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과 딸 사이

엄마의 딸이 엄마가 되어 마주하는 시간들

by 지지 zizi



어디서 봤을까? 엄마가 되면 내가 어린 시절 바라던 엄마의 모습을 하고 아이를 키운다고 한다. 나는 어떤 엄마를 바랐을까? 우리 엄마는 어떤 모습의 엄마로 나를 키웠을까? 어릴 적부터 엄마는 무엇이든 해주는 엄마였다. 부족함 없이 나를 (동생들을) 키우겠다고 생각했으리라. 너희는 우리같이 안 살았으면 해. 필요한 게 있으면 엄마한테 얘기해. 소리를 입버릇처럼 하셨다. 한 날 (부모님의 가게가 한참 잘 되어가던 한 날) 진킴(여동생)과 내가 지나가는 말로 개미(남동생)가 가게 이어받아서 하면 되겠네. 했는데 기겁을 하시며 이런 일 안 시키려고 너희 공부시킨 거다. 우리가 대신 고생하는 거다. 그런 소리 말아라. 와 함께 펄쩍 뛰셨던 게 떠오른다.


자수성가하신 아빠는 규칙과 규율을 만들어 그걸 잘 지키셨고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시장을 가시고 정해진 일과를 마친 뒤에는 매일 저녁 운동을 하셨다.) 물론 그걸 그대로 우리에게도 가르치셨다. 약속은 꼭 지켜야 하고 누구와도 돈거래는 하지 말고 등등 당부의 말씀도 많이 해주셨다. 이 외에도 통금 시간이라던지 가정 내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았는데 학창 시절에는 통제가 꽤나 심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아빠와는 다르게 우리가 해달라는 것은 거의 다 해주셨던 엄마.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은 대부분 해주셨을 정도로 허용적이었다. (비교해 보자면 부모님은 정반대의 육아관을 가지고 우리를 키우셨다.)


나는 자라며 이 두 가지가 몸에 배어 스스로에게 어떤 부분은 통제적으로 또 다른 부분은 관대한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그걸 그대로 아이들에게도 하고 있더라. 지켜야 할 예절, 가정 내 규칙 등을 만들어 지키기를 바랐으나 그렇지 않았을 경우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주고 있었달까? 하지만 최근 사춘기를 맞이한 아이와의 일들을 겪으며 나 또한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생겨났다. 무조건적인 통제가 아닌 가정과 사회에서 지켜야 할 규칙은 설정해서 일러주고 아이의 의견은 존중해 주고 맞춰나간다. 단, 약속과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시 책임은 스스로 진다. 아이도 나도 성장하는 어제오늘 그리고 내일이다.


우리는 어떻게 엄마와 딸과 딸로 만났을까? 가족으로 묶인 세 사람이 제일 잘 맞으면 좋았겠지만 당연히도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나 다르게 자랐다. 이제 나는 나이 많은 엄마와 어린 딸 사이에 끼어있는 엄마이자 딸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엄마가 되어 엄마를 이해하기도 딸이 되어 딸을 이해하는 순간들이 있다. 딸로만 자랐다면 몰랐을, 엄마가 곁에 없었다면 몰랐을 많은 것들을 40살이 넘어 경험하고 있다. 앞으로는 또 어떤 걸 느끼며 살게 될까. 존재 자체로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한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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