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존재의 아이러니

자율적 인간이 되기 위한 투쟁

by 그루미루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수많은 제약 속에 던져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평생토록 자율적인 존재가 되고자 투쟁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세상에 “세계-내-존재”로서 내던져져 살아가지만, 정작 대부분은 “본래적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고 만다고 지적했다.


처음엔 부모와 사회, 문화라는 “그들(타인)의 세계” 속에 길들여지고, 어쩌면 편안함에 안주하며 살아간다.


남들이 가치 있다고 하는 것을 좇고,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의 공식을 따르면서, 스스로도 그것이 당연한 줄 안다.


그러나 그렇게 타인의 논리에 따라 사는 삶은 왠지 모를 공허함과 불안을 남긴다.


언젠가 문득 거울 속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며 “이게 과연 나의 삶인가?” 묻게 되는 순간이 온다.


하이데거는 바로 그 불안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여, “이건 아니지”라는 깨달음과 함께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결단을 내리는 것을 양심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시작하는 상태를 본래적 실존, 참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결국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란 '던져졌지만 스스로 일어서려 한다는 점'에 있다.


수많은 각본과 힘이 나를 에워싸지만, 그 안에서 온전히 ‘나’이고 싶어 하는 의지가 꿈틀댄다.


어릴 적 외부의 동기로 길들여졌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내 자유를 찾기 위해 싸우단 모습도, 이 인생이라는 거대한 장편드라마의 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아니, 여전히 그 장면 속에 있다.


나는 아직 완전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해진 가치관이 있다면, 건강만이 나의 유일한 욕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돈이나 명예,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취도 물론 소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더 이상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오히려 욕심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살아갈 때 찾아오는 평온함을 배웠다고 할까.


다만 건강만은 예외다.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곧 살아있음 자체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상태이며, 자기 결정과 성장의 기반이 된다는 걸 피부로 느낀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마저도 내가 납득한 이유를 붙여 스스로에게 허락한 마지막 욕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건강을 지키는 일조차도 절반은 운명에 맡겨야 하는 영역이다.


그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면서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 – 생활 습관이나 마음가짐 – 만큼은 나의 의지로 관리하고자 애쓰는 중이다.


결국 내게 남은 유일한 투쟁은 나 자신을 온전히 유지하고 실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내 몸과 마음을 잘 돌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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