 내가. 근데 너는 그러지 않았잖아. 너 그렇게 말하고 나온 거 후회해?"


나는 문득 열아홉의 어느 날을 떠올렸다. 학교에서 보내줬던 짧은 해외연수 중 급하게 잡힌 면접 일정에 혼자 귀국해야 했던 그날. 촉망받는 학생의 공기업 최종 면접을 앞두고 선생님께선 사비로 항공권을 끊어주셨다. 나는 그 기대에 어깨가 너무 무거워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새벽 내내 단 한숨도 잘 수 없었다.

귀국하자마자 공항 화장실에서 정신없이 교복을 갈아입고 도착한 그 면접장에서 묻던 질문은 너무도 평범하기 그지없었으나, 그렇기에 나에겐 너무 아픈 질문이었다. 능청도 너스레도 떨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는, 차마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십 년도 넘은 그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한 면접관의 질문에 끝내 우물거리던 입을 닫은 것을, 사는 내내 계속 후회했다. 내가 이 면접에 참석하기 위해 어떤 경로와 시간을 거쳐서 달려왔는지 그 말 한마디만 해볼걸. 그랬으면 떨어졌더라도 이토록 후회하지는 않았을 텐데ㅡ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절대 후회 안 해."

"그럼 된 거야. 나는 네가 그렇게 말했다는 거 듣고 너무 멋있었어. 하물며 너의 그 상사라는 사람은 너에게 어떤 말을 어떻게 할지 미리 준비해 온 사람이잖아. 너는 그런 사람 앞에서 아무 준비도 없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린 상태였는데도 네가 하고 싶었던 말을 똑바로 한 거야. 내가 만약 너의 부모였다면 나는 너무 기특했을 것 같아. 너는 나를 닮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너를 본받고 싶었어."

문득 건너편에서 터트리는 화려한 불꽃을 바라보았다. 온 마음을 다해 나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말에 어쩐지, 몹시 부끄러워졌다. 이토록 나를 사랑하는 이가 많거늘, 나는 스스로에게 너무 인색했다. 나는, 나를 더 사랑해 주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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