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디자인사 #1. 산업혁명
우리는 디자인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흔히 고대 그리스의 조각이나 동양의 문양을 떠올린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한 역사는 오래됐고, 그것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말하는 디자인, 특히 산업과 시각, 기능과 구조를 함께 다루는 근대 디자인은 그 오래된 미감의 연장선에서만 탄생하지 않았다. 디자인이 ‘직업’이 되고, ‘학문’이 되고, ‘기능’으로서 분화되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 그것은 18세기 말 산업혁명이었다.
18세기 후반, 증기기관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연기와 철로 뒤덮인 도시들, 사람은 더 이상 손으로 만들지 않았다. 기계가 물건을 만들었고, 공장이 사람을 채웠다. 세상은 달라졌다. 그러나 물건은 점점 무감각해졌다.
곡선이 사라지고, 균형이 사라지고, 사람의 손이 담아냈던 온기마저 사라졌다. 기계는 똑같은 것을 빠르게 만들어냈지만, 그 안엔 미감도 배려도 존엄도 없었다. 사람들은 질문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디자인은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단순한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었다.
산업혁명 이전의 세계에서 물건은 대부분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나무 의자 하나, 그릇 하나, 책 한 권까지도 한 사람의 기술과 감각이 담긴 결과물이었다. 장인은 재료의 감촉을 손으로 익히고, 작업의 리듬에 맞춰 곡선을 만들었으며, 사용하는 사람의 삶을 떠올리며 형태를 다듬었다.
그 물건은 단순히 ‘예쁜 것’이 아니라, 오래 쓰일 수 있는 것, 사람의 손에 익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비쌌고, 시간이 오래 걸렸으며,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인의 물건은 언제나 소수의 몫이었다.
18세기 후반 영국. 증기기관이 공장을 돌리고, 방직기계가 인간의 손을 대체하면서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물건은 ‘한 개’가 아닌 ‘수천 개’ 단위로 만들어졌다. 생산 속도는 빨라졌고, 가격은 낮아졌으며, 공급은 대중을 향했다. 하지만 그 변화는 곧 균형을 무너뜨렸다.
기계는 효율적이었지만 감각이 없었다. 기계적으로 반복된 문양, 왜곡된 비례, 불편한 사용성. 값은 저렴해졌지만, ‘사람을 위한 설계’는 사라졌다. 디자인 없는 대량생산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때, 한 가지 질문이 등장한다. “우리는 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디자인의 시작이었다.
단지 ‘만드는 기술’이 아닌, 사용자를 위한 설계, 삶을 고려한 조형, 가치에 대한 의도가 필요하다는 자각. 디자인은 기술의 부산물이 아니라, 기술의 반작용으로 생겨난 새로운 감각이었다. 디자인은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이전에, 그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언어로서 등장했다.
이후 등장한 수많은 디자인 사조들 - 미술공예운동, 아르누보, 바우하우스는 모두 기계 문명에 대한 감각적 저항이자 해석이었다. 기계가 만든 세계에 인간의 감각을 되돌려주려는 시도. 예술과 기술, 효율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균형을 다시 세우는 일. 디자인은 언제나 기술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그것은 감각이 사라진 세계를 위한 조율의 언어였다.
디자인은 기술과 예술, 대량과 정성, 효율과 윤리 사이에서 계속해서 균형을 조정하는 과제였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 산업혁명이 놓여 있었다.
AI가 이미지를 그리고, 알고리즘이 제품을 고르는 지금. 디자인은 다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왜 이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가?”
“디자인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 질문의 시발점은 산업혁명이었다. 기계는 세상을 바꿨고, 디자이너는 그 세계에 사람의 감각을 되찾아야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그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