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야, 미안해.

사랑은 선택이지만, 책임은 끝까지 남는다

by 열음

아이들이 어릴 적,
지하철역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한 장면이 있었다.


작은 철장 안,
하얀 토끼 두 마리가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풀을 뜯고 있었다.


아저씨는 반짝이는 내 눈을 보자마자
적임자를 찾았다는 듯 말했다.

“그냥 만 오천 원에 가져가세요.”


나는 아이들이 좋아할 모습을 떠올리며
아무런 망설임 없이 돈을 건넸다.


지하철 안,

작은 철장을 들고 가는 동안
이미 한 식구가 된 것처럼
토끼를 바라보았다.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해 줄게.

그 약속을
토끼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아이들은 토끼처럼 팔짝팔짝 뛰었고
우리는 베란다에 작은 낙원을 만들어 주었다.


토끼 먹이를 위해

문구용 가위와 칼을 들고
공원과 산을 돌아다녔다.


새 가족을 돌보는 일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베란다에 쌓여가는 똥과 냄새는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


한여름이 되자
집 안 가득 퍼지는 냄새는
숨 막히는 현실이 되었다.


아이들의 열정은 서서히 식었고,
풀을 뜯고 치우는 일은
하루의 의무가 되었다.


뜨겁던 사랑은
현실 앞에서 식어갔고,
토끼는 아이들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남은 건 엄마의 책임이었다.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고 이주 동안
친정에 내려가야 했다.


남편에게
토끼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불안했다.


친정에 있는 동안에도
토끼 안부를 물었고,
아이들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다.


“집에 가면 더 잘해줄게.”

아이들은 그렇게 약속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지 않고 베란다로 향했다.


거실 공기가 유난히 탁했고
창문은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창문을 여는 손이
이상하게 떨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더 이상 우리를 바라보던 눈동자가 없었다.


바짝 마른 지푸라기처럼
생기를 잃은 두 존재가
조용히 놓여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줄
시간조차 없었다.

다음 날 우리는 토끼를 데리고
조용한 산으로 갔다.


아이들의 손으로
흙을 덮어 주었다.


“토끼야, 잘 가.”
“그리고, 미안해.”


그 말이 우리를 오래 붙잡았다.


우리는 토끼를 사랑했다.
하지만 생명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충동적인 사랑은
책임 앞에서
너무 쉽게 무너진다.



어느 날

커피숍 마당에서 뛰노는 토끼를 보았다.


여전히 귀여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귀엽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소유’하는 일은


가끔
두렵다.


평화 중재 회복


월요일 연재
이전 06화롤러스케이트장에서 만난 왕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