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머리가 나쁜가 봐요.”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집을 나서던 아이가 무심한 듯 툭 내뱉은 한마디.
그 말이 하루 종일 귀에 맴돌았다.
가볍게 들었지만, 마음은 묵직해졌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예전보다 훨씬 열심히 한다.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원으로 향하고, 다시 스터디카페에서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킨다. 눈에 보일 만큼 노력하고 있음에도 성적은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점점 지치고, 자주 자신을 의심한다.
“난 왜 이만큼 하는데도 안 될까?”
“혹시 나는 원래 안 되는 사람인 걸까?”
그럴 때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문득, 오래된 내 기억이 떠오른다.
중학생 때까지는 성적이 꽤 괜찮았다. 상위권 안에 들었고, 선생님들 칭찬도 곧잘 들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시험을 볼 때마다 점수가 추락했고,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나는 공부랑 인연이 없는 사람인가 보다.’
그래도 공부를 완전히 놓지는 못했다. 재수를 하면서도 교과서를 붙잡았고, 책상 앞에 앉아 있으려 애썼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의 나는 늘 다른 곳에 있었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술을 마시고, 영화관을 전전하던 날들이 더 또렷이 기억난다. 공부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훨씬 즐거웠다.
돌아보면, 나는 '공부를 잘하는 법'보다 '나는 왜 공부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더 오래 붙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목적 없는 노력은 쉽게 지치고, 의미 없는 경쟁은 사람을 금세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 아이의 그 한마디가 더 깊이 와닿는다.
“난 머리가 나쁜가 봐요.”
이 말은 성적에 대한 불만만이 아니다.
아이의 말 뒤에는 수많은 질문이 숨어 있다.
“나는 이만큼 하는데 왜 안 될까?”
“나는 괜찮은 사람일까?”
“계속해도 되는 걸까?”
익숙하다. 그 물음표들은 한때 내 안에도 머물렀던 감정들이다.
그래서 나는 안다. 그 말 뒤에 쌓인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그리고 묵묵히 다시 책을 펴는 그 아이의 오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성적은 너라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야.
지금 너의 하루하루는 결코 헛되지 않아.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그 시간이,
너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네가 스스로를 의심할 때,
너를 가장 먼저 믿어줄 사람이 여기, 늘 네 곁에 있다는 사실이야.
오늘도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언젠가 그 아이가 지금의 시간을 돌아봤을 때,
자신을 믿어준 누군가의 시선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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