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아브라모비치, The artist is Present
감탄한 그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인상만큼이나 강렬한 퍼포먼스 아트를 한다.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퍼포먼스를 하는지,
그녀의 우아한 얼굴과 하얀 살결이 대비되어
작품의 충격이 더욱 증폭된다.
그녀는 몸과 삶을 통째로 예술의 재료로 삼는,
말하자면 예술과 동일시되는 인물이다.
그녀의 퍼포먼스에는 두려움과 고통, 침묵과 인내가 스며 있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살인 도구를 늘어놓고
관객이 그녀의 몸을 해치게 두는 퍼포먼스도 하고,
스스로를 칼로 찌르고, 타격하거나,
자신을 테이블 위에 올려 ‘대상화된 존재’로 방치시키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침묵은, 스스로를 완전히 내맡기는 것이다."
그녀에게 예술은 표현하는 방식이라기보다
견디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삶과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울라이.
그는 그녀와 12년간 예술과 사랑, 몸과 감정의 경계를 오가며 함께한 연인이자 동지였다.
하루 종일 마주 앉아 입술을 맞댄 채 숨을 섞으며 ‘호흡마저 공유하는 존재’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서로의 얼굴을 때리거나 소리를 지르며 감정의 경계를 밀어붙이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들은 '사랑' 그 자체를 퍼포먼스의 재료로 삼았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1988년의 이별 퍼포먼스를 끝으로 정말로 이별했다.
중국 만리장성의 양쪽 끝에서 서로를 향해 2400km를 걸어가다 한가운데서 만나 작별하는 퍼포먼스였다.
처음의 기획은 결혼을 하는 퍼포먼스였다는데,
현실적인 문제로 지연이 되다 몇 년 후 실행되었을 때는
이별로 바뀌었다고 하니
삶이란 얼마나 얄궂은 것인지.
둘은 예술로 만났고, 예술로 이별했다.
그리고 22년간, 다시 만나지 않았다.
감탄한 장면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The Artist Is Present>는 마리나의 경력에서도 특별한 자리였다. 이전까지 그녀의 퍼포먼스는 주로 고통, 위험, 육체적 한계에 도전하는 강렬한 실험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움직임 없이, 단지 ‘존재’만으로 관객과 마주하는 방식이었다. 하루 8시간, 석 달 동안 의자에 앉아 침묵으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작업은, 그녀가 평생 해온 인고의 실험을 ‘정적인 형태’로 완성한 무대였다.
작가와 마주한 관객은 서로의 존재를 오롯이 인식하고
감정과 에너지가 교류되는 순간을 공유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니까, 관객과 그 순간 ‘존재하는 일’ 자체가 예술이 된 것이다.
나는 물론 모니터 속 작은 화면으로 이 작업을 간접 경험했다.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고요한 눈빛을 바라보는데,
설명할 수 없는 위로가 스며들었다.
대충 그런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눈물이 왈칵 쏟아지게 하는 강력한 에너지였다.
어떤 초월자가
다 알고 있다는 듯, 다 이해한다는 듯, 그리고 다 용서한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실제로 현장에서도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를 스쳐간 수많은 관객들 사이,
그날, 눈앞에 울라이가 나타난다.
그는 비밀리에 초청되어, 아무런 사전 고지 없이
아무 말 없이 그녀 앞에 앉았다.
20여 년의 침묵을 뚫고 마주한 이 재회는,
작품의 주제인 ‘존재’와 ‘마주함’을 가장 극적으로 증명하는 장면이 됐다.
감탄한 이야기
그녀는 눈을 맞추고, 눈물을 머금고, 손을 잡는다.
그 장면 하나가 모든 말을 대신했다.
어떻게 온 거야.
22년 동안 어떻게 살았어.
나는 늘 외로웠어.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어.
미안해.
고마워.
눈빛 하나로, 모든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말없이도 완벽했다.
그 어떤 퍼포먼스보다 정적이었지만, 그 어떤 고백보다 깊은 장면이었다.
완벽하게 함께 존재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첫째를 키울 때, 아이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몰라,
더 정확하게는 무엇을 해 주어야 할지 몰라,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주말마다 외출을 했다.
문화센터, 키즈카페,
뽀로로, 타요, 노래가 있는 모든 시리즈의 뮤지컬…
돌리고 돌리고 돌리다, 집에 오면 바로 곯아떨어지는 스케줄이었다.
재미있고 신나는 볼거리, 놀거리, 이야깃거리, 노래들로
아이의 시간을 꽉꽉 채워주고
사랑한다고 “말”을 해주어야
사랑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야,
사랑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Mother is present.
그것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아이와 마주 앉아,
이 세상에 오직 너밖에 없다는 듯
오롯이 존재해 주는 일이,
나를 전부 내어주는 일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깊이 헌신하는 수행의 퍼포먼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