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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올라가는 기차 — 스캐그웨이의 아침

스캐그웨이에서 만난, 경건한 아침

by 헬로 보이저
화이트 패스 레일 로드

BUCHANAN 암벽 사인 사진


화이트 패스 & 유콘 루트(White Pass & Yukon Route)는 1898년 골드러시 당시,
수천 명이 황금을 찾아

캐나다 유콘 준주의 클론다이크로 향하던
발자국 위에 놓인 철로다.

이 길은 삶과 죽음,
꿈과 절망이 교차했던 곳이었다.


해발 870미터의 험준한 백색 고개(White Pass)를 넘어야 했기에
그땐 마차가 아니라 철로가 유일한 통로였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협곡 열차로 남아 있다.


---


열차는 여전히,
그 선로를 따라 천천히 달린다.


오전 9시, 스캐그웨이 항구 도시.
우리는 실버시 크루즈에서 내렸다.
안개가 내려앉은 작은 마을.
그 안에서 기차 한 대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우리는 오래된 기차, 붉은색 차체.
창문엔 커튼 한 없었다.

이 기차가 과연 높은 산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됐다-

조금 걱정됬다.


덜컹.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내 마음도 그 진동에 실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차가 산으로 오를수록,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초록초록 나무들이었다.
잎사귀 끝에 남아 있는 이슬.
문틈 사이로 스며든 젖은 흙냄새.
기억처럼 들어왔다.


가이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선로는 1898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사람들이 금을 찾아 북쪽으로 떠났죠.
그들 중 절반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기차는 깊은 협곡 옆을 조심스럽게 달렸다.
창밖에선 빙하에서 흘러내린 회색 강물이
울컥울컥 돌을 넘고 있었고,
그 물소리를 뚫고 기차는 지나갔다.


구름은 산허리를 감고 있었고,
나무들은 말없이 그 구름을 받아내고 있었다.


---


하지만 진짜는 그다음이었다.
기차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
내가 지금 ‘산을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지 걷는 것도,

차로 달리는 것도 아닌—
이 오래된 기차가,
구름 위로 나를 데려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말 그대로
** 하늘 위를 달리는 기적**이었다.


산의 능선이 점점 작아지고,
기차는 마치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새처럼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높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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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너무 황홀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도,
터질 것처럼 뛰는 것도 아닌—
그저, 멈춰 있었다.

어떻게 이런 풍경을,
어떻게 이런 순간을
살면서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는 걸까.

내가 지금, 살아서 이곳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


나는— 말할 수가 없었다.
너무 벅차서.


이 조용한 경이로움이
한 번에 나를 덮쳤다.


어느 순간,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기차 안은 조용했고,
우리는 모두 같은 리듬으로 숨 쉬었다.


세상의 가장자리 같았고,
시간이 멈춘 듯했다.


“저기 보이는 산등성이 넘어가 캐나다입니다.”


가이드의 말에 고개를 들었을 때,
구름 사이로 깎인 능선이 드러났다.


햇빛이 잠깐 스쳐 지나가면서,
산 위에 눈이 반짝였다.


우리는 지금,

황금을 찾아 떠났던 사람들의 길 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금보다 더 귀한 무언가를
지금 여기에서 만나고 있었다.


기차는 천천히 돌아섰고,
그제야 나는 숨을 길게 내쉴 수 있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감정이 남았다.


스캐그웨이의 아침.
그건 풍경이 아니라,
**경건한 체험**이었다.

3시간 남짓 탔나 보다

우린 기차에서 내려
스캐그웨이 다운타운으로 걸었다.

이 작은 도시는
한때,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곳 중 하나였다.


1896년, 캐나다 유콘 강 근처에서 금이 발견되자
그 소식은 1년 만에 전 세계로 번졌고,
1897년, 수천 명의 사람들이 “골든 드림”을 안고
이 작은 항구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고,
스캐그웨이에서 내려
험준한 산길인 차일쿳 패스(Chilkoot Pass)와
화이트 패스(White Pass)를 넘어
금이 있다는 클론다이크 유역으로 향했다.


한 줌의 황금을 위해
누군가는 얼어 죽었고,
누군가는 길에서 포기했으며,
누군가는 정착했고,
더 많은 이들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스캐그웨이는 하루아침에
텐트와 상점, 술집, 은행, 극장, 창고가 빽빽한 도시가 되었고,
그만큼의 속도로 무너졌다.


단 2년.
1897년에서 1899년 사이,
3만 명이 넘는 이들이 몰려들었다가
열기가 사그라지자
도시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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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들이 떠난 그 자리에
시간만이 남았다.


목조 건물은 그대로 남아
바람과 비를 견뎠다.


그 안엔 더 이상 황금도,
소란도 없었다.


나는
1898년의 브로드웨이를
2025년의 발걸음으로 걸었다.


나무 바닥은 삐걱였고,
유리창 너머엔
그 시절의 의상과 도구,
그리고 떠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조용히 전시되어 있었다.


---


그럼 지금 이 도시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2025년 기준,
스캐그웨이의 인구는 약 1,100명.
이곳의 삶은
황금이 아닌, 계절에 기대어 있다.


여름이면
크루즈선이 닿는 날마다
하루 수천 명의 여행자가 몰려온다.


가이드, 상점, 박물관, 카페, 기념품점—
그날의 손님으로 그날의 매출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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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겨울이면

모든 것이 멈춘다.


기차도, 배도, 사람도 멈춘다.


바람은 길고, 밤은 빠르다


가게 문은 닫히고
사람은 줄어든다.


그 속에서 여전히 이 도시를 지키는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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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은

세 번째, 네 번째 대에 접어든
‘골드 러시 이후의 후손들’이다.


과거의 열기 대신
조용한 반복과 일상 속에서
그들은 묵묵히 살아간다.


관광이 없는 계절엔
눈을 치우고, 벽을 칠하고,
나무를 깎고, 책을 읽고,
서로를 안 부한다.


크게 가지 않지만
쉽게 떠나지도 않는다.

길모퉁이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관광객이 지나가도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의 뒤로는
흐릿하게 퇴색된 간판 하나가.

“GOLD RUSH SALOON.”


그들은 금을 찾았고,
나는 시간을 주웠다.

그 한 문장을
오늘, 내 마음에 깊게 눌러 담는다.


세상은 욕망으로 움직이지만,
나는 기억을 따라 걸었다

.

**황금보다 귀한 건-
멈추지 않고 흘러온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수 있는 용기였다.**

화이트 패스 & 유콘 루트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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