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닮아서, 너무 달라서 어려운 아이들과 그걸 지켜보는 나
나와 닮은 아이, 나와 다른 아이. 둘 다 내가 낳아 키우고 있는 딸들 이야기다. 물론 당연히 나와 닮은 구석, 다른 구석이 각각 있긴 하지만 (이 부분은 종종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것도 같지만) 가지고 태어난 기질을 보면 분명 더 닮은 아이, 더 다른 아이가 있다. (거기에 자라는 환경이 더해져 간극이 더 커져가는 것도 같다.)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뉘게 된다. 아이가 나랑 너무 똑같아서 힘들어요. 아이가 나랑 너무 달라서 어려워요. (사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둘 다 속이 터지기 때문) 하지만 저 말을 찬찬히 살펴보면 어느 쪽이던 그건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 그러지 못해서 속상했는데 우리 아이도 똑같네." " 나는 어릴 때 안 저랬는데 저 아이는 왜 저럴까?"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두 가지 모두 부모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애정 어린 잔소리일 것이다.
나는 요즘 내가 경험한 것 중 좋았던, 좋지 않았던 기억만을 기반으로 상대를 대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건 온전히 내 경험이고 내 기억일 뿐, 타인에게는 다른 결괏값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조금 더 알아가고 있다. (이럴 때 어른이 되어간다는 걸까? 싶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도 하고 있다. (어렵긴 하지만...)
예를 들어볼까?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나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누군가에게 이 음식 정말 맛있더라. 너도 꼭 먹어봐. 제안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의 반응까지 예상하거나 좋은 결과를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 특히 이러한 마음은 가까운 사람 (가족, 또는 아이들)에게 더 자주 드는데 내가 했던 긍정적인 경험을 상대도 해봤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이지 아닐까 싶다. 반대로 이 경험은 정말 별로였다. 아이들이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의 범주에 들어가는 일들은 잔소리를 해서라도 뜯어말리고 싶은 마음일 거다. 하지만 잘 알 것이다. 대부분 아이들은 그런 류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특히나 더우니까 옷 입어라, 미끄러우니까 조심히 다녀라, 넘어질라 뛰지 마라 등의 말들은 사실 도움보단 나의 불안을 잠재우는 주문에 가깝다.)
나와 닮은 아이는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아이에게서 보아서"일 것이고 나와 다른 아이는 "내 모습은 아니지만 역시나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보아서" 일 것이다. 판단을 할 때 모든 기준을 오직 나로만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자.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걱정과 염려로 넘겨짚지 말자.
"너는 나의 이런 좋은 점을 닮았구나, 나와는 다르지만 그건 정말 멋지구나." 매일매일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