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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이 될 수 없는 노년기의 친구 '뇌경색'

by 허간호사

어젯밤 입원하신 환자분을 뵙기 위해 병실 문을 열었다.

뇌경색 진단을 받은 지 몇 시간이 되지 않았을 테니 지금 얼마나 놀라고 걱정되실까 싶어 최대한 부드럽게 이름을 부르며 들어가 본다.

"OOO님~ 안녕하세요. 뇌경색 담당간호사입니다."

병실 커튼을 열어 환자분을 뵈니 다른 환자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쩜 이렇게 의연하세요?? 뇌경색 왔다고 들으셨을 텐데 걱정되고 불안하지 않으세요??"

편안하게 앉아계시는 환자분의 얼굴은 마치 매우 건강하다는 건강검진 판정을 받은 사람처럼 싱글벙글했다.


오늘 만난 환자분은 70대 초반의 남자분으로 말 어눌함과 한쪽 사지 마비 증상이 있어 급하게 응급실을 방문하신 분이다. 뇌 MRI촬영을 한 후 뇌경색 진단을 받으셨는데 다행히 증상이 심하지 않았고 지금은 모두 호전되어 남아있는 증상이 전혀 없으신 분이다.


아무리 증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해도 뇌경색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누구라도 놀라고 걱정되어 근심 가득한 표정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긍정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신이 나 보이신다. 보통은 낙담하거나 억울해하거나 걱정이 한가득인지라 의료진이 환자분 이름을 부르면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데 뭐가 환자분을 신나게 만들었을까? 궁금하다.


환자분께서 말씀하시길, 뇌경색 진단을 받고 놀라 여기저기 친구분들께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갑자기 팔이 안 올라가 입원을 했는데 뇌경색이 왔다고 한다'라고 말했는데 다들 하는 말이 '아직도 뇌경색 안 왔었냐?' 하면서 남들 다 걸리는 거 너는 이제야 걸린 거냐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자기들 무용담을 연신 해대더란다. "나는 심각한 병인 줄 알고 놀랐는데, 이거 내 주위사람들은 진즉에 걸린 경우가 허다허대요. 허허허 " 이 정도 나이를 먹었으면 뇌경색 정도는 와 봐서 입원도 하고 해야 되는 거였나 보다 라면서 오히려 이전에 뇌경색을 미리 앓았던 친구들이 훈장을 받은거마냥 거들먹거리는 게 부럽더란다. 그런데 이제는 자기도 훈장하나 생긴 거 아니냐며 웃으며 좋아하신다.


아이고..... 어르신...... 이게 무슨 면역이 되는 질병도 아니고 일찍 병이 온 게 훈장이라니요!!!!

남들 다 걸렸으니 나도 걸린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환자분 주위에는 다행히도 중증 후유증을 남긴 뇌경색 환자분들은 안 계셨나 보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시니 환자분도 자칫 가볍게 생각하고 추후관리를 소홀히 하실까 봐 걱정된다.


어떤 병이든 병이 오지 않게 예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지만 병이 온 다음에는 추후관리가 중요한 법이다. 그런데 뇌경색이라는 질환은 한 번 진단을 받고 나면 재발 세발 네발이 쉽게 오게 되는 질환이고 더 무서운 것은 그렇게 두 번 세 번 네 번째가 될수록 증상은 점점 더 심하게 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평생 후유장애를 안고 살거나 사망에까지 이를 수가 있어 재발방지를 위한 추후관리가 정말 중요한 질환이다.


어르신들의 어릴 적은 수두 흉터 자국이 훈장이 되었을 거다. 요즘에야 수두 예방접종을 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수두에 걸리지 않고 자랄 수 있겠으나, 20년 전 만 하더라도 동네에 수두가 한 번 돌고 나면 온 동네 아이들이 분홍색 연고를 온몸에 바르고 돌아다녔었다. 한 번 걸리면 면역을 얻게 되어 다시는 걸리지 않게 되니 그냥 빨리 걸려버리는 것이 속 편한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뇌 MRI에 남아있는 뇌경색의 흉터자국은 수두와는 다르다. 나이 들면 한 번은 앓고 지나가야 면역을 얻어 다시는 뇌경색을 걸리지 않는 질환이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로 한번 발생하고 나면 두 번 세 번 발생하는 것이 더 쉬운 병이 뇌경색이다.


친구분들의 위용담이 환자분의 안심이 된 점은 다행스러우나 그로 인해 뇌졸중을 가볍게 생각하고 별수롭지 않게 넘어가질 않길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교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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