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지(첫째)와 냉랭한 시기를 시작하며 나는 생각보다 더 큰 배신감과 상실감을 느꼈다. 매 순간 그래 이제는 정말 짝사랑을 멈춰야 해 생각이 들었다가도 왜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거야! 나만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를 수없이 외쳤다. 우리 둘은 시간만 나면 으르렁대며 한치의 물러섬 없이 서로를 물어뜯었다.
내 말을 들어! 나는 이렇다고! 각자 할 말만 할 뿐 상대의 이야기는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 그래서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마음 노트> 차분한 상태일 때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읽는다. (이때까지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할 뿐 소세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소세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엄마 반성문>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엄마 제발 그 책 한 번만 읽어주세요. 여러 번 이야기했던 그 책을 함께 도서관 3층에서 빌려와 앉은자리에서 모두 읽었다. 그것도 펑펑 울면서... 소세지는 어떤 심정으로 이 책을 한 번만 읽어달라고 했을까. (이 글을 적는 순간에도 눈물이 계속 흐른다.) 아무리 네가 이야기하고 부탁하고 소리 지르고 난리를 쳐도 엄마는 듣지 못했구나. 미안해 엄마가...
책 중간쯤 작가가 스스로를 무자격 부모라고 칭하는데 순간 마음 한 구석이 뜨끔했다. 사실 저 구절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책에 쓰인 과거에 자신이 했던 말, 행동을 읽는데 마치 내가 했던 것처럼 느껴져 (실제로 내가 했던 말들도 좀 있었다.) 부끄럽기 짝이 없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놀랐다. 빌려온 책을 눈물로 더럽히지 않으려 책을 번쩍 들었는데 마침 거울에 비친 눈물 콧물 범벅인 내 꼴이 우습기도 하고... 참으로 묘한 순간이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코칭'. 코칭은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므로 코치 스스로 자아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고 한다. (코칭을 할 때 어떤 해결책이나 답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어떤 일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선입견으로 자기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답을 상대에게 적용하려 한다. 허나 그 답은 자기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지 상대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염두해둬야 한다. 되돌아보면 나는 나의 경험, 또 경험하지 못한 이상향을 아이에게 끊임없이 강요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그걸 멈출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된다.
나와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친한 언니에게 간략한 설명과 함께 이 책을 추천했는데 보기가 무섭다고 했다. 나도 아마 대충 알고 보려고 했으면 시도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언니에게도 이렇게 말한 것이 생각난다. "그러게요. 저도 내용을 모르고 읽어서 다 읽을 수 있던 것 같아요. 물론 소세지는 알고 추천해 준 것 같지만요." 스스로 별로라고 생각하는 어떤 부분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용기를 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걸 안다.
나는 이제 아이를 한 인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도울 수 있는 부분 (본인이 요청한 도움)은 도와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다짐이 얼마나 갈지 또 언제 다른 다짐으로 바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엇이 최선이었는지는 나와 아이만 알 테고 훗날 둘 다 그 선택이 좋았다 여겨지길 바라며 지금은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