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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과 심장의 만남

Icy Bay, 지구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by 헬로 보이저

Icy Bay 빙하

유빙, 아이시 베이




아이시 베이(Icy Bay).
알래스카 지도에서도 낯선 이 이름은,
사실 지구가 직접 만들어낸 **상처의 흔적**이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이곳은
구요트(Guyot), 튜잇(Tyndall), 야쿠타트(Yakataga) —
세 개의 거대한 빙하가 바다로 흘러내리던 자리였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기후 변화로 빙하가 급격히 후퇴했고,
그 자리에 바닷물이 들어와 지금의 만이 생겨났다.

그래서 아이시 베이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지구 온난화가 빚어낸, 살아 있는 증거**다.


나는 빙하가 보고 싶어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 5시,
알람보다 먼저 눈을 떴다.

갑판 위에 오르자
이미 몇몇 할아버지 승객들이
커피 잔을 들고 앉아 있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 역시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바다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마음은 설레었다.
오늘, 드디어 아이시 베이.
빙하와 바다 친구들을 만날 준비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아침 9시,
배는 고요히 빙하의 입구를 향해 나아갔다.
물결은 말이 없었고,
안개는 눈을 감은 듯 낮게 깔려 있었다.

그때,
얼음 조각 옆에서 작은 움직임이 나타났다.
해달 한 마리.
등을 동그랗게 말고 물 위에 떠서,
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천천히 유영하고 있었다.

마치,
이 별 위에서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태초처럼 평온해 보였다.

조금 뒤엔 갈매기 떼가 빙하 위를 날았다.
얼음 틈에서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노리며,
하얀 날개가 잿빛 하늘을 스쳤다.

그날 오후 2시.
배는 더 이상 앞으로 가지 않고
빙하 앞에서 천천히 멈춰 섰다.

“오늘은 운이 좋습니다.”
선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흘렀다.
“얼음이 전진하지 않아,
이만큼 가까이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난간에 서서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 순간을 보았다.

빙하의 거대한 벽이
아무 소리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하얀 얼음이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치며
짙은 푸른 파도를 일으켰다.
그 소리는 울림이 아니라,
**지구의 심장 박동**처럼 느껴졌다.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책임이었고,
마지막 사랑 같았다.

아이시 베이.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곳.
그건 경외였고, 침묵이었고,
무언의 경고였다.

그러나 여전히,
해달은 물 위에 떠 있었고,
새들은 얼음 위를 날았고,
빙하는 무너지면서도
마지막 빛을 반사해 냈다.

**2025년 8월 5일 오후 2시, 아이시 베이.**
나는 이 세상이 얼마나 조용히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그날 처음으로 마음에 새겼다.

그리고 알았다.
**지구의 심장은,
아직 얼음 속에서 천천히 뛰고 있다.**

우리는 그 고동을,
끝까지 귀 기울여야 한다.


Glaciers of Icy Bay. 빙하

해달 과 무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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