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mission1-바쁜데 심심해

감탄 소강기(aka. 육아 생존기)

by 쓰리씀

공교롭게도 제가 감탄했던 콘텐츠들은 2010년 전후부터 2015년까지가 가장 많았고,

그 이후로는 거의 없다가- 다시 2023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 시기가 제가 첫 아이를 임신한 2016년부터 셋째 아이가 돌을 맞은 2022년까지와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7년 동안 임신, 출산, 모유수유, 육아를 반복하며,

왜 이렇게 바쁘고 다사다난한데 일상이 무미건조할까 우울감이 오기까지 했습니다.

저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도, 오랜만에 집에 온 딸의 연애 이야기가 궁금한 엄마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너가 살림을 안 해봐서 모르나 본데, 바쁜데 심심해.”


생명을 만들어 내고, 기스 나지 않게 온전히 키우는 값진 일이

왜 이렇게 공허했는지 오랫동안 고민해 본 결과,

그 이유는 바로 감탄이 멈췄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감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멈추었던 감탄들을 다시 꺼내 보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10년은 제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해이기도 합니다.

20대 후반, 그때는 나름 청춘의 끝자락이라고 느끼며

한 명의 독립된 성(숙한)인(간), 그것도 성인 여성으로서의 방향성을 찾고 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감탄은, 감탄인 줄도 모르고 쏟아졌습니다.

왜 공감하고, 왜 눈물이 흘렀는지도 몰랐습니다.


그 감정이 제 안에서 천천히 묵히고 발효되어,

저만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을 때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랫동안 저의 감탄을 멈추게 한 원인이라 탓해왔던

아이들과 남편을 향한 감탄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어

가장 당연하게 여겨왔던 존재들에 대한 감탄을 말입니다.


그들은 저의 그 어떤 감탄보다 앞서,

나를 숨 쉬게 하는 존재들입니다.


아직은 부모의 손이 많이 필요할 때라

언제 다 키우나 싶다가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흐르는 시간이 야속합니다.

가끔, 너무 빨리 크지 말라고 부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가장 사랑스러운 때는

조용히 잠들어 있는 지금 이 순간입니다.


오늘도 사랑만 듬뿍 주겠다는 다짐으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정작은 눈물의 사과와 반성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더 많습니다.




미혼 시절, 일터에서 만나 가깝게 지냈던 거래처 분 중에, 이팀장님이라고 계셨습니다.

회사 일도 야무지게 하시는데,

우연한 기회에 아들이 둘이나 있다는 걸 들았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요.

결혼이 뭔지, 육아가 뭔지 제대로 생각해 본적도 없었던 병아리 시절 저에게도

그분이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가 없었어요.

도대체 이게 가능한 거냐,

어떻게 다 해 내시는 거냐,

호기심과 경외감을 담아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현자께서는 고민도 하지 않고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둘 다 대충 하면 돼요”


어린이집에서 올려주신 사진으로 뒤늦게 알게 된 막내아들 등원룩 - 한 짝은 본인 거, 한 짝은 누나 거 짝짝이로 신은 신발


팀장님, 이런 나 어떤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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