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를 갖는 방법

by 마른틈

우리의 다음 날 일정은 해운대의 유명한 밀면집이었으나, 내가 면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라면과 파스타 정도나 겨우 먹을까, 하여간 밀면은 절대 아니었다. 허나 나는 이 계획을 세우는 데 동참하지 않았으니, 다른 걸 먹자는 말을 꺼내기가 여간 어려웠다. 그러니 나는 술기운을 핑계 삼아 그녀의 계획을 감히, 망쳐야만 했던 거다.


“언니, 우리 내일 광안리 가지 않을래?”

“갑자기?”

“응, 나 광안리 바다가 너무 보고 싶다.”

“내일 우리 밀면 먹기로 했잖아”

“아~ 나 광안리 너무 보고 싶은데~ 우웅~ 진짜 보고 싶은데~ 택쉬아저쒸 광안뤼로 가주쉐요~”

“아, 알겠어. 진정하고 내일 가자, 알겠지?”


휴, 살았다. 언니, 미안.


그렇게 정해진 우리의 광안리 점심 메뉴는 꼼장어와 회, 그리고 매운탕 세트였다. 꼼장어를 먹어본 게 언제였더라. 꽤 의지했던 직장 상사와 얼큰하게 취했던 오래전의 즐거운 기억에 조금은 설레며 방문했지만, 그곳은 예상과는 달라서 나는 살짝 불안해지고 말았다.


자고로 유명하다는 맛집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웨이팅이 필수여야 하거늘, 우리는 아무런 대기 없이 순순히 입장한데다가 심지어 마수걸이 손님이었다. 혹시 우리가 오픈 시간을 딱 맞춰왔나…?

어쨌든 우리는 첫 손님 특권으로 광안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센스있는 그녀가 "옆에 앉아 같이 바다 보면서 먹자" 고 했고, 나는 그 뷰에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참고로 나는 날씨 요정, 그것도 ‘비 요정’이다. 여행 일정을 잡기만 하면 계절, 시기를 불문하고 기똥차게 비를 몰고 다니는 데다 여행이 끝나는 날 딱 맞춰 해가 배웅까지 해주는 기막힌 인간이다. 그렇기에 이번 여행 또한 출발 일주일 전부터 들려오는 비 소식에 마음의 준비를 했던 터였다.

그런데 웬걸, 빗속의 운치 있는 이 풍경이 이렇게 반가울 수도 있는 거였나. 우리는 계획에도 없던 이 꼼장어집이 퍽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광안리를 통째로 가진 기분에 우리는 또다시 눈이 맞아버렸으니, 동시에 외치고 말았다.


“사장님, 대선 한 병이요!”


이로써 우리는 부산에 도착한 순간부터 떠날 그 순간까지 알코올에 절인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그로써 당신과 내가 행복하다면 그뿐 아니겠는가. 한 잔에 비밀 하나, 두 잔에 비밀 둘. 우리는 잔이 늘어갈수록 울고 웃었다. 그것이 두 병이 되고 세 병이 되어서야 마침 비가 그치는 것이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짐을 챙겼다.


우습게도 8월의 부산이 인천보다 서늘했다. 내내 비가 내렸으나 덕분에 시원했고, 적절히 필요할 때마다 비가 그쳤다. 그때마다 우리는 바닷가를 거닐었다. 딱 필요한 만큼만 따라주는 운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서는 우리는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로 했다.


“언니, 여기 부산인 거 티 안 나게 찍어주라. 나 시부모님들 보시면 안 돼. 알지?”

“그렇지만 이쪽은 광안대교고, 저쪽은 마린시티인데…? 아! 그러면 AI를 쓰자!”


부산에 계신 시부모님 몰래 놀러 온 철없는 며느리를 위해, 그녀는 기꺼이 공모자가 되어주기로 했다. 몇 번 요리조리 터치하더니 배경에서 감쪽같이 ‘부산’을 지워내는 것이었다.


“와ㅡ 진짜 대박이다. 언니”


나는 환하게 웃는 그 사진을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걸었다. 혹여 물어보신다면, 친구들하고 ‘을왕리’를 다녀왔다고 말씀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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