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떠올려보는 어린이날
#6. 나의 어린 시절 어린이날
어른이 되어 떠올려보는 어린이날
내가 기억하는 나의 어린이날은 항상 우리 셋이었다. (나, 여동생, 남동생) 부모님은 어린이날이 되기 전 우리가 원하는 선물을 꼭 사주셨고, 그 선물로 우리 셋은 늘 행복했다. (동생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그리고 부모님께서는 어린이날이 그 어떤 날보다 바빴다. (외식 = *자장면이었던 시절인지라 입학식, 졸업식, 어린이날, 크리스마스가 가장 바빴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거였고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도, 서운했던 적도 없었다. *부모님께서는 45년 동안 자영업 (중식집)을 하셨다.
소세지 (첫째 소윤이)를 낳고 나는 틈나는 대로 공원,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을 부지런히 다녔다. 특히 어린이날, 생일, 기념일에는 특별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애썼다. 그런 우리를 보고 엄마는 입버릇처럼 “소세지는 좋겠다. 아빠 엄마랑 좋은 곳 많이 다녀서”라고 하셨는데 언젠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 말속에는 그렇게 해주지 못했던 엄마의 아쉬움과 미안함이 서려있다는 것을. 부모가 되어보니 아빠 엄마와 이곳저곳을 다니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안쓰럽기보다는 먹고 사느라 어린 자식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부모님의 아쉬움이 더 커 보인다. 그리고 어쩌면 소세지, 햄지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자 이곳저곳을 다닌 것이 나를 위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선물은 꼭 원하는 것을 주셨다. 공식적으로 어린이가 끝나고 청소년이 되기 전 마지막 어린이날 (6학년 5월 5일) 무슨 선물을 받고 싶냐고 (바쁜 와중에도) 물어보셔서 커다란 주방놀이 세트를 말했다. (그 당시 가격이 꽤 비싸서 동생이랑 상의해 그거 하나만 받은 것 같다. - 문득 든 생각. 동생은 결정권이 있었을까...? 미안합니다.) 13살이 다 커서 뭐 그런 걸 사!라는 말 한마디 없이 그거면 돼? 하시곤 집으로 사다 주셨다. (그걸 사달라고 했던 나조차도 내가 지금 이거 가지고 노는 게 맞는 거야? 생각했는데 쿨하게 수렴해 주셔서 놀랐던 기억도 난다.) 부모님은 주어진 상황 안에서 우리에게 늘 최선이셨고 우리도 그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난 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른들이 자주 해준 이야기가 있다.
"유경씨는 사랑 많이 받고 자란 게 보여요."
그걸 뭘로 알 수 있지? 그때는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그분들의 나이쯤이 되고 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많은 곳을 다니지도 함께 시간을 보내지도 못했지만 우리만의 끈끈한 가족애는 지금도 큰 편이다. 가족들 생일 한번 그냥 넘어간 적 없고 (지금까지도) 내 어린시절 바닥에 앉아있는 사진도 거의 없다. (늘 아빠, 엄마 무릎에 앉아있더라.) 그리고 1년에 한 번 산으로 바다로 여름휴가는 늘 함께였다. 내가 사랑받고 자랐다는 걸 남들이 알 정도로 나는 구김살 없이 아주 잘 자랐다. 그러니 더 이상 부모님이 그때의 미안함으로 속상해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으셨으면...
사랑해요. 아빠 엄마.
글 지지 zizi
집에서는 두 딸의 엄마와 K - 장녀, 일터에서는 디자인을 전공한 공예가, 삶에서는 매사 긍정적이고 계획, 실천, 유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