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선택되지 않았을까

나는 나를 돌아보는 중이다

by 열음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그녀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왜 하필, 나에게만 말하지 않았을까.


대학교 시절,

같은 과에 단짝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친구였다.

우리는 비슷한 진로를 선택했고,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


낯선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기대었고,

우리는 단짝이 되었다.


서로 도서관 자리를 맡아주고,

같은 교양과목을 골라 앉았으며,

점심 메뉴를 함께 고민하며,

시험 요약지를 나누어 보던 시간들.


이렇게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주었다.


함께 캠퍼스를 걷다 보면

자연스레 발걸음을 맞추게 되었고,

서로 어깨가 부딪히는 일도 없었다.


물과 같고 공기 같은,

익숙하고 편안한 동무였기에

마음이 부딪히는 일 또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같은 자리에 같은 마음으로

서 있다고 믿었다.




어느 날 다른 친구가 다가와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넌 가끔 답답할 정도로 바보 같아”

“왜?”


“그 친구, 00 선배와 사귄다는 사실 몰라?”

순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벌써 일 년이 넘었는데.”


절대 열지 말았어야 할 상자가 열렸다.

그 안에는 단순한 놀람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만 몰랐다'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그녀와 남자 선배가 마주했던 장면들을

천천히 꺼내어 보았다.


그녀는 그를 우연히 마주칠 때면

무심한 눈빛으로 그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고,

인사말은 복도의 공기처럼 건조했다.


둘 사이를 설명해 줄 어떤 연결도,

이어질 수 있는 추론도

끝내 완성되지 못한 채

짝을 잃은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 놓인 채,

그들의 비밀을

오랫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흔들렸다.




우리는 졸업했고,

각자의 진로를 따라 흩어졌으며,

서서히 멀어졌다.


마치 결론 없이 끝나버린

한 편의 소설처럼.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누군가를 통해

그녀가 그 선배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뿐이었다.


나는 끝내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KakaoTalk_20260405_222417116.jpg 스스로 나를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종종 하소연하듯

그 시절의 빛바랜 이야기를

꺼내어 보였다.


누군가는 이상한 친구라고 했고,

배신감이 컸겠다고 공감해 주었다.


누군가는 내가 더 예뻐서 그랬을 거라며

이유를 대신 설명해 주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듯

나는 존엄을 찾아 과거를 오갔다.


오래 붙잡고 있던 의문은

상처를 키워냈고,

나는 답을 찾기 위해

상관없는 다른 이들에게 묻고 있었다.


정작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나는 왜 그 질문을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사람에게

끝내 묻지 못했을까.


관계가 어긋나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때의 나는

그녀에게 선택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를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5ba9f95a-524d-4333-94a3-ac88a42c6382.png 평화 중재 회복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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