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 엄마 꺼내보기
아이들은 날 어떤 엄마로 기억할까? 운동 좋아하고 주변에 사람 많고 크고 작은 일에 잘 웃고 울고, 화는 좀 많은 것 같은데 사과는 또 누구보다 빠르게 하는 사람. 이 정도로도 만 봐줘도 좋을 것 같은데... 어떨까? 조금 더 욕심 내보자면 뭔가를 시작하면 지독하게 오래 하고 큰 일에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반면 작은 일들에는 호들갑을 떠는 사람. 본인이 설정한 기준이 명확해 스스로는 지키려고 애를 쓰나 타인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유연한 사람. 그리고 대단한 오지랖으로 여기저기 도와주기 좋아하는 사람? 이렇게까지 기억해 주면 최고겠다. 언제 한번 진지하게 물어봐야겠군.
나는 맞벌이 가정의 장녀. 지금 생각해 보면 철이 좀 빨리 든 것 같다. 부모님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기 전 동생들과 집을 치워둔다던가 결혼기념일에는 색종이를 자르고 붙여 파티준비를 한다던가 했다. 아무래도 부모님과 함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적으니 사랑을 덜 받고 자랐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해 본 일이 없다. 급하면 언제든 가볼 수 있는 위치에 가게, 서윗하진 않았지만 모자람 없이 생활할 수 있게 정서적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 아래 글들은 내가 기억하는 우리 엄마. 좋고 싫고를 떠나 이런 엄마가 내 엄마였고 내 엄마여서 좋았다는 걸 기록해두고 싶다.
통통한 엄마 마른 엄마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엄마는 항상 통통했었다. 입버릇처럼 엄마가 젊었을 적에는 뼈 밖에 없었어. 진짜 말랐었다니까? 살이 없어도 그렇게 없었는데... 너희 셋 낳아서 키우다 보니 조금씩 쪘고 아파서 먹은 약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라고 얘기하셨다. (그때만 해도 뼈 밖에 없진 않았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만 둘째 낳고 이상하리만큼 안 빠지는 살 때문에 나도 비슷한 말을 하게 되더라.) 엄마가 50대가 되어 어떤 사건(?)을 겪은 이후로 독하게 마음을 먹고 살을 많이 뺐는데 어느 정도로 했냐? 밥이 잘 되었는지 무의식적으로 먹은 밥을 다시 뱉을 정도... 운동도 열심히 해서 건강도 되찾고 그때부터는 쭉 마른 엄마가 되었다. 통통한 엄마든 마른 엄마든 상관없다. 그저 엄마 스스로가 만족스러운 모습에 늘 기뻐하고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게 되었다는 것. 엄마 난 통통한 엄마 모습도 좋았어. 예뻤어.
여행은 엄마의 런웨이
엄마는 여느 아줌마들처럼 화려한 옷을 좋아했다. 이런 건 어디서 사는 거야?라고 여러 번 물어볼 정도의 과한(?) 옷들도 많은 편. 특히 여행을 가게 되면 절정에 이르는데. 출발하는 날 기준으로 일주일 전부터 패션쇼는 시작된다.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위아래 어울리는 옷을 입어보고 액세서리 (모자, 가방 등)과 어울리는지도 보고 한참을 고심해서 고른다. 이게 3박 4일 짐이야? 싶을 만큼 캐리어의 4/5를 차지하는 옷들. 여행의 큰 재미가 옷을 챙기는 일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일주일 동안 행복해 하심) 여행 후 사진을 같이 보면 분명 같은 장소인데 옷이 다르기도 하다. 처음엔 몰랐는데 여쭤보니 가방에 꼭 사진 촬영용 여분 옷을 넣어 다니신다고... 이렇게나 옷에 진심인 엄마라니. 최근에는 무채색 옷도 (장소에 따라 선택하시는 것 같다.) 곧 잘 입으시는데 체형과 매치를 아주 잘하시는 것 같다. 엄마! 그래도 진심 제 옷은 안 사 와도 될 것 같아요...
아이보다 내가 먼저여도 괜찮아
고 3 시절 수능을 끝내고 한참 미술 실기 시험을 다니던 때다. 아빠 엄마는 예정되어 있던 해외여행을 가셨고 나는 마지막 실기 시험을 끝내고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가던 길이었다. (명동이었던 것으로 기억) 전화가 걸려와 받으니 호텔이라는 엄마. 시험 잘 봤니? 어땠니?라는 말 대신 여기 음식이 입에 잘 안 맞아서 밥을 거의 못 먹었다. 거기다 지금은 좀 체한 것 같아 호텔방에 혼자 돌아왔다. 등 엄마 이야기를 한참 했다. 여기는 초록색 굴이 엄청 큰데 그건 좀 괜찮더라. 영화가 곧 시작인데 끊을 수 없어 계속 듣고 있었다. 나중에 커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이가 고3 때 (특히 수능이나 실기 시험 시기에) 여행을 가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고... 이 이야기를 한참 뒤에 했더니 엄마는 내가 무엇이든 스스로 잘 해냈고 불평도 전혀 하지 않아 뭐든 그냥 그랬던 것 같아. 그때 여행에서는 힘들어서 너한테 더 그랬나보다. 미안했다고. 미안하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엄마를 다독였다. 나도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어 나름의 배려와 신경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아이 입장에서는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을 항상 한다. 그래서 늘 그때그때 말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개선할 수 있는 것은 빠르게!
다음 편은 전지적 맏딸 시점으로 본 아빠 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