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Vs 중증 후유장애' 당신의 선택은?

뇌경색의 최악의 예후

by 허간호사
사망이 나을까? 중증의 후유장애가 나을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상황의 두 환자가 있었다.


첫 번째 환자

아직 어린 자식들이 셋이나 있는 40대 초반의 여자환자이다. 엄마의 존재가 매우 필요한 시기였지만 뇌경색은 아랑곳 않고 아이들에게서 엄마를 빼앗아갔다. 이분의 증상은 가벼운 뇌경색 정도가 아니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일주일 정도를 계셨다가 병실에 전실되셨을 만큼 중증도 높은 뇌경색 환자였다. 일반병실로 나오긴 했지만 뇌경색으로 남겨진 증상은 끔찍했다. 어딘가 우리 엄마 같지 않은 멍한 표정과 전과 같지 않은 반응들은 낯설기 그지없었고 축 쳐진 팔과 힘없는 한쪽 다리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앞날이 캄캄한데 병원에서는 전원하라는 통보가 내려졌다.(대학병원은 안정기가되면 다른 급성기 환자치료에 전념해야 하기에 오래 입원할 수가 없다.) 40대 초반, 한창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에 도움은커녕 짐이 돼버린 엄마... 심각한 후유장애인 채로 전원준비를 해야 하는 남편보호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재활을 해서 좋아질 수 있겠지만 정도의 한계가 있는지라 아무래도 중증의 후유장애가 생기신 분들 경우에는 병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꿈을 꿀 수 없는 일이다. 비록 입원 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순 없겠지만 재활을 꾸준히 받다보면 아이들을 알아보고 짧은 대화를 나누며 어쩌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 걷게 될지도 모른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기적같은 회복을 꿈꾸며 재활전문병원으로 전원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병동에 코드블루가 떴다.


*코드블루: 심정지 또는 호흡정지 등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 발생시 발동.


수많은 의료진이 달려왔고 즉시 환자위로 올라가 심폐소생술이 시작됐다. 뇌경색이 다시 재발한 것이다. 입원해서 검사할 만한 것은 다 검사했고 위험인자들을 줄이는 약물도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 환자의 뇌경색 진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이전 뇌경색보다도 더 큰 혈전덩어리가 만들어졌는지 이번에는 끝내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시고 말았다.


너무 일찍 혼자가 된 남편. 그리고 그 아래 남겨진 어린 자식들은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두 번째 환자

보통의 가정을 꾸리고 있는 50대 중반의 남자환자이다. 경제활동을 도맡아 하고 있는 가장인지라 그 역할과 책임이 막중한 분인데 뇌경색이 오셨다. 뇌경색의 증상은 가볍지 않았다. 이분 또한 중환자실에 계셨을 정도로 위험한 고비를 넘기신 분이다. 한쪽 팔다리에 마비가 심해 걸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앞으로의 경제활동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아직 대학과정이 필요한 두 자녀가 있었기에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러면서도 재활치료 병원비가 계속 필요하다는 것은 가정의 큰 경제적 타격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 후유장애라면 경제활동을 할 순 없어도 누군가의 도움없이 혼자 일상생활 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회복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제법 안정기에 접어들 때 재활병원으로 전원준비를 하자는 의사의 퇴원 권고가 떨어졌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병동에 또다시 코드블루가 떴다.


수많은 의료진이 달려왔고 즉시 환자에게는 심폐소생이 시작됐다. 의료진의 빠른 판단과 조치로 이분은 극적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다행히 목숨을 구했지만 중환자실에 다시 누운 환자의 모습은 과히 절망적이었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남편은 눈조차 뜨지 못했고 기저귀만 차고 있으면서도 어떤 창피함도 모른 채 누워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렇게 중환자실 치료는 계속되었다.


환자의 모습은 나아질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언제 또다시 응급상황이 발생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죽음의 문턱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내과적으로 온갖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생기면서 환자몸엔 주렁주렁 기계가 늘어났고 온갖 진료과의 협진을 받으며 하루하루 어렵게 버티고 계셨다. 힘들게 살렸지만 저 정도의 상태인 거라면 차라리 현실적으로 '첫 번째 환자의 상태가 나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게 사실이다. 가망없는 상태인데 매일 쏟아져 나오는 병원비는 현실이었으니깐.... 그런데 그 환자는 1달을 버텨냈고 2달을 버텨냈다. 그리고는 어떻게든 살리는 것이 얼마나 잘한 것인지,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섞은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가망이 없을 거 같던 중환자실 치료에서 환자는 눈에 띄지 않게 호전되고 있었다. 어느덧 눈을 뜨고 의식을 조금씩 찾더니 인공호흡기도 졸업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 사투끝에 드디어 일반병실로 다시 나오셨다. 상태는 더 안 좋았던 게 사실이다. 후유장애는 첫 번째 뇌경색 때보다 더 심했다. 이 정도면 재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도움없이 일상생활을 할 정도는 못 될거 같다. 또 사람일은 모르는 것인지라 그분이 어느 정도까지 회복이 될지는 모를 일이나 그분은 그렇게 살아서 병원을 퇴원하셨다.






중증의 후유장애를 갖게 된다는 것은 일반 가정에서는 꽤나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병원의 도움이 오랫동안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부담감이 크고 가정 내에서도 도움이 끊임없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유로웠던 이전의 삶은 꿈을 꿀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제 3자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차라리 사망'에 한표를 던지는 걸 거다.


뇌출혈로 누워있는 여자환자가 있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분이었다. 누군가를 알아보지도 움직이지도 말도 하지 못했고, 먹는것도 할 수 없어 튜브로 경관식을 투입해줘야 하고 목에는 숨구멍인 기관절개관이 되어 있어 수시로 가래도 빼내줘야 한다.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2시간에 한번씩 자세를 바꿔주지 않으면 욕창이 생기게 되고 똥오줌도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채워 매번 대소변도 치워줘야 한다. 이 환자분의 남편은 장기전 가장 필요한 경제활동을 놓을 수 없어 간병은 어린 딸들이 도맡아 했다. 20대 초반의 딸들은 그 나이대의 삶을 잃었지만 힘들어하지 않고 간호를 정말 잘했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서툴지만 열심히 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상태였다. 기저귀를 갈 때 빼고는 항상 커튼이 열려있는 분이었는데 그날은 그런 기척이 없는대 침대 커튼이 쳐 있었다. 환자의 이름을 부르고 커든을 열었다. 나는 그때 내가 본 모습을 잊지 못한다.


어린딸은 엄마를 꼭 붙들고 좁은 침대에 억지로 안겨있었다. 살아있는 엄마의 피부를 느끼고 온기를 느끼고 채취를 느끼고 있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를 억지로 껴안고 있는 딸의 모습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척 한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엄마, 나를 쳐다봐주지도 못하는 엄마, 내 손을 잡아주지도 못하는 엄마, 내게 짐만되는 엄마, 내 삶을 앗아간 엄마여도 살아있어 주기만 해도 좋은것이 엄마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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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쳐 몰랐다.

'사망 Vs 후유장애' 의 승자는 언제나 후자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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