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술 그리고 땅

by 서빛

일반적으로 사람의 신체는 50~60%의 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면서 사람에게 물은 필수적인 존재이다. 먹고 마시고 씻는 것 이외에도 물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면, 그 사람은 몇 초간 멍 때리며 대답을 못하거나 네? 물이요?라고 반문할 것이다. 또는 좋아하는 물을 묻는다면 단번에 3 다수요,라고 바로 답을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물은 좋아하는 것이라고 보기에 어렵다. 그저 삶의 필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그렇지만 주제가 물이 아니고 술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술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네 또는 아니요라고 답문할 수 있다. 좋아하는 술을 묻는다면 소주, 맥주, 막걸리, 등 선택지가 다양하고 분명하게 답을 할 수 있다. 술은 건강에 좋은 점이 없지만 호불호가 확실하여 애주가들에게는 크나큰 즐거움을 주는 존재이다.


나는 술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불행 중 다행히도 주량이 적은 편이라 조금의 양으로 충분히 즐기는 쪽이다. 하지만 술이 몸에 잘 받는 편이 아닌지라 매일 마시지 않고 절제하여 간간히 즐긴다. 물은 좋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맛도 없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지칠 때 가장 먼저 물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물에 대한 약간의 강박증이 있어서 내 수중에 또는 가까이에 물이 없으면 불안하고 목이 마른다. 그래서 수시로 물을 찾고 자주 마시는 편이다. 그럼에도 역시 좋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365일 다이어트 중인 여자에게 술은 적이다. 술을 즐기면 살이 찔 수밖에 없다. 마시는 순간에는 살이 찌든 말든 간에 알코올의 향이 알싸하게 올라오면서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느낌이 정말 좋다. 물은 살이 찌지도 않고 오히려 다이어트에 매우 도움이 된다. 갈증을 해소하는 느낌만 들뿐 맛이 없다. 그마저도 이온음료에 비하자면 갈증을 해소하는 느낌도 덜하다.




아기를 낳고 백일이 지나서 곰곰이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안 되는 점이 있었는데, 내가 아기보다 남편을 더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엄마로서 그럴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놀라며 모성애가 부족한지 스스로에게 되물은 적이 있었다. 혹시 하루 종일 육아에 시달려서 심신이 지친 상태라 그런 것일까 하고 생각했지만, 두 돌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은 같다. 나는 내 새끼보다 남편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아이가 내 곁에 없거나 보이지 않으면 심적으로 몹시 불안하다. 내 시야에 잡히지 않으면 불안해서 잡생각이 들고 내가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내 시야에 들어온다고 해서 행복하거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아이와 함께 집에 오면 스트레스가 증가하는 편이다.


남편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할 일이 없다. 남편이 일하러 나가면 나와 좀 더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에 아쉬운 마음이 깃든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릴렉신호르몬이 도는 건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남편이 멀리 지방 출장 가는 날이면 나는 전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다가 남편이 집에 돌아가는 중이라고 전화를 하면 나는 그때서야 졸음이 몰려와서 잠에 들 수 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에게 아이는 물과 같이 살면서 없으면 안 되는 필수적인 존재이고, 남편은 술과 같이 없으면 즐거움이 사라져 아쉬운 존재이다. 남편 없이 어찌 저 살아갈 수는 있지만, 아이 없이는 도무지 살 수 없다. 아이가 물과 같은 존재라면 엄마는 아이에게 땅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없으면 내가 밟을 땅이 무너져 끝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것과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물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땅은 무너져버렸다.


엄마와 이별을 한 뒤로 내 가슴속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은 뭘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는 우주의 블랙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다고 했던가. 그 구멍 위를 내가 꾸린 가족의 사랑이라는 덮개로 살포시 덮어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옷장에서 옷을 찾다가 깊은 구석에 니트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산 옷이 아닌데, 어딘가 낯이 익었다. 짙은 감색의 단추가 없는 카디건으로 군데군데 하얀색 고양이털이 박혀있었다. 그 옷은 내가 결혼 후에 친정을 방문했을 적에 엄마가 입혀줬던 옷이었다.


"추운데 왜 이러고 다녀. 이거 입고 가"

아직 여름이 오기 전인 늦봄의 쌀쌀한 봄바람이 불었던 날이다.


"어차피 차 타고 가는데 뭘, 그리고 이거 언제 돌려줄 줄 알고."

나는 가뜩이나 열이 많은 체질이기 때문에 차를 타고 다니고부터는 더욱 옷을 얇게 입고 다녔다.


"이거 주러 또 오면 되잖아."

엄마가 따뜻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후로 나는 엄마와 이별을 했다.


엄마가 가장 그리울 때는 비로소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다. 그 옷을 발견했을 때 나는 임신 중이었다. 옷에 조심스럽게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익숙하고 편안한 향기에 가슴이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포근한 엄마의 향기와 고양이의 쿰쿰한 털 냄새까지 섞여서 그립던 장면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햇빛이 드리우는 거실로 들어가면 주방에서 엄마가 나와 왔어 내 새끼! 하고 나를 안아주었다. 일광욕을 즐기던 하얀 고양이가 느린 걸음으로 내게 와서 다리에 얼굴을 문질렀다.


이제는 볼 수 없다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고 사무쳤다. 한참을 울고 나서 나는 그 옷을 다시 옷장 구석에 조심히 넣어두었다. 냄새 하나도 날아가지 않게 바람이 드지 않는 구석으로. 힘들 때마다 몰래 꺼내볼 수 있게.


나의 땅이 무너지고 나서 그 자리에 더 단단한 땅을 만들어 한 발 한 발 지르밟아 세밀하게 다졌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땅이 되어야만 했다. 그 땅 위에서 물이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도록 단단하면서 평평하고 넓은 땅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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