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 <on the rocks>
감탄한 그녀
영화의 감독인 소피아 코폴라는 <대부>의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이고,
주연 배우인 라시다 존스는 위대한 뮤지션 퀸시 존스의 딸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모두 한 몸에 입은 예술의 거장을 아버지로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문화 자본과 경제 자본의 최정점에 태어나 상류의 세계만을 보고 자란 이들. 그 외의 삶은 아예 경험조차 하지 못한 채, 그들에겐 그 세계가 전부였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는 화려한 럭셔리 라이프 스타일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버겁게 유지해 나가는 모습이 아닌, 부와 특권에 대해 무심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품을 수 있는 느긋하고 우아한 세계를 담고 있다.
아주 조용한 태도로 말이다.
감탄한 이야기
로라는 성공적인 작품을 낸 이력이 있는 작가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일에 헌신하는 일상 속에서 글도 쓰지 못하고 자신감도 바닥이 났다.
남편은 바쁘고,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하는 아이들에, 엄마들과의 공허한 대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싶은 매일.
그러던 중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며 본투비 순수혈통 바람둥이 아버지와 뉴욕을 함께 누비는 ‘탐정놀이’를 시작한다. 이 수상쩍은 추적극은, 아버지에게는 딸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애절한 구애의 세레나데가 되고, 로라에게는 남편이 아니라 자기 삶의 진실을 추적하는 여정이 된다.
내가 지금 의심하는 게 남편인지? 나 인지?
감탄한 장면
라시다 존스가 연기한 주인공 로라는, 소피아 코폴라 자신을 투영한 듯 너무나 노골적으로 그녀의 평소 옷을 입고 등장한다.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청바지, 에코백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걸쳐 맨 샤넬백. 샤넬이 마치 에코백 중 하나인 것처럼.
로라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책상 정리만 하고 앉아있는 작업실의 층고는 어마어마하게 높다. 지구에 태어나서, 미국에, 그것도 뉴욕의 그런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연필을 깎고 앉아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자각하지 못한 특권, 생존과 쟁탈에 무심할 수 있는 삶. 그 자체가 영화를 관통하는 무드다.
영화를 두고 그저 감각적이다, 세련됐다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무심하게 지나가지만 그 와중에 절대로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명장면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빌 머레이의 등장.
은퇴한 아트 딜러인 아버지 펠릭스가 해외에서 귀국해 딸을 찾아온, 빌 머레이의 첫 등장 씬이다.
기사가 운전하는 고급 세단의 뒷좌석에서 그가 천천히 창문을 내리는 순간- 진짜 육성으로 “와아….”가 터져 나왔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창문만 내렸을 뿐이다. 조지 클루니처럼 잘생겼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화면을 가득 채운 노 배우의 농염하고 노련한 아우라가 찐 감탄의 순간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빌 머레이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태연자약함. 바람둥이 아트딜러라는 그의 캐릭터가 사랑하는 대상은 예술, 여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는 그저 “아름다움”을 흠모하는 한량이었다. 그가 툭 던지는 말 한마디, 나른하게 쳐다보는 눈빛 하나하나가 능청과 우아함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창조했다.
영화 속에서 펠릭스는 로라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기 위해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에 데리고 간다. 예약한다고 아무나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익스클루시브한, 상류 사교 모임 장소 일 것이라고 짐작되는 이 레스토랑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몸에 좋은 재료, 고급스러운 메뉴, 러시아 발레단 출신의 웨이트리스의 섬세한 몸짓의 서빙이 한 데 어우러져 있다. 누가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그런 곳에 데려가 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감탄한 장면은 따로 있다. 펠릭스가 로라를 데리고 간 홈파티에서, 잠깐 몰래 빠져나와 모네의 작품이 걸린 방에 들어가 둘이 넋을 잃고 작품을 감상하는 장면이 있다. 아무 대화 없이, 작품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는 두 부녀의 모습이 그렇게도 부러웠다. 지인의 '가정집'에서 모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특권은 물론이고,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어 감탄하는 예술적 소양과 취향.
정말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특권 자체가 아니라, 그 순간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아름답다’고 감동할 수 있는 마음과 취향, 그리고 안목이라는 것이다.
그 찰나의 아름다움에 진심으로 감탄할 수 있을 때, 이 인생이 살아지고 있음에 감사함이 가득해진다.
감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새벽마다 감탄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아름다움을 그냥 지나쳐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어쩌면, 언젠가 다시 내 삶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순간을 마주하기 위해서.
함께 쓰고 싶은 감탄노트
감탄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보다,
숨기려 했던 것에서 더 자주 드러난다.
취향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낸 것들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