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이 계속된다면...?

서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희망고문이 되었다면

by 지지 zizi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희망고문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해도 엄마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리라 믿는 아이,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이 스스로 잘 해낼 거라 믿는 엄마. 보이지 않는 이 희망고문을 끊어내려면 한쪽에서 먼저 꽉 잡고 있던 끈을 놓아야 한다. 실제로 그 끈이 사라지는 순간 아마 둘 다 깨닫게 될 것이다. 긴 시간 서로가 잡고 있던 끈에 의존하여 버텨왔다는 것을.


내가 어린 시절 경험한 것 중 피하고 싶은 몇 가지는 아이에게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또 다른 예상치 못한 결과로 나타나 깨닫게 되었다. 주어진 상황이 독립적으로 클 수밖에 없었던 K - 장녀인 나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상황 자체를 제공하지 않았더라. (아이가 원하기 전부터 스스로 판단하여 미리 다 해주곤 했다.) 그러나 여전히 독립적인 나는 그 모습을 점점 보기 힘들어 괴로움의 시간이 늘어갔다. (이 나이에 왜 아직도 저걸 못하지? 나는 저 나이 때 스스로 했던 것 같은데 왜 안될까?) 의존적인 아이로 한참을 키웠는데 자, 이제 이 정도 나이가 되었으니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봐. 이쯤이면 할 수 있어. 식이라니... 너무 가혹하고 매정한 결정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렵다는 건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때그때의 부모의 선택으로 아이의 인생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니.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다니.


실존주의 철학자 중 사르트르의 말 중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인생은 B와 D 사이에 C다. 여기서 B는 Birth, D는 Death, 그러면 C는 무엇이냐? 바로 Choice.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가 누구였고 무슨 사람이고 뭘 할 것이라고 정해진 것은 없다. 그냥 우리는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이 던져진 상태에서 내가 누구고 무얼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는 순간순간에 모든 선택 즉 초이스가 모여서 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때그때 내가 나의 주인으로서 잘 선택한 것들이 모여 내가 되는 거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라는 본질은 없다.


이 이야기를 기반으로 생각해 보면 인생은 매 순간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는데 아이의 인생은 (어느 정도의 나이까지는) 어쩔 수 없이 부모의 선택에 따라야 하다니...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감당은 결국 아이의 인생으로 해야 한다니... 부모가 해야 하는 선택에 대한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겁다. 각 아이에게 맞는 적절한 선택을 해야 하며, 그게 사회적, 개인적으로 옳은 방향이어야 하고 결국엔 결과가 좋아야 하다니...

부모로서 이게 옳은 선택이었나. 좋은 결정이었나를 떠올려본다. 그렇지만 그게 무엇이 되었던 하지 않은 선택에 대해선 결국 알 수 없다. 그저 이 선택이 잘한 선택이라 믿고 그에 맞춰 다음 선택을 할 뿐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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