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디자인사 #4. 아르누보
산업혁명 이후의 유럽은 직선과 반복, 규격과 공장으로 요약되었다. 그 풍경 속에서 아르누보(Art Nouveau)는 “자연의 질서로 돌아가자”는 감각적 반론이었다. 강철과 유리가 만든 대도시 위에 채찍처럼 휘는 선(whiplash), 덩굴·나비·연꽃·공작 같은 생물의 모티프가 번졌다. 장식은 벽을 타고 오르고, 문자는 이미지 안으로 녹아들었다. 공간·가구·소품·포스터·활자까지 하나의 언어로 묶는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이 목표였다.
이 곡선의 혁명은 세 가지 변화가 맞물리며 가능했다. (1) 증기·가스·전기의 도시화로 밤도 소비의 시간으로 바뀌었고, (2) 석판 다색 인쇄의 대중화가 ‘거리의 포스터’를 폭발시켰으며, (3) 철·유리·주철이 만든 유연한 구조가 건축의 선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즉, 곡선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새로운 미디어·기술·도시의 리듬을 번역한 디자인 언어였다.
아르누보는 국경마다 이름이 달랐다(프랑스의 아르누보, 벨기에의 스타일 누보/오타, 스페인의 모데르니스모, 영국의 모던 스타일, 미국의 티파니). 그러나 시각 언어는 놀라울 만큼 일관됐다.
1. 핵심 선 : 채찍선(whiplash), 식물의 줄기처럼 시작과 끝이 흐려지는 곡선, 비대칭 구도
2. 주요 모티프 : 아이리스·연꽃·등나무·해파리·매, 공작, 여성의 머리칼(흐르는 선의 은유)
3. 재료/기술 : 철·주철·유리의 가공, 스테인드 글라스, 목형 가구의 곡가공, 다색석판 포스터, 에나멜·유약·모자이크
4. 키워드 : 자연주의·통합디자인·유기적 구조·새로운 도시 소비문화·여성 이미지(La Femme Nouvelle)
아르누보의 가장 빠른 전파로는 포스터가 있었다. 알퐁스 무하(Alphonse Mucha)는 사라 베르나르 공연 포스터에서 머리칼을 덩굴처럼 휘감아 문자·테두리·문양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봉합했다. 툴루즈-로트레크는 카바레 ‘물랭루주’의 리듬을 평면 색면과 과감한 크롭으로 번역했다. 이는 곧 브랜드·공연·상품을 감성으로 포장하는 시각언어의 탄생이었다.
이 시기의 포스터는 그리드에 갇히지 않았다. 타이포그래피는 장식이자 구조였고, 이미지 속으로 굽이치며 침투했다. 오늘날 패키지·에디토리얼에서 쓰는 ‘레이어드 타이포’의 원형이 이때 마련된다.
빅토르 오르타(Victor Horta)의 타셀 하우스(Hôtel Tassel) 계단 홀은 아르누보 교본이다. 난간·바닥 모자이크·천장 라이트웰이 하나의 덩굴처럼 이어지고, 철제 기둥은 식물의 줄기처럼 거의 ‘자라는’ 형태를 취한다.
에코르 낭시(École de Nancy)의 에밀 갈레(Émile Gallé)·다움(Daum)은 유리를 유기적 생물처럼 성형해 빛 자체를 곡선으로 변모시켰다. 파리에서는 엑토르 기마르(Hector Guimard)가 지하철 입구를 철과 유리의 식물로 솟아나게 하며 ‘도시 아이덴티티’의 효시를 만들었다.
여기서 곡선은 단지 붙이는 장식이 아니라 빛·동선·재료의 물성을 조직하는 구조였다. 계단·난간·문틀·손잡이·포스터·표지판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되었다.
아르누보는 미술공예운동의 윤리를 잇되, 도시의 시장과 타협하려고 했다. 표준 부품(주물, 타일, 유리)을 조합해 대중적 가격대를 모색했지만, 손이 많이 드는 곡선은 쉽게 대량화되지 않았다.
그 틈을 메우기 위해 헨리 반 데 벨데(Henry van de Velde)는 “장식의 원리를 산업 규격으로 번역”하려 했고, 곧 독일공작연맹(DWB)과 바우하우스로 이어진다. 곡선의 감각은 결국 시스템의 언어를 만나며 현대 디자인으로 건너간다.
1908년, 아돌프 로스는 「장식과 범죄」에서 ‘불필요한 장식’의 경제적 낭비를 고발한다. 제1차 세계대전은 호화로운 곡선을 지탱하던 도시 문화 자체를 흔들어놓았다. 아르누보는 1910년대 이후 기하와 금속의 냉철함으로 옮겨가며, 1920–30년대의 아르데코로 변주된다. 그러나 도시 표지 시스템, 포스터·패키지의 레이어링, ‘공간-가구-그래픽’의 통합 설계라는 유산은 모더니즘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