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함과 '덜' 함의 사이에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by 쓰리씀

감탄한 그녀-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나는 바이링구얼에 대한 환상이 있다.
‘대화가 가능하다,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정도의 수준을 넘어,
완전히 다른 두 세계에서 동시에 감각하고 존재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다.
그건 단지 말하고, 듣고, 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각 언어가 품고 있는 사고와 감정의 세계를 흡수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바이링구얼은 이미 속해있는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고

스스로 감정의 질감을 더 세밀하게 나누는 일

일 것이라고 한국어밖에 할 줄 모르는 나는 생각한다.


줌파 라히리(3화)에 이어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에게도 감탄은 같은 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우아한 얼굴과 싸늘한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나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소중한 지인이

나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여성상이 있다고 했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를 포함하는 그 ‘상’은

다름아닌, ‘신경질적인 여자’상이었다.

묘하게, 정확했다.

“예민함, 섬세함, 타협하지 않음”으로 보임.


예민하고 섬세하며 타협하지 않는다는 건,
감정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직면할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그것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감당하려 한다.

더 많은 언어와 더 넓은 세계를 빌려
감정을 더 정교하게 가늠해 보는 것-
그것이 내가 감탄하는 바이링구얼의 용기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침묵이라는 반대의 형식으로
감정의 무게를 ‘하지 않음’으로 견디는 사람도 있다.


더 말함과 말하지 않음.
이 두 선택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뿌리를 가진 감정 표현이다.

이런 태도를 영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에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연기한 쥘리에트를 통해

처음으로 선명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쥘리에트는 말을 하지 않기로 선택함으로써,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려는 사람이다.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존엄이었다.



감탄한 이야기-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프랑스 소설가 필립 클로델의 장편영화 연출작이다.
그의 영화는 마치 문장을 장면으로만 바꾼 , 섬세한 문학적 감수성이 묻어난다.

대사의 여백이 많고, 침묵의 공간이 크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연기한쥘리에트 감정을 봉인한 인물이다.

아들을 죽인 죄로 15년을 복역했는데, 재판부터 출소까지 말을 일절 하지 않아

무명인으로 불리었다.

사연을 짐작할 수는 없었어도

그녀의 눈빛과 기진맥진한 표정은

슬픔이 어떻게 영혼을 잠식시키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침묵을 선택했던 과거,

“사실은 그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아무 의미 없었을 것이다.

거대한 슬픔 앞에서 진실은 아무 힘이 없다.

그녀의 침묵은 도피가 아니라

감정을 끝까지 자기 몫으로 감당하려는 사람이 택할 수 있는

가장 고요하고 단호한 방식이었다.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감정을 숨긴다는 뜻이 아니라

그 무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하지 않음’의 선택일 수 있다.


바이링구얼의 용기가

감정의 진폭을 더 깊고 정교하게 느끼고 표현하려는, “더 하겠다”는 확장의 선택이라면,

침묵의 용기는

단지 표현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그 무게를 내가 오롯이 품는 태도이며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하지 않겠다”는 절제의 선택이다.

두 선택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도망치지 않고 감정을 끝까지 마주하려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두 가지의 다른 태도일 뿐이다.

그것이 더 많은 말이든,

침묵이든.


감탄한 장면

사회로 돌아온 쥘리에트는 감옥을 나온 것이지, 감옥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틴 스톳 토마스는 살아있다는 게 너무나도 무의미하다는 태도를 그렇게 우아하게 보여줄 수가 없었다.


쥘리에트가 서서히 일상과 마주하기 시작할 때, 미술관에 가는 장면이 나온다.

가방을 뒤로 들쳐 매고, 한 걸음 한 걸음 터벅터벅 걸으며 미술관을 둘러본다.

그 장면부터가 해빙의 시작이라고 느꼈다.

감옥이 감정을 얼리고 인간의 존엄을 지우는 곳이라면

미술관은 감정을 녹이고, 존엄을 되찾는 공간이다.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감옥과 미술관이 존엄의 가장 먼 끝에 서 있는 두 극점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무엇일까.

나에게 그것은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관에 들어간다는 건, 그 자체로 인간으로 다시 돌아오는 순간이다.


그런 의미로 미술관에 간 게 언제였는지 되돌아보았다.

의무감, 해야 하는 “일”로 방문한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감정이 무력해질 때,

아름다움 앞에서 아무 말 없이 오래 서 있을 수 있다면

감탄할 수 있다면

나는 여전히 인간이고, 살아있는 사람일 것이다.



함께 쓰고 싶은 감탄노트

표현의 양으로 감정을 가늠할 수는 없다.

더 많이 "할지"

더 많이 "덜어 낼지"는 아직 선택하지 못했지만

나는 내 감정을 오롯이 감당해 보려는 사람이고 싶다.

keyword
이전 05화Intermission1-바쁜데 심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