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맏딸 시점으로 본 아빠

아빠에 대한 맏딸의 기억 모음집

by 지지 zizi




엄한 아버지, 서윗한 아빠

나는 어린 시절 아빠의 제안으로 등산을 자주 갔었다. (동생들도 함께) 그때만 해도 약수라는 것을 믿어서 (지금도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각자 빈 페트병 두 개씩을 가방에 넣어 산을 오르고 한참 높은 곳에 위치한 약수터에서 물을 가득 담에 내려왔다. 그때는 일주일에 한 번 그게 당연한 코스였는데 매주 그렇게 아이들과 정한 것을 꾸준하게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걸 이제 조금은 알것 같다.


어른이 되어 아빠와 둘만 등산하던 어느 날, 무뚝뚝한 아빠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이렇게까지 기억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는 것.)


"아빠는 부모님이 어릴 때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부모가 되었을 때 아빠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아. 많이 보고 배울 시간이 적었던 거지. 그래도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있었어서 너무 엄하게만 했던 거 같아."


맞다. 나는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무서웠고 어른이 된 지금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쓴다. 특히 어릴 때는 아빠, 진지 잡수세요.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이런 말들을 주로 썼고 (물론 지금도) 다정한 아빠보다는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아빠가 저 말을 꺼내셨을 때 적잖게 놀랐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놀람보다는 진심을 알게 되어 더 좋았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그저 환경에 의해 배우지 못한 영역을 "엄하게" 란 방법으로 풀었던 것뿐. 서툴렀던 부모라 다른 방법은 잘 몰랐던 것뿐. (스스로 생각해봐도) 바르게 자란 큰 딸의 관점으로 아빠는 최선을 다 하셨고 그 방법이 아주 틀리진 않았으리라.





알고 보면 세상 다정했던 우리 아빠

중학교 소풍 전 날 사진을 남기고 싶어 말씀드렸다. 아빠의 미놀타 카메라를 가져가고 싶다고. 내 기준에서는 그 말을 꺼낸 것도 큰 용기였는데 돌아온 대답은 역시 안된다. 였다. 아빠가 매우 아끼던 카메라였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큰 필름 카메라를 내가 소풍 내내 잘 가지고 다닐 수 있었을까도 싶다. 그리고 우선 물어는 보지만 안 되겠지 예상해서였을까 그렇게 크게 실망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소풍날 엄마가 만든 김밥 냄새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오는데 가방 옆에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일회용 카메라와 편지 한 통.


"아빠가 그거 가지고 가래~ "


보자마자 놀람과 기쁨, 여러 감정이 뒤섞여서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일회용 카메라와 편지를 가방에 넣고 자르지 않은 김밥을 한 줄 먹고 (일부러 잘라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렇게 먹는 게 더 맛있었달까) 출발 장소로 향했다.


버스에 올라 타 편지를 펼쳤는데 바지런한 글씨로 가득 채워진 편지지를 보자마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안돼. 친구들 앞에서 울면 안 돼. 멈춰. 정신 차려! 머리는 계속 멈추라 했지만 눈물샘은 고장이 났는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엄마가 싸주신 휴지로 얼른 눈물샘을 틀어 막았다. 조금 진정을 하고 편지를 읽었는데 아빠가 이래서 카메라를 빌려줄 수 없었다는 이야기, 일회용 카메라로 좋은 추억 담아 오라는 이야기, 선생님 친구들과 소풍 잘 다녀오라는 그런 이야기가 쓰여 있던 것 같다. (사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버스에서 소리 없이 울었던 기억이 너무 커서 그런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가 떠올라 또 눈물이 난다. (내 눈물 버튼 중학교 소풍날) 그 뒤로도 아빠는 생일 날, 수학여행 날 꼭 한바닥을 가득 채운 편지를 써주셨다. 무뚝뚝한 아빠만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었을까.




내 기억 속 대부분이 무뚝뚝한 아버지, 무서운 아빠였지만 서윗한 아빠 모먼트도 분명 적지 않았다. 아빠도 방법을, 표현하는 방식을 잘 몰랐던 것뿐이지 마음은 그러지 않으셨단 걸 지금은 너무 잘 안다. 그리고 요즘은 고맙다 사랑한다 건강챙겨라 아빠도 좋다. 표현을 많이 해주신다. 무뚝뚝한 아빠는 점점 지워지고 서윗한 아빠의 모습이 더 많이 남는다. 아빠. 사랑해요!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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