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산 여행 마지막 일정은 그 회사에서 직원가로 산 물건들을 그곳에 사는 친구에게 전해주는 일이었다.
여행 전날 나는 친구에게 전해줄 이 물건들을 가방에 차곡차곡 챙기면서 참으로 복잡한 심경이 되고 말았다. 이것들을 살 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처지로 전달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거지.
어쩌면 그 회사에서의 나의 쓸모는 이 물건들이 전부였던 건 아니었을까ㅡ같은 우스운 생각에 신물이 올라왔다. 엉망진창 같은 상황에 미간을 꾹 눌러내니, 우는가 싶어 화들짝 놀란 그가 내 얼굴을 샅샅이 살피는 것이라 나는 또 한 번 복잡한 얼굴이 되어버렸다.
"당신, 생각보다… 안 우네?"
"그러게. 예전 같았으면 그 상사 새끼한테 쏘는 순간부터 질질 짰을 텐데, 그렇지?"
"많이 컸네, 내 와이프."
그날의 하늘은 정말 예뻤다. 진짜 더럽게도 예뻤다. 나는 어쩐지 그게 사무치도록 속상하고 화가 나서, 그 하루의 피로와 무기력을 안은 채 그대로 잠들기엔 억울했던 거다. 그러니 오랜만에 한잔하자는 그의 제안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직전 날의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다. 그 어떤ㅡ 무엇이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압박감과 불쾌함이 동반되었던 청문회 같던 자리. 간신히 해낸 표정 관리만이 전부였던 그 자리. 나만 빼고 다 알고 있던 우리 팀의 소식. 무지하지만 악의는 없었을 거라고 믿고 싶었던 그 날 선 말들. 좋은 결과물을 위해 그랬던 것이라 백번 양보하더라도, 적어도 직속상관인 그 사람만큼은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않았을까 하는 그 서운함.
"당신 그거 직장 내 괴롭힘인 건 알고 있는 거야?"
나는 그제야 이유를 알 수 없이 짓누르던 불쾌함과 그 압박감의 원인을 알아차린 것이다.
허나 그 순간까지도 미련해 마지않을 나는, 그 잘못을 나한테서 찾고 있었다. 그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만큼 그들도 내가 퍽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겠지.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거야.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애초에 내가 잘 융화되는 인간이었다면.
“그들이 당신을 뽑은 이상, 당신이 성에 차지 않았으면 교육을 해야 했고, 이끌어야 했던 거야. 그렇게 고지도 없이 뒤에서 몰래 평가하고 감시하다가 다 네 탓이라고 뒤집어씌우고 버릴 게 아니라.”
나는 여전히 이 문제의 해답에 대해 결론 내리기가 어려웠으나, 늘 뒤돌면 그 자리에 굳건히 있는 그. 갑작스러운 퇴사에 바리바리 챙긴 그 짐들을 함께 옮겨주겠다며 택시를 불러주는 그녀. 언제든 울고 싶을 때 전화하라며 기다리겠다는 당신들이 있는 지금에 제법 들뜨고 말았다. 나는 그제야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친구에게 퇴사 사실을 숨겼다. 처음 입사했을 당시 이곳이 나랑 얼마나 잘 맞을지, 앞으로 내가 이곳을 시작으로 어떤 커리어를 만들어 나갈지에 대해 잔뜩 부풀어서 이어 나갔던 대화가, 그 희망이, 부당해고가 되었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어 삼켜냈다. 다만 근래의 회사생활은 어떠냐는 그 질문에 여상한 척 대꾸할 뿐이었다.
친구에게 그 회사의 마지막 잔재를 건네며, 나는 길게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참으로 쓰리고도 후련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